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과 붉은 체리…밋밋한 글을 특별하게 ‘오감을 자극하라’
[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
생명력 있는 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내 글에서 생동감이 사라지면서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글을 쓰고 싶은 의욕마저 꺾이게 되죠. 죽어 있는 듯한 글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평면적인 글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뭘까요? 

하얀 눈과 붉은 체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글이 가능한 한 멀리 퍼져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글이 강한 확산력을 갖겠죠. 더 강력하고 기억에 남는 생생한 표현법은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읽으면서 어떤 이미지나 소리가 생각나게 하는 글이라면, 선명한 인상을 남겨서 잊히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냥 차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빨간 스포츠카, 그냥 나무가 아니라 플라타너스, 이런 식으로 읽는 이들이 시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써주면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하얀 눈’이나 ‘붉은 체리’는 중복 어휘일 수 있지만 감각을 자극하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이 글을 더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훅 치고 들어오는 강렬한 향! 홀린 듯 고개가 돌아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이 온통 붉다. 향긋한 내음을 풍겨대며 작은 씨가 앙증맞게 박힌 그 탐스러운 열매를 마주친 순간,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오직 본능뿐이다. ‘아! 어쩜 좋아, 너무 먹고 싶어.’”

제 강의를 들으셨던 수강생 한분의 글인데요, 이 글을 읽고 다들 한동안 딸기가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먹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납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글, 읽으면서 영상이 바로 떠오르는 글을 쓰기 위해서 연습하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빨간색이라는 말은 쓰지 않고, 루비, 토마토, 불꽃같이 빨간색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써보는 겁니다. 위에 소개한 글도 그런 연습을 위한 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청각을 자극하기 위해 ‘소리’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소리에 대한 글쓰기도 해볼 수 있겠죠. 이 연습은 굳어진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워밍업으로도 좋습니다.

글이 막힐 때 ‘나는 ~을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렇게 상황을 설정하면 감각적이고 외향적인 시점으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감각적인 글을 쓰기 위해선 ‘말하지 말고 보여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글로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아파트 단지 사이를 걸어서, 상가 앞에 도착했다. 간판도 없었다. 두리번거리다 가파른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무대로 보이는 공간과 3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작은 현수막에는 마을문화창작소라고 쓰여 있었다. 마치 대학 시절 동아리방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감성 조명 불빛 아래 테이블에는 복사된 대본들과 약간의 간식이 놓여 있었다.”

이 글 역시 그런 연습의 일환으로 썼던 수강생의 글입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곳임에도 그 장소가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그곳의 공기나 분위기가 느껴지죠.

제목, 적정한 수위로 정확하게

저는 ‘짧은 글의 힘’을 강의하고 있지만 글쓰기 지도를 하다 보면 화려체를 잘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화려체는 비유와 수식이 많아 화려하고 선명한 인상을 주지만 자칫 잘못하면 만연체가 되어서 장점을 잃고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글의 구성 단계별로 적합한 문체가 있는데, 화려체는 ‘기승전결’ 중 ‘승’ 부분에서 구사한다면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글의 반전과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인 ‘승’ 부분에서 화려체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빌드업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입니다. ‘기’나 ‘전’ 부분은 간결체나 건조체의 단문으로 구성하면 오히려 대비가 되면서 서로 부각되는 효과도 노릴 수 있습니다. 강의를 하다 보면 글쓴이 각자가 가진 장점이 다르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자신의 강점과 글 스타일을 아는 건 중요합니다. 단점을 찾아내서 없애는 방향보다는 장점을 키워나가는 게 색감 있는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글을 위해 하나 더 추천하고 싶은 건 생략과 함축입니다. 그림책 작가 시드니 스미스는 “내가 쓴 글을 거의 한 단어 건너서 지워야 한다. 그렇게 하면 글에 생동감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너무 구구절절 자세히 다 설명하려고 하면 글을 읽는 사람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를 확실하게 드러낼지, 어떤 부분을 숨기거나 생략해서 읽는 사람이 생각하게 만들지를 고민해서 쓴 글이 사람들에게 더 오래 기억됩니다. 비어 있는 부분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채워 넣어서 읽게 되면 그 글에 더 공감하게 되고 자신의 상상력이 가미돼 더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되니까요.
 

글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제목은 글의 첫인상이기 때문에 그 글에 대한 선입견과 기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적정한 수위의 정확한 표현이 중요합니다. 제목이 너무 거창하면 그만큼 읽는 사람의 기대치를 높여서 글을 다 읽고 난 뒤에 실망감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처음에 제목부터 적고 글쓰기를 시작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다 쓰고 난 다음에 맨 마지막에 제목을 붙이십니까? 저는 제가 쓰고자 하는 글에 어울릴 것 같은 제목을 적고 글을 시작한 다음에 다 쓰고 나서 제목과 글의 내용이 부합하는지 다시 살핍니다. 이렇게 해야 제목과 글이 따로 노는 경우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좋은 제목 역시 짧은 글쓰기와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짧고 쉽게’죠. 제목은 그 글의 상표이자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기억에 남으려면 한번에 읽고 기억하기 쉬어야 합니다. 짧고 쉬울수록 임팩트가 있습니다. 제목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해도 안 됩니다. 너무 어려운 단어나 수식어가 많으면 글을 읽기도 전에 지쳐버릴 수 있습니다. 제목에 글의 주제가 반영되면 좋지만, 전체 내용이 요약 정리된 듯한 제목은 글에 대한 호기심을 싹둑 잘라냅니다. 제목을 지을 때도 짧은 단어가 강력하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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