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결’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 이야기 공식


기, 흥미 유발해 계속 읽고 싶게
승, ‘전’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전, 주제 드러내 감동·영향 줘야
결, 문제의식 환기하며 마무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글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의 하나가 복잡하고 어려운 긴 글이 누군가를 잘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글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요. 긴 글은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핵심을 흐려서 독자를 어수선하고 산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짧은 글에 대해서도, 논리적이지 않다거나 구성이 필요 없을 거라고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분량과 상관없이 설득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글의 전개 방식과 구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글의 설계와 구성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요리도 조리 순서와 재료 비율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글의 맛을 위해서도 순서와 배치, 분량 조절이 필요합니다. 그럼 어떤 구조가 글을 재미있게 할까요?

‘기·승·전·결’은 오랜 세월 검증된 ‘이야기의 공식’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스토리가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이 공식을 따르죠. 이야기를 단계적으로 축적해가면서 발전 과정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논리적인 글의 구성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고 풀어나갈지 좋은 길잡이가 되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구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룰을 따릅니다.

 

단정적 표현은 피하고 스며들게

‘기·승·전·결’ 네 단계 중 가장 중요한 건 ‘전’입니다. ‘전’에선 ‘결’로 가기 전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 핵심 포인트가 드러나면서 독자가 가장 감동받고 영향받습니다. 그 앞에 있는 ‘기’와 ‘승’은 모두 ‘전’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입니다. 지난 연재에서 내 글이 길을 잃지 않고 한 방향으로 잘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즉 주제를 미리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시작하자고 했었는데요. 저는 그 한 문장을 이 ‘전’ 부분에 써놓고 이 얘기로 가기 위한 효과적인 ‘기’를 구상합니다. 제일 먼저 ‘전’ 부분부터 쓰고, 그다음에 ‘기’, 그러고 나서 ‘기’와 ‘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위한 ‘승’을 쓰는 식이죠. 이렇게 시작점과 목적지를 정해놓으면 글쓰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여러분이 감명받은 글이나 책을 되짚어볼 때도 그 글의 ‘전’ 부분이 어딘지부터 파악하고, 그걸 위해 ‘기’와 ‘승’이 어떻게 살을 붙여가는지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결’은 ‘전’에서 풀어놓은 주제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시키는 부분입니다. 독자에게 모든 게 해소된 고요한 안정감과 여운을 남기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심할 점이 있다면 ‘전’이나 ‘결’ 부분에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너무 직접적으로 말해버리면 독자에게 강요하고 가르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말투나 어미 처리에서 너무 단정적이면 연설하거나 주장하는 것처럼 들려서 오히려 반감을 주거나 거리를 두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세요. 내 글에 직접적인 표현이 없어도 내 글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내가 담고자 했던 메시지가 읽는 이들에게 전해진다면 진짜 좋은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른바 ‘스며드는 글’이죠.

‘전’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은 ‘기’입니다. 독자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해서 계속 읽고 싶게 해야 하니까요. ‘기’ 부분에서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면서 시선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기’ 부분은 읽는 사람뿐 아니라 쓰는 사람에게도 중요합니다. ‘기’가 잘 서면 추진력과 자신감이 생겨서 ‘승·전·결’로 속도감 있게 이어지게 됩니다. 첫 문장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제목만큼이나 그 글의 첫인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간결하지만 강력한 한 문장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습니다.

‘승’은 ‘기’에서 던져놓은 생각할 거리에 대해서 힌트를 주는 듯한, 그리고 ‘전’에서 드러나게 될 주제·요점에 대해 비유나 비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하는 내용으로 채워 넣으면 됩니다. ‘승’은 ‘전’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다리이자 쉼터입니다. ‘전’에 담기게 될 메시지를 더 강하게 만들거나 부각시키기 위한 단계니까요.

간결한 ‘기·전·결’

‘기·승·전·결’ 각각에 해당하는 분량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가장 짧아야 하는 건 ‘결’입니다. 사실 ‘결’은 없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전’에서 충분히 전해졌다면 오히려 ‘전’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게 더 강력할 수 있습니다. ‘결’이 한 말을 또 하는, 군더더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다음 간결해야 하는 건 당연히 ‘기’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너무 길어지면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어서 읽고 싶은 마음을 꺾어버릴 수도 있죠. 글 자체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가장 분량이 많아야 하는 부분은 ‘승’입니다. 다른 부분에 비해 전개가 좀 완만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부분입니다. ‘전’ 부분의 주제와 반전을 위한 장치를 위해서 ‘승’ 부분의 분량 할애는 불가피합니다. 마침내 ‘전’ 단계에 들어가서는 속도가 빨라지고 길이는 짧아집니다.

이런 식으로 ‘기·승·전·결’의 분량을 지키는 것, 각각에 해당하는 내용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전개시키는 것만으로도, 읽는 사람들에게 논리적이고 재미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면서 글쓰기 실습과제를 내줄 때는 A4용지 한장 분량에 맞춰 쓰는 연습을 합니다. 짧게 줄이고 쳐내는 연습인데요. 네 단락 구조에선 ‘기·승·전·결’ 구조로 각각 하나씩의 단락을 쓰면서 분량을 달리합니다. 다섯 단락 구조에선 ‘승’ 부분에 두 단락을 할애합니다.

‘기·승·전·결’ 구성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그다음 단계는 이걸 약간 비틀어보는 겁니다. 봄이 오니까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을 피우기 위해 봄이 오게 한다고 생각하고, 문장과 문장, 혹은 문단과 문단의 순서와 배치를 바꾸다 보면 어느 순간 최적의 배열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장을 어떤 순서로 배치하느냐, 문장과 문장 사이를 어떤 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글의 재미가 달라지거든요.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배치와 구성이 평범한 글을 드라마틱하게 살려낼 수 있습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 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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