[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글로 쓰는 삶의 '조각'이 '나'를 완성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알기 어려운 거대한 과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나를 안다는 것은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1000피스 이상의 큰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어디서부터 맞춰야 할지,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조각이 그림의 어떤 부분에 속하기는 하는지, 작은 조각들을 맞춘다고 해서 과연 큰 그림이 완성이 될지 같은 의문들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조각들을 조금씩 맞추다 보면 어느새 꽃이 피고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된다. 


자신을 아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기억과 경험들을 통해 자신에 대한 사실을 하나씩 조각조각 맞춰가다 보면 어느새 어떤 그림이 만들어지곤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안에는 특정 모습이 자리잡고 있고 이 모습이 또 다른 모습과 연결이 되어서 더 큰 나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말이 쉽지 실제로 자신에 대한 조각 맞추기를 하는 과정은 수년에서 평생 걸릴 수도 있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자신을 형성하는 조각들을 발견하고, 수집하고, 맞추는 행위는 나를 알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기억의 조각들을 기록해두는 행위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다. 


● 삶의 조각 기록하기


일례로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과 관련된 정보들을 모으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심리 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타임 캡슐을 만들도록 했다.

 

자신과 관련된 사소한 정보들을 담도록 했다. 예컨대 최근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 친구를 알게 된 계기, 최근 들었던 노래, 친구들끼리 흔히 하는 농담들,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 등 평범한 일상을 기록했다. 이후 타임 캡슐을 열 때 이 내용들이 얼마나 궁금하고 놀랍고 의미있게 느껴질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타임 캡슐이라지만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평범한 내용들이 담겼으므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3개월 뒤 실제 타임 캡슐을 열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자신의 삶에 대한 자질구레한 정보들에 큰 흥미를 보였다. 발렌타인데이 때의 데이트 같은 특별한 추억과 비교했을 때에도 3개월 전에 먹은 음식, 친구랑 나눈 대화 같은 정보들이 비슷하거나 혹은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 삶에 대한 정보라면 어떤 자질구레한 정보라도 다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록’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내 삶에 대한 기록이라면 단편적인 것들도 다 자신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맛있게 먹었던 음식 사진 같은 사소한 것도 나중에 보면 단순히 무엇을 먹었다는 사실에 더해 이 때 자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특별히 축하하거나 위로할 일이 있었는지, 누구랑 먹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준다. 


여행을 다녀와도 결국 남는 것은 사진이라는 말처럼 사진 한 장만 봐도 이를 촉매로 우리가 인출할 수 있는 정보들은 무한대다. 결국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이를 기록하는 행위는 내 삶의 조각을 보관하는 행위에 가깝다는 것이다. 인생은 곧 시간이어서 아무도 삶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오직 기록하는 행위만이 지나가버린 삶의 조각들을 모아서 맞춰 볼 수 있게 도와준다. 


● 기록하는 글 쓰기


삶의 조각 맞추기는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해줄 뿐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함이라고들 이야기한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기보다 어떤 사건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다른 방향의 해결책은 없었는지 같은 논리적 흐름과 인과관계에 더 집중한다. 나 자신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 역시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심리학자 키티 클레인은 대학생들에게 2주 동안 하루에 20분씩 요즘 가장 고민인 것들을 적어보도록 했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왜’ 발생했는지,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인과관계를 서술하도록 했다. 또 다른 학생들에게는 단순히 일어난 사건을 나열하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이후 이 두 그룹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했다. 


그 결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논리적으로 정리해본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우선 스트레스가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작업 기억력(working memory: 컴퓨터의 RAM과 같이 여러 테스크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작업기억 용량이 적으면 일이 조금만 많아져도 버벅거리게 되는 등 능률이 떨어진다.) 또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보기도 전에 실패할까 걱정하는 탓에 에너지 소모만 많고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효율도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생각을 정리해본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더 높은 학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이 복잡할 때 글쓰기 등을 통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걱정을 내려 놓고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감정을 해소하는 글쓰기

 

괴로운 감정들에 휩싸여 있을 때도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된다. 충격적인 사건이나 큰 스트레스가 발생했을 때는 감정을 잘 해소하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때로 곱씹기 형태로 나타나 기억 속에서 머물며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진짜 원인을 찾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텍사스대의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의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복잡한 감정 상태를 이해할 때에도 내가 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분석하며 글을 써내려가는 행위가 감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복잡한 마음 상태에 대한 기록은 때론 ‘표출’의 역할을 하며 감정의 해방구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윌프리드 로리어대의 심리학자 민디 포스터는 연구 결과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겪은 성차별에 대해 털어 놓은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행복도가 상승했다고 밝혔다. 청자가 낯선 사람들이기에 더 쉽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 법이다. 


미투 운동처럼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 놓는 행위는 집단적인 공감과 분노, 나아가 사회 변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작은 기록 또는 표현이 개인의 삶, 나아가 사회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작은 표현의 효과가 이렇게나 크기 때문에 학자들은 생각이 담긴 글쓰기를 자주 하도록 권한다. 특히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차분히 앉아 사진을 정리해보거나 일기를 적어보는 것이 작은 등불이 되어 가야할 길을 비춰줄 수도 있다. 


● 해보기


평소 자신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부분이나 최근 마음 속을 어지럽혔던 사건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하나를 골라서 적어보도록 하자. 자신의 어떤 부분인지 또는 어떤 사건인지 2-3줄 정도로 적어보자. 


① 그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가.
② 지금 다시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③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그것들은 어떤 사실인가.
④ 억누르고 싶은 감정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어떤 감정인가.


위에 적은 내용들을 찬찬히 읽어보도록 하자. 쭉 읽어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다시 적어보도록 하자. 새로운 깨달음이나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면 적어보도록 하자.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다. 며칠 후 다시 들여다보고 비슷한 작업을 해보도록 하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들이 있다면 글쓰기로 풀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ennebaker, J. W. (2004). Writing to heal: A guided journal for recovering from trauma and emotional upheaval. New Harbinger Publisher.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