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어디까지가 여름이고 어디부터가 가을일까
누가 벗어놓은 신발을 돌려놓았다
오늘 나는 아주 먼 곳에 있다
그리고 당신의 얼굴은 침엽수처럼 무표정하다
젊은 어느 날의 책 속처럼 지금도
사슴공원 어딘가에선
사랑이 생기고, 비가 내리고
멀리 빈 들판엔 철새가 돌아온다
누가 구름을 사라지게 하고
비를 멈추게 할 수 있나
투명 비닐봉지에 금붕어를 담아 들고
한 소년이 급히 어딘가로 달려간다
공원에 잇닿아 있는 장례식장 마당에서
어느 가족이 늦은 상복을 갈아입고 있다
사슴울음소리[鹿鳴*]를 들으며
나도 서둘러 당신에게 가야 한다
사랑이 식기 전에
밥이 식기 전에
* 녹명(鹿鳴)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사슴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