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에
내 삶에 숫기 없기를,
나는 이미 뿔을 가졌으므로
내 삶에 발톱 없기를!
내 눈에 물기 없기를!
눈 대신 쇠꼬챙이를 가졌으므로
지금 내 손에 감긴 때 묻은 붕대,
언제 나는 다친 적이 있었던가
지금 내 머릿속 여자들은
립스틱 짙게 처바른 양떼들인가
해묵은 상처는 구더기들의 집,
물 많은 과일들은 물이 운 것이다
청개구리처럼 이 시를 반대로 짚어본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숫기와 발톱이 있어야 하고 눈에 물기가 가득해야 한다. 오래전에 다쳤던 손이 아니라 지금 막 상처 입은 손을 가져야 하고, 사랑할 대상은 머릿속이 아니라 눈앞에서 활어처럼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해묵은 상처가 아닌 펄펄 살아 움직이는 ‘오늘의 상처’를 지녀야 한다. 마음은 물러터진 과일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베어 먹고 싶어지는, 신선하고 단단한 과일이어야 한다.
화자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와 반대의 상황에 거처하기를 바라고 있다. 사랑의 터전으로서의 몸이란 고통스러울 테니 모나지 않고, 뜨겁지 않은 감정을 지니길 원한다는 고백이다. 하지만 사랑을 멈춘 존재는 “구더기들의 집”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의 독백은 차라리 지난 사랑에 대한 회한, 혹은 그리움으로 읽힌다. 이성복 시인의 시는 읽다가 크게 놀라게 되는 때가 많은데 “물 많은 과일들은 물이 운 것”이라는 구절에서는 감탄했다.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과일 앞에서 래여애반다라, 탄식하게 될 것 같다. 제목 ‘래여애반다라’는 향가에 나오는 한 구절인데, 시인은 이를 “오다, 서럽더라”로 풀이한다 했다. 지나간 사랑도, 지나가는 중인 사랑도 종국엔 모두 서러운 일 아닐까.
박연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