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상상력

이상렬


문학에 있어서 상상력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상상력은 현실을 넘어 이상의 세계로 나아 갈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인간 정신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준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상상한다. 상상은 마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상상력이 없이는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다. 끝없이 날개를 펴는 상상력을 주관적 감성의 표출로 오인하기도 한다. 그 상상은 오성을 도와 대상과 사물의 진실을 찾아내는 결정적이 구실을 한다.”고 했다.

수필은 문학이기에 예외일 수 없다. 수필이 사실의 문학, 체험의 문학이라고 하지만 상상은 사실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변형시켜 더 다양한 문학적 유희를 누릴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하면 수필에서의 상상력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무수한 감각적 흔적을 사용하여 새로운 사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좋은 수필을 쓴다는 것은 작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채득된 경험을 상상력에 의해서 얼마나 잘 들어내느냐에 달렸다고 하겠다.

단, 수필에 있어서 상상력은 아예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식의 소설적 허구가 아니다. 과거의 체험위에 미학적인 옷을 입히는 과정이며, 진실을 바탕으로 보다 자유로운 사고와 생각을 확대시키는 작업이다. 이런 상상의 힘을 빌어서 수필 미학을 실현하게 되고 예술적 깊이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수필에서의 상상은 한계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수필이 자기 고백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상, 상상은 사실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수필 상상력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제약성이 오히려 ‘수필다움’ 의 자리를 차지하는데 득(得)이 된다. 수필이 문학성을 구축하기 위한 상상의 한계는 타 장르와는 달라야 한다. 수필의 상상이 소설적 허구와 구별이 되는 것은 그 상상조차 체험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이라는 한계성, 결핍과 불완전함은 본능적으로 희망을 갈구하게 한다. 그 희망을 창조적 상상으로 이끌어 낼 때 가장 수필다운 예술성이 부여된다.

그렇다면,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이란 무엇일까. 수필에 있어서 상상력은 기본적으로 있을 법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상상력에 대해서 영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코올리지는 ‘제1상상과 제2상상으로 나누고, 문학창작에 필요한 것은 제2상상이다.’ 으로 구분했고, 영미 소설가 헨리 제임스 ‘재생적 상상과 생산적 상상’ 으로, 문학평론가 홉즈 ‘모방적 상상과 창조적 상상’ 으로 나누었다. 모방적 상상이 기억에 가까운 의미의 상상으로 과거의 사건을 마음속에 떠올려 현시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라면, 창조적 상상은 문학 창작에 필요한 상상으로 기억의 잔상을 분해 결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수필적 상상은 이 단계에 속한다. 과거의 체험이나 사건의 기억들을 재생해 낼 때, 흐릿한 사실을 상상을 의존하여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때 과거의 사건이 비록 희미할 뿐이지 결코 허구는 아니다. 그 아련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실제를 상상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여 되살려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에 내가 처음 보았던 무지개를 기억 속에서 다시 재생시켜 현시점에서 언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필은 작가의 기억 창고에서 끄집어 낸 체험 위에 상상이 농축될 때 진정한 수필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된다. 그것은 허구 수용에 대한 유혹이다. 일반적으로 문학의 기본 특성은 허구다. 수필에 있어서 허구 수용을 어떻게 보느냐의 논쟁은 오래부터다. 수필의 문학성 확보를 위해서 허구 수용에 대한 적극적인, 혹은 부분적인 필요성을 느끼는 시대다. 이것은 이른바 문학이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힌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근래에는 허구의 부분적인 수용론이 늘어나는 추세다. 정진권은 ‘문학의 창조적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면 허구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고 말했고, 공덕용은 ‘허구가 있음으로써 사람의 정신세계는 풍요로워지고 생활의 폭은 넓어진다.’ 고 했다.

하지만 수필은 사실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므로 기본적으로 허구를 배제한다. 수필이 작가의 실제적 체험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불문율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수필은 허구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허구를 배제한 수필의 ‘수필다움’ 을 어떻게 고수할까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 해결책이 바로 ‘수필적 상상’ 이다. 수필의 상상력은 허구의 문제와는 별개이다. 소설의 허구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수필에서의 허구는 ‘사실’ 을 바탕으로 한 상상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공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있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그 꽃들을 꺾을 수는 없다. 꺾을 수는 없는 이유는 공원의 규칙일 수도 있고 자신의 도덕적인 양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약 그 꽃을 꺾는다면 누구에게 줄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 꽃을 받고 행복해할 사람의 모습도 함께 떠올려 본다. 이런 상상은 작가 혼자만의 기쁨일 수도 있겠으나,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재미와 흥미를 준다. 상상이 체험의 한계성을 극복하며 그 체험을 재창조하게 될 때, 일상의 평범한 체험은 일약 문학으로 승화되는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함정이 하나있다. 수필 본연의 상상이 아닌, 단지 문학적 범주에 들기 위한 상상이 될 때 본질이 가려지는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상상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상상은 사실이 가지는 구체성과 실제성에 메이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에는 일차적인 재료를 극소화하고 자유롭게 변형시켜 원래의 사실이나 실재보다 다양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심리가 작용한다. 이러한 상상이 구심점을 상실하고 지나치게 확대되면 진실에 도달하는 길이 흐려질 수 있다. 경계 모호한 사유가 넘치면 추상적 관념과 언어의 분방한 부딪힘만 남을 가능성도 크다. 이는 탐미주의가 보여주는 부정적인 경향이다.” 이 순간, 수필의 수필다움을 상실하기가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필에서 상상력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왜냐하면 수필은 단순 ‘사실기록’ 을 뛰어넘어 창조하고 상상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 또한 언어예술이라는 태생적 문학 요소를 지녔기에 “창조성을 지향한다. 이 창조성의 본질은 새로운 질서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가는 수필 창작 과정에서 창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 전략은 어떤 방식이든 간에 작가의 실제경험을 그대로 옮겨 담기보다는 변용할 수밖에 없다. 이를 수필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허구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필적 변용, 이것은 실제경험을 바탕으로, ‘사실기록’ 이라는 수필의 본질에 이탈하지 않으면서, 또 생각을 독점할 수 없다는 상상의 고집을 품고 마음껏 나래를 펼쳐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오늘의 수필은 사실과 허구, ‘수필다움’과 ‘문학다움’ 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는 듯하다. 이것을 뛰어 넘어 작품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수필의 상상력’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