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 곧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이 세 마디의 가르침은 10세기 중국 북송 때의 문인 구양수가 남긴 말이다. 자그마치 천 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때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세 가지의 순서를 편의대로 바꾸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기엔 실로 벅차기 짝이 없다. 시간도 많지 않다.

나는 시를 쓰려는 당신에게 색다른 세 가지를 주문하려고 한다.

첫째, 술을 많이 마셔라. 그렇다고 혼자 마시면 안 된다. 술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지 주정을 부리기 위한 약물이 아닌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지루한 일상 너머를 꿈꾸는 일은 시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시인은 일상이라는 유리그릇을 박살내는 자가 아니다. 유리그릇에 빗금을 긋는 자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를 쓰려거든 백 잔의 술을 마신 다음에 쓰라. 그렇다고 해서 술이 깨지 않은 비몽사몽의 시간에 펜을 잡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있어도 ‘취중진문’이라는 말은 없다. 나는 지금도 ‘주력(酒力)은 필력(筆力)’이라는, 세상에 있지도 않은 말로 학생들을 꼬드겨 술잔을 권한다.(단,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권하지 않으며, 그런 사람하고는 상종할 일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둘째, 연애를 많이 하라. 천하의 바람둥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무릇 모든 연애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연애시절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애의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수없이 많은 관계의 그물들이 복잡하게 뒤얽힌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훌륭한 연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연애감정도 없이 시를 쓰려고 대드는 일은 굳은 벽에 일없이 머리를 부딪치는 것과 같다. 담쟁이넝쿨은 담하고 연애하면서 담을 타고 오른다.

셋째, 시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많이 쓰지 말고, 많이 생각하지 말고, 제발 많이 읽어라. 시집을 백 권 읽은 사람, 열 권 읽은 사람,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 중에 시를 가장 잘 쓸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초보자가 쓴 시의 성패는 분명히 독서량에 비례한다. 여기에서 시를 많이 읽는다는 것은 쓰기의 준비 단계이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시를 접하지 않고서는 좋은 시를 선별할 수 없으며, 좋은 시를 쓸 수도 없다.(좋은 시가 무엇인가 하는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자.)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는 그의 방대한 저서 <인정>에서 “문장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라 오랜 세월 노력이 쌓여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읽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삼대 이상 의원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병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문장 또한 그렇다. 반드시 오래도록 노력한 다음에야 능숙하게 글을 지을 수 있다. 글을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세상을 다스리는 경학(經學)을 읽어서, 문장의 기초와 뿌리를 단단하게 세워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역사 관련 서적들을 두루 공부하여 나라와 개인이 흥망성쇠하는 근원을 알아야 하고, 일상생활에 유용한 실용 학문에도 힘을 쏟아 옛사람들이 남겨 놓은 경제서를 즐겨 읽어야 한다. …내가 말한 대로 해 본 다음에 안개 낀 아침이나 달 밝은 밤, 짙은 나무 그늘과 가랑비 내리는 때를 만나면 문득 감흥이 일어나 시를 읊게 되고, 문장의 구상이 떠올라 글이 써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 자연의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생동감 있는 글을 짓는 문장가의 창작 활동이다.”

나는 시창작 강의 첫 시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을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모두 200권쯤 된다. 목록을 받아든 학생들의 입이 딱 벌어진다. ‘어느 세월에?’ 하는 표정들이다. 내가 강의하는 건물에는 국악과가 있어 가야금이나 거문고 따위를 들고 오르내리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악기라고 설명한다. 시집은 악기처럼 비싸지 않고, 무겁지 않고, 고장이 나지도 않는다. 시집을 읽기 위해서는 연주 연습을 하듯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 어디에서든 가방에서 잠깐 꺼내 읽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는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쏙 드는 시를 만나면 노트에 적어두었다. 그렇게 필사한 시가 대학노트 세 권에 가득하였다. 지금도 문예지를 읽다가 좋은 시를 만나면 반드시 따로 옮겨 적어 둔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필사를 권한다. 아니, 거의 강요한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이면 수백 편의 시가 적힌 자기만의 시집이 오롯이 남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다양한 시를 읽는 것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과 같다. 나는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내가 요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거기에 들어간 재료와 음식의 빛깔과 요리방법에 대해 꼼꼼하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 번 먹어본 특이한 음식은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훌륭한 관찰의 소재가 되고, 그 기억은 또한 멋진 시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법이다. 곧 맛있는 시를 많이 음미해본 사람이 맛있는 시를 쓸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 막상 주위에 시 한 편도 시집 한 권도 옆에 없다면 어찌해야 하나? 그때는 귀를 열고 들으면 된다. 세상의 여러 소리를 듣는 행위도 책을 읽는 행위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기형도는 어릴 적에 열무를 팔러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새어드는 빗소리를 들었다. 황동규는 <풍장 27>(아래 시)에서 빗소리를 듣기 위해 세상 뜰 때 귀만 두고 가겠다고 한다. 손과 발과 입과 눈은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오직 귀만 두고 가는 이 마음 역시 세상을 귀로 읽으려는 귀한 자세다.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2. 재능 믿지 말고 열정을 믿어라



1970년대만 해도 아이들이 읽을 만한 잡지가 흔하지 않았다. 시골 초등학교 도서실로 다달이 오던 <어깨동무>는 몇 해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도서실에서 책을 정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깨동무>가 든 봉투를 처음 개봉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정말 한 줄도 빼지 않고 읽었다. 집으로 잡지를 가져가서 읽는 날도 있었다. 물론 도서실의 ‘권력’을 이용한 불법대출이었다. 우리 집 건너편 방앗간 할머니는 혼자 살았는데, 내가 슬픈 이야기를 읽어주는 걸 좋아하셨다. 물레를 돌리며 명주실을 뽑는 할머니 옆에서 글을 읽어주면 할머니는 자주 슬피 우셨다. 그 덕분에 나는 누에고치 속의 번데기를 얻어먹거나 가끔 십원짜리 동전을 두어 개 얻을 수 있었다.

책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내가 가장 하기 싫은 공부는 글쓰기였다. 독후감을 쓰기 싫어 책을 읽다가 덮어버린 적도 많았다. 매일 일기장 검사를 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나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숙제로 쓴 일기를 5학년 여름에는 날짜만 바꿔 제출하기도 했다. 해마다 학교에서 백일장이 열리면 나는 시(운문)를 썼다. 시가 좋아서가 아니라 길이가 짧기 때문에 빨리 쓰고 뛰어놀기 위한 속셈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지에 처음으로 투고한 시는 심혈을 기울여 썼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실리지 않았다. 나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함부로 단정 짓고 말았다. 좋은 시를 고르는 선생님의 안목에 문제가 있다고! 그리하여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문예반에 들어가 시를 써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장래에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 교지에 적어도 시 한 편만은 꼭 실리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내 삶의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다시 그리면서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살아가는 꿈을 꾸게 된 것은 30여 년 전, 거기서, 그렇게 비롯되었다.

천재 시인이 과연 있을까? 내가 보기에 천부적으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시인이란 애초부터 없다. 어떤 시인의 재능에 대한 찬사는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찬사이지 인간으로서의 천재성을 인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천재 시인이라는 말이 랭보의 이름 앞에 붙는 것은 십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경악할 만한 상상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이상의 앞에 이 말이 붙는 것은 그의 파격적인 실험정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천상병 시인을 가리켜 ‘천상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전에 보인 낭만적이고도 기구한 행적에다 그의 이름에서 연상된 말놀이를 결합한 결과이다.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 회의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은 자신의 게으름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다.

데이비드 베일스와 테드 올랜드는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서 예술가가 “자신이 가진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쓸모없고 흔한 에너지 소모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즉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눈부신 천성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의 깊게 볼 것은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배워 나가며 발전한다”는 대목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 혹은 ‘시를 창작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그 창작물을 통해 변화·발전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한 편의 시는 독자들을 감응시킬 뿐만 아니라 창작자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좋은 공부거리가 된다. 좋은 시든 나쁜 시든 ‘이미’ 창작한 한 편의 시에는 ‘앞으로’ 창작할 시의 방향과 원리가 다 들어 있다. 또한 어렴풋하게나마 시인이 살아가면서 지향해야 할 삶의 지침까지 들어 있기 마련이다.

시인이라는 존재의 엄숙성은 거기에서 발생한다. 시라는 양식이 원래부터 엄숙하고 고결한 품격을 타고난 것은 아니며, 그리 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예술 창작의 결과물인 시는 하나의 창조적 생명으로서 시인을 간섭하고, 가르치고, 지시하고, 격려하고, 고무하고, 나아가게 하고, 물러서게도 한다. 그래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순간,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살아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 무서운 진리 앞에서 시인은 엄숙해질 수밖에 없다.

시인으로서 타고난 재능에 기대어 시를 기다리지 마라. 그리고 재능이 없다고 펜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지도 마라. 그렇게 하면 시는 절대로 운명의 조타수가 되어주지 않는다. 시인 역시 시의 길을 여는 조타수가 되려면 선천적인 재능보다 자신의 열정을 믿어야 한다. 일찍이 이광웅 시인은 “뭐든지 / 진짜가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고 했다. 열정의 노예가 되어 열정에 복무할 때 우리는 그 열정에 대한 신뢰를 가까스로 재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중에 ‘시는 감성으로 쓰고, 소설은 노력으로 쓴다’는 허무맹랑한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 감성이 무뎌진다’는 출처불명의 유언비어도 떠돈다.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고 선량한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이려는 헛소리들이다. 시를 쓰는 당신은 이런 말들에 귀가 어두워져 펜 끝을 흐리지 마라.

아무리 짧은 시 한 편을 쓰더라도 단편소설 한 편을 쓰는 것에 버금가는 시간을 투자하고, 자료를 취재하고, 공력을 집중시켜라. 감성이 무뎌졌다 싶으면 나이를 원망하지 말고, 부단히 감성을 훈련하지 않는 자신의 나태를 탓하라. 청년에게는 청년의 감성이 있고, 노년에게는 노년의 감성이 있는 법이다. 감성이란 또 여성의 전유물도 아니어서 남성적인 감성도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열정을 품고 감성을 연습하고, 훈련하라.


생명이 요동치는 계절이면

하나씩 肉身(육신)의 향기를 벗는다.

온갖 색깔을
고이 펼쳐둔 뒤란으로
물빛 숨소리 한 자락 떨어져 내릴 때
물관부에서 차오르는 긴 몸살의 숨결
저리도 견딜 수 없이 안타까운 떨림이여.

허덕이는 목숨의 한 끝에서
이웃의 웃음을 불러일으켜
줄지어 우리의 사랑이 흐르는
五線(오선)의 개울.
그곳을 건너는 和音(화음)을 뿜으며
꽃잎 빗장이 하나둘
풀리는 소리들.
햇볕은 일제히
꽃술을 밝게 흔들고.

별무늬같이 어지러운 꽃이여.

꽃대궁 앓는 목숨의 꽃이여.

이웃들의 더운 영혼 위에
목청을 가꾸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 < 개화 >

고등학교 때 쓴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십대 후반의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기엔 시어에 좀 징글맞은 구석이 없지 않고, 완벽한 시도 아니다. 꽃잎이 막 열리는 순간을 그리기 위해 그 당시에는 말의 선택에 꽤 고심을 했던 것 같다. ‘육신· 색깔· 물빛·숨소리· 물관부·몸살·숨결· 떨림· 빗장· 목청’과 같은 명사들, ‘요동치는· 벗는다· 차오르는· 허덕이는 ·불러일으켜·뿜으며·풀리며· 흔들고’와 같은 용언들의 매혹에 빠져 미궁을 헤매듯 어지럽던 기억이 난다.

하나의 제재를 택한 뒤에 그것을 집중적으로 궁리하는 동안 감성은 자연스럽게 훈련이 된다. 시어와 제목의 유기적 관계를 따져보고, 시어와 시어 사이의 충돌을 살피는 일, 시적인 대상과 자아와의 거리를 조정하는 일들이 모두 감성의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뛰어난 요리사는 음식의 재료와 재료의 어울림에 예민하게 주목하는 자임을 잊지 말자. 특정한 제재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중국의 시인 아이칭(艾靑)이 그의 <시론>에서 한 말은 음미할 만하다.

“제재를 완전히 장악해야 비로소 예술세계의 통치영역을 확대하게 된다. 무릇 당신이 눈동자로 본 것, 귀로 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당신의 사상체계 속에 잘 짜 두어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명령에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감각과 사유가 한 제재로부터 습격을 당할 때, 한바탕의 격투를 치르게 하라. 그 제재가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게 하라.”

이 싸움의 과정은 몰입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몰입은 글쓰기의 중요한 바탕이면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는 온전하게 몰입할 때 온다. 시에 투자하는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몰입하는 시간의 깊이가 중요하다. 단 한 시간이라도 시에 집중적으로 몰입해 보라. 당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정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몰입을 열정의 이음동의어라고 부르면 어떨까?

 

 

3. 시마(詩魔)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똥’이라는 말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똥’이 삶의 실체적 진실이라면 ‘대변’은 가식의 언어일 뿐이다. 시는 ‘대변’을 ‘똥’이라고 말하는 양식이다. 그리하여 시는 ‘똥’이라는 말에 녹아 있는 부끄러움까지 독자에게 되돌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 슬그머니 미소를 띤다.

모름지기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똥’에 유의해야 한다. 절대로 ‘똥’을 무시하거나 멀리해서는 안 되며, ‘똥’이라는 말만 듣고 코를 싸쥐어서도 안 된다. 똥을 눌 시간을 겸허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똥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며, 똥하고 친해져야 한다. 똥을 사랑하지 않고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다. (똥을 괄시했다가는 얼굴에 똥칠당하기 쉽다.)

지난해 여름 나는 지리산 실상사 근처에서 한 보름 지낸 적이 있다. 시집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번잡한 세상의 일들을 뒤로 밀쳐두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았다. 내가 묵은 곳은 산 중턱의 외딴집이었다. 그 집 뒤로는 인가가 한 채도 없었다. 지리산의 한 능선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방안의 가재도구라고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휴지통 하나가 전부였다. 인터넷이나 전화도 없었다. 방 한 칸이 집 한 채인 집이었다. 다행히 전기가 들어와서 밤에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마당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세수를 할 수 있었다. 그 외딴집은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집이었다.

밤늦게 글을 쓰다 보면 늦잠을 자기 마련이어서 아침밥은 걸렀고, 점심과 저녁은 실상사 공양간에서 얻어먹었다. 그렇게 하루 두 끼를 먹고 이튿날 눈을 뜨면 어김없이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화장실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게 귀찮아서 매일 뒷산에서 ‘큰일’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절밥을 먹었으니 땅에게 똥을 돌려주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삽 한 자루와 휴지만 달랑 들고 숲 속으로 가면 곳곳에 내 똥을 받아줄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산에서 똥을 누는 사람이 되었다. 아, 나는 그 아침의 오묘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것은 똥 혼자서만 풍기는 냄새가 아니었다. 흙과 똥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기막힌 화음이었다. 도시의 화장실은 똥을 감추고 그 냄새를 지워버리려고 애를 쓰지만, 흙은 숨기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양변기에 눈 죽은 똥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흙속에 눈 똥은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흙속에서 똥은 오롯이 살아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덕분에 시 한 편을 얻었다.

뒷산에 들어가 삽으로 구덩이를 팠다 한 뼘이다// 쭈그리고 앉아 한 뼘 안에 똥을 누고 비밀의 문을 마개로 잠그듯 흙 한 삽을 덮었다 말 많이 하는 것보다 입 다물고 사는 게 좋겠다// 그리하여 감쪽같이 똥은 사라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산을 내려왔다// ─똥은 무엇하고 지내나?// 하루 내내 똥이 궁금해// 생각을 한 뼘 늘였다가 줄였다가 나는 사라진 똥이 궁금해 생각의 구덩이를 한 뼘 팠다가 덮었다가 했다

제목은 <사라진 똥>이다. 나는 도라지꽃 앞에서, 싸리꽃 앞에서, 칡꽃 앞에서, 애기원추리꽃 앞에서, 이름도 모를 버섯들 앞에서 매일 똥을 눴다. 그러고는 삽으로 꼭꼭 덮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절밥을 먹고 똥을 땅에게 돌려주었더니 땅은 또 많은 것을 내게 선물하였다. 매미소리, 새소리, 계곡 물소리, 소나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아침마다 나를 응원하는 듯하였다. 실상사 약사전의 부처님께 나도 무엇인가를 바치고 싶었다. 그리하여 <공양>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이 더 씌어졌다.

싸리꽃을 애무하는 山(산)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향기들을 ‘일곱 근’ ‘육십 평’ ‘두 치 반’ ‘칠만 구천 발’ ‘서른 되’로 계량화한 것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다. 2007년 7월부터 정부에서는 표준도량형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써 여러 단위의 혼용에서 오는 국가적 손실을 없애고 그 편리성과 효용을 국민이 누리게 한다는 취지가 그것이다. 이른바 실용적인 필요성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표준도량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는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시는 실용과 경제의 반대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무엇이다. 때로는 어슬렁거림이고, 때로는 삐딱함이고, 때로는 게으름이고, 때로는 어영부영이고, 때로는 하릴없음인 것이다. 시는 실용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와는 다른 시적 가치를 요구한다. 그것은 세상의 미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시작(詩作)이라고 하거나 시적 순간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시적인 순간은 쉽게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영감(靈感)이나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시적 순간은 의외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초보자는 시적 순간이 수시로 입질을 하는데도 그것을 낚아채는 때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그렇다. 시인이란, 우주가 불러주는 노래를 받아쓰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든 메모지와 펜을 챙기고 받아쓸 준비를 하라. 잠들기 5분 전쯤 기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아, 내일 아침에 꼭 그것을 써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잠들어버리지 마라. 영감은 받아 적어두지 않으면 아침까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해서 놓친 시가 수십 편이나 된다. 아쉬워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아예 메모지와 펜을 머리맡에 두고 잔다. 시마(詩魔)가 나를 괴롭힌다 싶으면 화장실에도 놓아둔다. 속주머니에도 넣어둔다. 당신도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4.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의 결별


만약에 당신이 ‘가을’을 소재로 한 편의 시를 쓴다고 치자. 당신의 머릿속에 당장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가을의 목록은 십중팔구 ‘낙엽·코스모스·귀뚜라미·단풍잎·하늘·황금들녘·허수아비·추석’과 같은 말들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당신의 상상력을 만나기 위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그러다가 낙엽은 ‘떨어진다’는 말로 연결되고, 코스모스는 ‘한들한들’이라는 의태어를 만나고, 귀뚜라미는 ‘귀뚤귀뚤’이라는 의성어와 결합하며, 단풍잎은 ‘빨갛게’ 물이 들 것이며, 하늘은 ‘푸른 물감을 뿌리다’는 문장과 조우하며, 황금들녘은 풍요의 이미지를 데리고 올 것이며, 허수아비는 반드시 ‘참새’를 불러들이고, 추석은 ‘보름달’로 귀결될 것이다.

이렇게 한심한 조합으로 시의 틀을 짜려고 한다면 그 순간, 그때부터 당신의 시는 망했다고 보면 된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 당신의 시는 상투성의 그물에 스스로 갇힌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상투성은 시의 가장 큰 적이다. 그것은 대상을 피상적으로 인식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독버섯과 같다. 겉은 멀쩡한데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독을 품고 있는 것이다.

“기계적인 우리들의 삶 속에 파묻혀 있는 세계를 관찰하고 느끼고 그것을 언어로 드러내는 일”을 오규원은 <현대시작법>에서 ‘미적 인식’이라는 말로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재라고 하더라도 시인의 미적 인식에 의해 재발견되지 않으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가 없으며 죽은 인식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죽은 인식은 죽은 언어를 불러온다. 시인의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는 죽은 언어를 구별하여 과감히 버리고 살아 있는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일이다.

연탄 이야기를 잠시 하자. 언제부터인가 내 이름 앞에 슬그머니 ‘연탄시인’이라는 말이 붙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나무 시인’이나 ‘풀잎 시인’이 아니고 하고많은 소재 중에 왜 하필이면 연탄이란 말인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마도 <너에게 묻는다>를 비롯해서 연탄을 소재로 몇 편의 시를 쓴 탓일 게다. 애초에 나는 연탄을 소재로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희생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다. 나는 연탄을 내세워 ‘가을’에 대해 쓰고 싶었다. 아니, ‘가을’을 쓰려고(‘가을’을 내 방식으로 인식하려고) 연탄을 끌어들였다는 말이 맞겠다. 옛날에는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꺾일 때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연탄이었다. 연탄을 실은 트럭과 리어카가 거리와 골목을 누비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가을이었다.

어릴 적에 내 자취방 부엌에는 늘 연탄이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내가 처음 배운 것은 자취방의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제때 갈아주는 일이었다. 연탄의 붉고 푸른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구들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나는 자주 바라보았다. 그 불꽃으로 밥과 국과 라면을 끓였고(몇 번이나 라면 냄비를 뒤엎었고), 양말과 운동화를 말렸고, 양은찜통에다 밤새 물을 데워 아침에 머리를 감았다.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연탄을 갈았고, 연탄구멍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잠이 가득 찬 눈을 비볐고, 그리고 연탄가스를 맡지 않으려고 몇 초 동안은 숨을 참아야 했다.

언덕 위에 있던 그 자취방을 나와 학교로 가려면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 했다. 겨울이면 눈 녹은 물이 비탈길을 빙판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아침에는 누군가 어김없이 비탈길에 연탄재를 잘게 부수어 뿌려놓곤 했다. 그 고마운 분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분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연탄은 내게 두 가지의 의미를 한꺼번에 선물했다. 하나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인식하는 소재로, 또 하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상징으로 나에게 온 것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이미지는 오히려 연탄보다 ‘촛불’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촛불이 연탄보다 더 시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상투성에 굴복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석정을 비롯해 이미 많은 시인들이 촛불의 자기희생을 노래했다. 지금 와서 그것을 굳이 시라는 형식에 담아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상투적인 동어반복만큼 비시적인 것도 없는 것이다(단 2008년 6월, 지금, 이 땅의 광장에서 켜지는 수많은 촛불은 또 다른 의미규정과 표현방식이 필요하다).

초등학생들에게 동시를 가르치는 교실에서도 문제는 수없이 발견된다. 2학년 1학기 <쓰기> 교과서에는 말의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반복되는 말이나 흉내 내는 말을 써보라고 하는 단원이 있다. 당신 같으면 다음 괄호 안에 어떤 말을 넣을 것인가?

‘토끼는 ( )뛰어간다.’

물론 정답은 ‘깡충깡충’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 중에 과연 토끼가 깡충깡충 산을 뛰어오르는 모습을 본 아이가 몇이나 될까. 아이들은 대부분 동물원이나 토끼장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토끼를 본 게 전부일 것이다. 이런 기계적인 동시교육은 ‘시냇물은 졸졸졸’ ‘새싹은 파릇파릇’ ‘흰 눈은 소복소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시라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표현의 경직성은 사고의 경직성으로 옮아간다.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머리를 딱딱하게 만드는 이런 나쁜 동시 교육을 이제는 한시바삐 집어치워야 한다.

“미(美)는 언제나 엉뚱하다”고 한 보들레르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이 다다르고자 하는 미적 인식을 위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창작의 신조로 삼으라. 시인 이문재는 문학청년 시절 <문학개론> 첫 시간에 노교수가 “문학은 인생이다”라는 문장을 칠판에 쓰는 걸 보고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고 한다.

“스무 살 봄날, 나에게 문학은 인생 그 이상이어야 했다. 문학은 인생의 멱살을 휘어잡거나, 인생과 무관한 강렬한 빛이거나 독약 같은 것이어야 했다. 나는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류시화와 어울리며, 고전음악 감상실을 찾았고, 대학로에 죽쳤다. 캠퍼스와 강의는 고루하고 지루했다. 우리에게는 파격이 필요했다. 고정관념과 선입견, 관습과 제도를 뛰어넘는 파천황이 절실했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불렀고, 본관 앞에서 막걸리에 도시락을 말아먹었다. 글씨를 왼손으로 썼고, 담뱃갑을 거꾸로 뜯었다.”

이런 행위를 단순히 문학청년의 치기로 볼 수만은 없다. ‘시적인 것’을 찾으려는 탐색의 정신은 혼돈과 암흑을 깨뜨리는 파천황의 정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당신이 늘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소소한 것에서부터 삶의 기미를 포착하고 파악하는 습관을 길러라. 사물을 반듯하게 보지 말고 거꾸로 보라. 세상을 걸어 다니면서 보지 말고 때로는 물구나무를 서서 바라보라. 지금부터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을 의심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던 것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을 선언하라.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 순간도 미적 인식에 다다를 수 없게 된다.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이지(李贄, 1527~1602)는 ‘동심설’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동심이야말로 ‘시적인 것’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요, 동심은 마음의 처음 모습이다. 그런데 동심은 왜 느닷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도리(道理)와 견문(見聞)이 들어와 내면에서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서 동심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더욱 쌓이게 되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날마다 더 그 폭이 넓어져서, 이에 아름다운 이름이 좋아할 만한 것임을 알게 되어 애써 이름을 드날리고자 하여 동심을 잃게 되고, 아름답지 않은 이름이 추함을 알아 애써 이를 덮어 가리려고 하여 또 동심을 잃게 된다.”

여기에서 도리와 견문은 고정관념, 구태의연한 사고, 인습적 가치관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학문과 사상의 영역뿐만 아니라 시의 영역에서도 진정성은 동심을 회복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상투적인 눈,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 진부한 언어로는 진정성의 끄트머리도 붙잡을 수가 없다. 새로운 것과 참된 것은 어린아이의 눈 속에 있다. 

 

5.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 것
무엇을 쓸 것인가?



미국 작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마에 피땀이 맺힐 때까지 그저 텅 빈 종이를 바라보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파울러)라고. 말이 쉽지 그건 또 얼마나 고역일 것인가. 그렇게 했는데도 단 한 줄의 글도 써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이 말은 어떤 소재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글을 쓰려면 집중적인 몰입의 자세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이다.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글을 구상하는 순간부터 퇴고를 완료할 때까지 당신을 따라다닌다. 그 ‘무엇(내용)’과 ‘어떻게(형식)’ 때문에 쩔쩔매는 아이들을 위해 이오덕 선생은 생전에 이렇게 일갈하셨다. “똥 누듯이 쓰라”고. 괜히 어깨와 펜 끝에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쓰라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찾고, 예쁘게 꾸미려는 마음을 없애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뜻은 이해하지만, 그러나 똥을 누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일상서 소재 찾고 꾸밈 없어야 좋은 글
릴케·두보보다 우리 시인 먼저 읽어야

그러면 다시 묻자. 도대체 무엇을 쓸 것인가?

첫째,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써라.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책을 읽어서 알게 된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경험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직접적인 경험만큼 생생하지는 않다. 남의 입을 통해 빠져나온 말을 받아 적다 보면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할 우려가 있고, 책으로 얻는 지식과 지혜를 말로 옮겨 적다 보면 현학이나 지적 허영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시인 김용택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큼만 시를 쓴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면서, ‘너희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아니까, 나는 그것을 쓰겠다’는 그만의 독특한 창작 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적었더니 시가 되더라”는 말도 했다. 이때의 ‘어머니의 말씀’은 바로 어머니와 함께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이라는 의미다.

둘째,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써라. 시인 이정록의 말을 잠시 경청해 보자.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전화를 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 보라고 한다. 그걸 쓰라고 한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고 한다. 단언컨대,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안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그는 ‘문지방 삼천리’라는 말로 기발하게 압축했다. 삼천리는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다 둘러보지 못한다. 애써 둘러볼 필요도 없다. 문지방 안에 삼천리가 다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시를 찾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한마디 더 귀띔한다. “오래 들여다보면 모두 시가 된다.” 역시 이정록의 어록이다. 기억해 두자.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좋은 시를 쓰려면 당신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젊은 우리나라 시인의 시부터 읽어라. 젊은 시인의 시는 교과서요, 늙은 시인의 시는 참고서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는 한 끼의 밥이지만, 외국 시인들의 시는 건강보조식품이다. 제발 릴케와 보들레르와 엘리어트를 읽었다고 거들먹거리지 말라. 두보와 이백을 앞세우지 말라. 볼썽사납다. 그들 대가의 시집은 두고두고 천천히, 읽어라.

셋째,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써라. 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쓰지 말고, 낮은 곳에서 돌아앉아 우는 것에 대해 써라. 시는 절대로 ‘초월한 자의 향기’가 아니다. ‘고귀한 사랑’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 아니다. ‘고행을 이겨낸 구도자의 경지’가 아니다. 시는 초월하지 못한 인간의 발가락에서 나는 냄새고, 지저분한 사랑이며, 인간과 자연의 불화이며, 한 시간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렵게 번 돈 3천원이다.

시를 쓰려거든 두꺼운 문학이론서를 독파하지 말라. 창작보다 고매한 철학적 사유로 무장하는 게 우선이라고 여기지 말라. 이론이나 세계관이 시를 낳는 게 아니다. 당신의 시가 당신의 이론과 세계관을 형성한다고 믿어라. “사유가 먼저 있고, 그 도달한 사유에 맞춰 거꾸로 체험을 구성할 경우 작품은 파탄을 면치 못한다. 사유로부터 경험이 도출되는 것은 마치 몸에 옷을 맞추지 않고 옷에 몸을 맞춘 것처럼 어색하다. 몸에 옷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규범이듯, 경험에 사유가 뒤쫓아 가 그 경험을 완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술적 창조의 원리이다.”(김상욱의 <다시 쓰는 문학에세이>)

넷째, 화려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것을 써라. 나의 경험 중에 행복했던 시간들이 남에게도 반드시 행복한 시간으로 전이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행복과 충족은 남의 불행과 결핍의 증거임을 잊지 말라. 장미와 백합의 우아한 향기에 취하지 말고, 저 들판의 민들레와 제비꽃의 무취에 취하라. 금메달을 목에 건 승리자의 영광보다는 꼴찌로 들어오는 선수의 실패를 경배하라. 성형수술 한 처녀의 얼굴을 경멸하고 주근깨로 뒤덮인 소녀의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익혀라.

시는 ‘고귀한 사랑’ 아냐…하찮은 것 써야
나만의 경험 살려 어떻게 쓸 것인지가 관건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졸시 <애기똥풀>)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적 경험은 나의 경험의 일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나의 경험 중에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 것을 우리는 시적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시인은 경험한 것에 대하여 쓴다. 하지만 경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해 본다고 많은 시적 경험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바쁘게 한 세상을 살아왔다고 그 수많은 경험들이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를 해석하는 능력, 즉 상상력의 도움 없이 어떤 소재에 매달리는 것은 소재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말라. 시에서 소재주의는 시단의 특정한 경향을 답습하거나 이미 규범화한 유파의 문법을 비판 없이 추종할 때, 그리고 글쓰기의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앞설 때 생겨난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시가 생겨나는 지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곧잘 소재주의에 빠진다. 그러므로 ‘무엇’을 쓰려고 1시간을 끙끙댈 게 아니라 단 10분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칭(艾靑)의 생각도 우리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쓰는가에 있지 않고, 당신이 어떻게 쓸 것이며, 어떻게 이 세계를 볼 것이며, 어떠한 각도에서 세계를 볼 것이며, 당신이 어떠한 태도로 이 세계를 포용할 것인가에 있다.”

여기 시의 소재로서 한 알의 사과가 있다. 당신에게 이 한 알의 사과에 대해 시를 쓰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적어도 다음에 제시하는 열 가지 정도의 행동을 수행하거나 사유를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시의 첫 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1) 사과를 오래 바라보는 일
2) 사과의 그림자를 관찰하는 일
3) 사과를 담은 접시를 함께 바라보는 일
4) 사과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보는 일
5) 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보는 일
6) 사과에 스민 햇볕을 상상하는 일
7) 사과를 기르고 딴 사람과 과수원을 생각하는 일
8) 사과가 내 앞에 오기까지의 길을 되짚어 보는 일
9) 사과를 비롯한 모든 열매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일
10) 사과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 일


<필사는 가장 좋은 자기학습법>
<사랑하면 서로를 닮고 싶어져>
<젊은 날 백석 ‘훔치며’ 꿈 키워>


6.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구할 것


언젠가 “내 시의 사부는 백석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또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다. 오로지 그의 시를 ‘베끼고’ 싶었다”고 뻔뻔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데 백석은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으며, 당신의 시를 베껴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백석에 대한 내 사랑은 짝사랑이라 할 수 있다. 백석, 그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의 시를 얼마나 베끼려고 아등바등했는지, 왜 아직도 그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지 말해보려고 한다.

백석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1980년, 대학 1학년 때였다. 지금은 작고하신 시인 박항식 선생님의 저서 <수사학>에 <모닥불>이 인용되어 있었다. ‘갓신창’‘개니빠디’‘너울쪽’ 같은 몇몇 시어가 좀 낯설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백석이라는 낯선 시인의 이 시 한 편은 스무 살 문학청년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그 까닭을 지금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내가 학습한 시인들과는 뭔가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백석은 김소월도 한용운도 이상도 윤동주도 아니었다. 청록파도 서정주도 김춘수도 아니었다. 나는 캄캄해졌다. 그만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백석의 시에 반해 버렸다고 은사님께 말씀드렸더니, 또 다른 시들을 보여주셨다. 나는 백석의 새로운 시를 만날 때마다 노트에 한 편 두 편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묘한 흥분과 감격에 휩싸여 손끝은 떨리고 이마는 뜨거워졌다.(1988년 정부의 공식적인 해금 조치 이전에는 내놓고 그의 시를 읽을 수 있는 독서의 자유가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필사했다. 그런 필사의 시간이 없었다면 내게 백석은 그저 하고많은 시인 중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그가 내게 왔을 때, 나는 그의 시를 필사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그건 짝사랑이었지만 행복했다. 나는 그의 숨소리를 들었고, 옷깃을 만졌으며, 맹세했고, 또 질투했다. 사랑하면 상대를 닮고 싶어지는 법이다.

소설가 신경숙은 대학 시절 방학 때 소설을 읽다가 필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볼 때와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다. 나는 이 길로 가리라. 필사를 하는 동안의 그 황홀함은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각인시켜준 독특한 체험이었다.”(신경숙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필사는 참 좋은 자기학습법이다. 시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어쩌다 눈에 번쩍 띄는 시를 한 편 만났을 때, 짝사랑하고 싶은 시인이 생겼을 때, 당신은 꼭 필사하는 일을 주저하지 마라. 그러면 시집이라는 알 속에 갇혀 있던 시가 날개를 달고 당신의 가슴 한쪽으로 날아올 것이다.

1987년 선배 시인 이광웅이 ‘오송회’ 사건으로 복역하다가 출옥한 뒤에 나에게 또 백석의 시를 보여주었다. 낡은 대학노트에 아주 정갈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필사한 시였다.(이광웅 시인은 1992년에 세상을 떴다. 나는 이 필사본을 돌려드리지 못했다. 지금도 내 서랍에 보관하고 있다.) 그 무렵 창작과비평사에서 이동순 시인이 엮은 <백석시전집>이 나왔다. 이로써 세상에 가까스로 백석 시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나는 1989년에 낸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을 백석에게서 훔쳤다. <모닥불>이 그것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백석의 호흡을 차용한 시들을 여러 편 쓰기 시작했다. 현실과 상상 사이에 길을 만들어 <백석 시인의 마을에 가서>라는 시도 썼다.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는 시인을 만나 메밀국수를 한 사발 먹었고, 폭설이 쏟아지는 시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구들장이 뜨거운 집이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1994년에 나온 네 번째 시집의 제목 <외롭고 높고 쓸쓸한> 역시 백석표 제목이다. 그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누구나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다’는 말은 쉽게 할 줄 안다. 그러나 ‘외롭고’와 ‘쓸쓸하다’ 사이에 ‘높고’라는 말을 갖다 놓을 줄 아는 시인이 백석이다. 이 ‘높고’는 양쪽 형용사들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그 구차함을 일거에 해소하고 시 전체의 품격을 드높이는 구실을 한다. 베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높고’인 것이다!

그 이후에 낸 여러 시집에서도 백석을 짝사랑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음을 숨기지 않겠다. 애초부터 의도하고 흉내를 낸 것이 있는가 하면 나도 모르게 그에게 스며든 것도 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졸시 <사랑> 앞부분). 감나무에서 쉬지 않고 매미가 울었고, 러닝셔츠 바람으로 마루에 누워 부채를 부치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메모한 구절이다. 나중에 가만 생각해보니 이 시구 역시 백석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앞부분이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사랑하기 때문에 푹푹 눈이 내린다는, 이 말도 안 되는 구절 때문에 나는 백석을 좋아한다. 분명히 문장구조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충돌이거나 모순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 그리하여 나는 가난하고, 너는 아름답다는 단순한 형용조차 찬란해진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말자. 그건 30년대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메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산숙(山宿)」


1938년 <조광>에 발표한 시다. 나는 이 시 한 편으로 30년대 산골의 전형적인 풍경과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 여기에서 아주 인상적인 것은 ‘목침’이다. 이 오래된 목침에는 새까만 때가 올라 있다. 화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목침에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백석의 매력이 숨어 있다. 그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라는 서술어를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밋밋하고 시의 산문적 서술에 기여하는 말이 ‘생각한다’이다.

그런데 이 말이 아프다. 목침에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이 누구이겠는가? 목침에 때를 올린 사람들은 목침을 베고 잔 뒤에 떠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산골의 광산촌을 떠돌거나 만주 등지로 길을 떠나던 30년대 후반의 우리 민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의 눈은 때 묻은 목침 하나를 통해 대다수 우리 민족 구성원들의 현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에서도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시인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시인이다.
나는 그의 시에서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것도 좋아하고, 수많은 음식을 나에게 맛보여주는 것도 좋아하고, 연인에게 산골로 가서 살자고 하면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호기를 부리는 것도 좋아한다.

짝사랑의 햇수가 삼십년 가까이 된다. 지겨울 때도 되었건만 백석이 몸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도꼬마리 씨앗 같다. 아니, 내가 백석의 몸에 붙은 도꼬마리 씨앗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도 시가 잘되지 않을 때, 해괴하기 짝이 없는 시들이 나를 괴롭힐 때, 백석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 사랑하면 길이 보인다.

 


7.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죽여라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연애시절에 애인한테 몇 번쯤 시를 써서 바쳤는지요?”

내 대답은 한결같다.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내 질문한 사람의 얼굴에는 실망의 그림자가 스쳐간다. 조금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시를 연애의 수단이나 사랑을 고백하는 도구쯤으로 여기면 그럴 만도 하다. 젊은 날에는 결혼축시를 써달라는 주문이 쇄도할 때도 있었다. 그렇고 그런, 입에 발린 주례사처럼 매번 쓸 수가 없어서 나는 늘 쩔쩔맸다.

대학 다닐 때 처음 축시라는 것을 쓴 적이 있는데, 첫걸음부터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어렵게 결혼에 성공한 선배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새우젓장수가 되더라도 어떻게든 잘 살 거라고 말이다. 나는 새우젓장수가 되겠다는 신랑의 그 말에 힌트를 얻어 원고지에 축시를 썼다. 그런데 식장에서 시를 읽어내려 가는 동안 신랑과 신부가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양가 부모님들까지 손수건을 꺼내드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급기야 결혼식장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사랑과 행복의 언어가 가득해야 할 남의 결혼식장을 거친 인생의 출정식처럼 비통하고 비장하게 만든 것이다. 그 죄는 돌이키지 못할 것이었으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바로 이거야! 혼주와 하객들이 흘린 눈물은 내 시에 대한 최고의 찬사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다. 아직도 그 선배는 그때 쓴 축시를 액자에 담아 거실에 걸어두고 있다 한다.)

나한테 공으로 시집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고마워 나는 받자마자 서문을 반드시 읽는다. 한 권의 시집이 지향하는 가치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문 때문에 아예 시를 읽지 않고 책꽂이에 꽂아버리는 시집도 있다. 한 지붕 아래 함께 밥 먹는 배우자와 자식들을 향한 사랑을 서문에 여과 없이 드러내는 꼴이 안쓰러워서다.(전북지방의 말로 하면 식구들한테 야냥개 부리는 것 같아서다. 간살을 떤다는 뜻이다.)

종교·가족…일체 벗고 어깃장 놓아야
반대쪽 선 ‘불화의 순간’ 시는 태어나

가령 다음과 같은 시집 서문은 어떤가?

스무 살 가을밤이었다. 어느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어떤 서늘한 손 하나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섬뜩했으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날선 칼 한 자루와 맑은 눈물과 제목 없는 책 따위의 무량한 허기뿐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른 아침 호주머니 속에선 뜻밖에 오천원권 지폐 한 장이 나왔는데, 그게 여비가 되어 그만 놓칠 뻔한 청춘의 막차표를 끊었고, 그게 밑천이 되어 지금껏 잘 먹고 잘 산다.

그때 다녀가셨던 그 어른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그간의 행적을 묶어 소지하듯 태워 올린다.

» 무엇을 위해서도, 누구를 위해서도 쓰지 말라


이덕규의 첫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의 서문이다. 시가 서 있어야 할 자리와 시인이 간직하고 있어야 할 태도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젊은 날의 방황, 세상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 삶을 바라보는 순정하고 따스한 시선이 독자인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쯤은 되어야 한다.

시라는 형식, 혹은 시집이라는 형식 속에 가족을 끌고 들어와 챙기고 쓰다듬는 행위는 아무래도 비시적이다. 그런 사랑은 시집 바깥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법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라.”

중국의 고승 임제(臨濟)의 화두다. 무비 스님은 <임제록 강설>에서 ‘나 아닌 다른 경계에 동요하지 말라’는 말이고, ‘일체를 부정하고 벗어나라’는 말이며, ‘그 어떤 권위나 관념들로부터도 벗어나라. 인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풀이하였다.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안에도 있지 말고 밖에도 있지 말고 중간에도 있지 말라’는 것이다.

일체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야 깨달음에 이르듯 시로 접어드는 길도 그러한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는 절대자와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치는 양식이 절대 아니다. 시의 초보자일수록 ‘무엇을 위해서’ 쓰려고 한다. 또 ‘누구를 위해서’ 쓰려고 한다. 시가 천박해지는 순간이다.

그 무엇을 위해서도 쓰지 말고, 그 누구를 위해서도 쓰지 말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아내를 만나면 아내를 죽여라. 부처를 우러르면 불경을 읽으면서 절을 하면 될 것이요, 예수를 믿으면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를 하면 된다. 부모를 공경하면 지극히 효도를 다 하면 될 것이요, 아내를 사랑하면 한 번 더 껴안아주면 그만이다. 시에다가는 단 한 줄도 절대자의 말씀을 받아 적지 마라. 제발 부모의 자애로움을 칭송하지 말 것이며, 금실 좋은 아내와의 관계를 떠벌리지 마라.

그래도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시에다 쓰고 싶어 못 견디겠으면 어떻게 하나? 부처의 말씀을 관념의 테두리 안에 가둬버리고 실천할 줄 모르는 자들에 대해 써라. 예수를 팔아 제 잇속을 챙기는 자들을 크게 꾸짖는 시를 써라. 부모의 비겁함과 치부와 죄를 찾아 써라. 아내의 쩨쩨함과 실수와 과욕에 대해 써라.

일찍이 김수영은 시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이렇게 노래했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 부분)


가족 끌고 들어와 챙기는 건 ‘비시적’
종교쪽 마음 가도 몸은 반대로 서야


시인은 이렇듯 절정에서 조금쯤 옆으로 비껴서 있어야 하는 자이다. 종교가 진리의 절정에 도달한 정신의 영역이라면 문학은 진리의 위기를 포착하는 풍향계여야 한다. 종교와 문학이 손쉽게 화해하면 둘 다 망한다. 시는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서도 안 되며,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시의 마음은 종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함께 가되, 시의 몸은 종교가 가리키는 방향의 반대쪽을 향해 서 있어야 한다. 그 어깃장, 그 버티는 안간힘, 그 불화의 순간에 가까스로, 시는 태어난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그해 가을>) 이성복은 아버지라는 우상을 무너뜨림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폭력적 질서를 전복하고자 했다. 최승자는 ‘Y를 위하여’라는 시에서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 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라고 노래하면서 이별의 아픔을 정면 돌파한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자기 갱신의 기회로 삼는 이러한 태도는 시의 끝부분에 가서 “오 개새끼/ 못 잊어!”라는 결구로 마무리된다. 얼마나 당찬 사랑인가.


“화장품 냄새/ 솔솔 풍기는/ 향기로운 엄마// 뭐든지 척척/ 도와주셔서/ 고마운 엄마// 바른길로 가라고/ 회초리로 찰싹 때리는/ 사랑하는 엄마// 엄마라는 말을/ 부르면/ 목이 메입니다.// 사랑한다고// 말도 떨려서/ 못합니다”(인터넷에서 구한 시,<엄마>)


“작은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배한권, <엄마의 런닝구>)

이 두 편의 동시를 비교해서 읽어보면 시에서 사랑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는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면 다 좋은 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글쎄, 하면서 고개를 흔들 것이다. 또 누군가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탤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쓰려면 ‘사랑’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제목으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고 훈수를 할 것이다.

 

8.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이형기 시인은 부산으로 피난 온 조지훈을 만나 술을 한잔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팔팔하게 젊은 이형기는 대선배 조지훈에게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지훈은 “그것은 그저 방치해 둘 수밖에 없는 일이오”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지훈은 이 말을 전에 정지용한테서 들었다고 일러 주었다.

시를 방치하는 일, 그게 시를 잘 쓸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당신은 이 선문답 같은 짧은 일화를 유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시의 대가들뿐만 아니라 서양인도 비슷한 충고를 한다. 브렌다 유랜드는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에서 창의적인 글은 “오랫동안 비효율적이고 행복하게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노동의 효율성과 경제적 이윤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견해는 야만이거나 무책임한 언설일 뿐이다. 열심히 시간을 쪼개 공부해도 다다르지 못할 판에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라니!

당신은 오해하지 마라.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무조건 한가하고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 누구나 빈둥거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책을 보면서 머리를 쥐어뜯어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래도 시 한 줄 떠오르지 않아 발을 동동 굴러본 적이 있는 사람, 이러다가 영영 시를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해본 적이 있는 사람, 그리하여 아예 시를 포기해버리고 싶다고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어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빈둥거릴 권리가 있다.

노는 시간은 ‘발효와 숙성의 시간’그래야 세상 뒤편 응시할 수 있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글에서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은 우리에게 힘이 된다. 그는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생산에 관해선 너무 많이 생각하고 소비에 대해선 너무 적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루의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파격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하루에 4시간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불성실하게 보내라는 말이 아니다. 그 나머지 시간에 지금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리도록 더 적극적인 태도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을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만약에 당신이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싶거든 술이 제대로 익기를 기다려라. 열흘이라도 백일이라도 기다려라. 좋은 술일수록 절대로 혼자 병마개를 따고 홀짝이며 마셔서는 안 된다. 함께 마실 친구가 저녁 어스름 무렵에 당신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에 초조하게 담장 바깥을 기웃거리지 마라. 당신은 그냥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며 걸어라.

나는 어슬렁거리며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 어슬렁거려야 미세한 데 눈길을 줄 수 있고, 세상이 요구하는 질서의 뒤편을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아마 그도 어슬렁거리며 걷는 일로 하루를 다 소비하는 자일 것이다. 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되도록 많이 걸을 것을 주문한다. 한적한 오솔길이나 들길이 아니더라도 좋다. 재바르게 걷지 말고 ‘따복따복’ 걸어라. 모든 길은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통로다.

그런데 아뿔싸! 학교 앞 거리에 어느 날 이런 현수막이 나붙은 것을 보고 말았다.

‘이유 없이 배회하는 자를 112에 신고합시다’


학교 부근 파출소에서 내건 이 현수막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이유 없는 걷기가 바로 배회인데, 그렇게 하다가는 우리 학생들이 모두 파출소에 붙잡혀가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한편으로는 웃음이 킥킥 터져 나왔다. 이 현수막의 폭력성은 빈둥거리는 일이야말로 시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거꾸로 입증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시가 오지 않으면 아등바등 시를 찾아 나서지 마라. 그냥 놀아라. 빈둥거려라. 시를 써서 무슨 이름을 얻겠다는 허영심을 버리고, 시가 실패할지 모른다고 초조해하지도 마라. 소나기가 내려도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치우러 허겁지겁 뛰어나가지 말 것이며, 개수대에 설거지 할 그릇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잊어버려라.

시를 쓰다가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해결하나 물어보지 마라.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슬럼프인 것이니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별도의 슬럼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시를 쓰고 싶거든 슬럼프마저 사랑하고 즐길 도리밖에 없다. 스스로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되거든 승용차를 버리고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이곳저곳 일없이 기웃거려라. 바다로 가거든 휴대전화를 물속에다 던져버려라. 저녁이 찾아오면 전등을 켜지 말고 어둠 속에서 어둠과 한 몸이 되어보라.


허영심 버리고 초조해 하지도 말기를
슬럼프마저 사랑하고 즐길 도리일 뿐


위선환 시인은 30년 간 시를 끊었다가 근래에 빛나는 시를 생산해내고 있는 분이다. 그 시간 동안 시를 ‘방치’한 것이다. 다시 시를 쓰면서 그는 주로 걸으면서 시를 생각했다고 한다. “시를 다시 쓰면서부터는 신문을 끊었고 티브이를 거의 끊었고 외출을 거의 끊었다. 내가 문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침저녁 아파트 옆 구릉 위로 난 산책로를 걷는 때로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시를 생각하고, 머릿속에다 집을 짓듯 시를 짓고, 지은 시를 외우며 돌아와서는 외워온 시를 입력하고, 한밤중에도 일어나 앉아 시를 고쳐 쓰곤 했었다.” (<현대시> 2008년 5월호)

빈둥거리며 걷다가 보면 운 좋게 이런 풍경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의 <묵화(墨畵)>다. 이 시의 앞 두 줄을 이렇게 바꾸어 읽어본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가 손을 얹었다.” 피동접미사 ‘히’를 빼고 나면 시의 호흡이 별안간 빨라진다. 할머니의 손길이 소 목덜미까지 가 닿는 시간도 빨라진다. 그렇게 되면 소를 쓰다듬는 할머니 손길의 경건함도 지긋한 사랑의 느낌도 사라지고 만다. 시가 여유를 놓치는 순간이다.

능동적인 생각과 행동만이 우대 받는 세상을 우리는 통과해왔다. 느림이나 게으름 따위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악성 종양처럼 알고 지냈다. 학교의 선생님도 집안의 부모도 우리에게 좀 더 빨리, 좀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야만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소 목덜미에 손을 얹는 할머니는 얼마나 낮은 곳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할머니가 얼마나 천천히 부엌에서 걸어 나왔는지, 얼마나 느리게 소한테 여물을 갖다 주었는지, 소가 여물을 우물거리는 동안 얼마나 그윽하게 소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다 안다. 그리고 소와 함께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도 충분히 안다.

저녁 무렵, 할머니에게 이미 소는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아니다.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들여다볼 줄 알고, 서로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 동병상련의 관계다. 비록 여섯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행간과 행간 사이에 여백은 무한하고, 시행은 끝났건만 마지막 쉼표는 소와 할머니의 상처와 그 둘 사이의 적막이 오래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적막을 사랑하라. 적막에 사로잡힌 적막의 포로가 되라. “풀숲에 호박이 눌러앉아 살다 간 자리같이/ 그 자리에 둥그렇게 모여든 물기같이/ 거기에다 제 얼굴을 가만히 대보는 낮달과도같이”(졸시 <적막> 전문)

적막 속에서 빈둥거리다가 보면 문득 소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소란 속으로 단번에 뛰어들지 말고, 가능하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라. 그러다보면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시인이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주체하기 힘든 표현 욕구를 옛사람들은 ‘기양(技양)’이란 말로 표현했다. ‘양’이란 가려움증을 말한다. 아무리 긁어도 긁어지지 않는 가려움이 있다. 이런 가려움은 어떤 연고나 내복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정민, <한시미학산책>)

 

9.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학교에서 시를 공부하면 할수록 왜 시와 멀어지는 것일까? 시를 왜 어렵고 모호하고 복잡하고 이상한 물건으로 여기게 될까? 혹시 교과서가 시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과서에서는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나는 이 케케묵은 사전적인 정의를 대폭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의 내용을 이룬다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라는 용어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애매하다. 이 말을 ‘사람의 생각과 느낌’으로 순화시켜 읽어도 마찬가지다. 또한 시 아닌 다른 문학 장르에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다루지 않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함축과 운율’이 시의 형식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 시는 운율적 결속력이 대단히 미미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운율을 따지는 게 난처할 때가 많다. 한 비평가는 시의 함축성보다는 오히려 시가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점을 뚜렷이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긴 이야기를 짧게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의 사용”이 시의 특성에 가깝다는 말이다.(이남호,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현대문학) 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의견이다.


<함축보다는 비유가 중요>
<과장·감상·현학 배척하고>
<나 대신 사물이 얘기하게>


시를 느끼고 이해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창작자도 시의 사전적인 정의에 갇혀 있으면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인간의 사상을 한 자루의 펜으로 표현하겠다고 대드는 일은 무모할 뿐이다. 한 편의 시가 인간의 사상적 체계에 관여하고 거기에 기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상을 해설하거나 추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시가 단순히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감정과 유사한 용어인 감성·정서·느낌을 종이 위에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감정을 드러내고 쏟아 붓는 일은 시작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당신이 보고 싶다거나, 풍경이 아름답다거나 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고백’이나 ‘넋두리’ 혹은 ‘하소연’이라고 부른다. 그런 것들이 시의 일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시가 고백적 양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게 세 가지가 있다. 당신은 시를 쓰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것들을 과감하게 배척해야 한다. 첫 번째는 과장이다. 제발 시를 쓸 때만 그리운 척하지 마라.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마라. 모든 것을 낭만으로 색칠하지 마라. 그런 것들은 우습다. 두 번째는 감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마라.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 눈물 흘릴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마라. 그런 것들은 역겹다. 세 번째는 현학이다.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들먹이지 마라. 기이한 시어를 주워와 자랑하지 마라. 시에다 제발 각주 좀 달지 마라. 그런 것들은 느끼하다.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이다.”(오규원, <현대시작법>, 문학과지성사)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해 준다”고 눈에 번쩍 뜨이는 말을 해준 이는 연암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의 받아 적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감정을 언어화하는 이 과정을 ‘묘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묘사란 감정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 시인이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고 한다.


<묘사는 본질에 이르는 관문>
<대상과 일정한 ‘거리 유지'>
<하고 싶은 말 참을 줄 알아야>


시를 쓰는 사람이 묘사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미술에서 데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묘사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관찰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거나 무릎을 구부릴 줄 알아야 한다. 옛 시인들이 산정에 올라 천하를 둘러보며 호연지기를 노래했던 일은 감정의 움직임에 충실한 것이었다. 현대의 시인들은 그걸 따라 흉내내면 안 된다. 산에 오르기 전에 눈에 띄는 식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귀에 들리는 새소리를 언어의 그림으로 그릴 준비를 해야 한다.

혹시 들길을 걷다가 당신은 달개비 꽃잎 속에 코끼리가 한 마리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황동규, <풍장 58> 중에서) 나도 이 시를 읽고 실제로 달개비를 찾아 꽃잎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달개비 꽃잎 속에는 코끼리가 들어 있었다! (믿어지지 않으면 허리를 낮추고 가만히 달개비 꽃잎 속을 한 번 들여다보라.) 이 구절 때문에, 한 발 늦었다는 자괴감 때문에 나는 요즈음도 꽃잎을 보면 무조건 오래 들여다본다.

어떤 시가 언어예술로서의 기본적인 꼴을 갖추었는가의 여부도 묘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묘사 능력으로 시의 품격을 판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묘사는 시쓰기의 출발이면서, 또한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드러내면 시가 추해진다. 내 마음을 최대한 정성을 들여 그려서 보여주기, 그게 시다.

다음은 조선 후기 한욱(韓旭)이라는 시인이 쓴 한시다. (정양·부사회 공역, <한국 리얼리즘 한시의 이해>, 새문사)

① 小築依山似鶴巢 산등에 붙은 오막살이 까치둥지 같다

② 荒籬生色鑽春梢 그래도 울타리에는 가지마다 봄꽃이 곱다

③ 東風似惜吾蘆弊 집이 너무 헐어서 바람도 딱하게 여기나 보다

④ ?送飛花覆破茅 꽃이파리 휘몰아다가 낡은 지붕을 깁는다

서정시에서 흔히 자아가 대상에 스며드는 것을 ‘동화’ 혹은 ‘감정이입’이라고 하고, 거꾸로 어떤 대상한테 자아를 맡기고 비춰보는 것을 ‘의탁’ ‘투사’ 혹은 ‘투영’이라고 한다. 주체와 객체의 동일시라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 시에서 ①과 ②는 자아가 풍경에 동화되는 순간을 제시한다. 이에 비해 ③과 ④는 자아의 감정을 바람에 의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산등성이 오막살이집의 낡은 지붕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애처롭고 딱한 감정(惜)을 단순히 토로하는 게 아니라 꽃잎이 낡은 지붕을 덮는 객관화된 풍경과 동일시하는 이 기법은 묘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묘사는 무엇보다 구체적 형상화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시에서 구체성은 감동의 원천이고, 삶의 생생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그리는 자는 반드시 완성된 대나무의 모습이 가슴속에 있어야 한다”는 중국의 시론이 있다. 본질을 그리기 위해서는 묘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바꾸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시에서 묘사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대상의 현상을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묘사의 생생함이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묘사는 시의 화자인 ‘나’를 객관화하는 데 기여하는 형상화 방식이므로 묘사를 통해 대상과 시적 화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자기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시라는 형식을 빌려 일방적인 고백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시의 옷을 입고 이리저리 시달리는 그 언어는 또 얼마나 몸이 아플 것인가. 말을 하고 싶어도 참을 줄 알고, 노래를 시켜도 한 번쯤은 뒤로 뺄 줄 아는 자가 시인일진대, 어두운 노래방에서 혼자만 마이크를 잡고 있는 시인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10.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

 

 

 크레파스 덮개를 열어보면 그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는지 못 그리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그림을 잘 못 그리는 아이는 하늘을 그릴 때 하늘색만 쓰고나뭇가지를 그릴 때 고동색만 쓰고나뭇잎을 그릴 때 녹색만 쓰고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 살색만 쓴다그래서 크레파스의 길이가 들쭉날쭉 고르지 않다이에 비해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는 대체로 크레파스의 키가 가지런하다색깔을 어떻게 배합해야 사물의 실제에 가까운 색이 나오는지 아는 것이다.

 

 묘사의 일차적인 목적은 사물이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표현의 사실성은 묘사를 통해 획득된다여기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햇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서 나뭇잎은 감청색·청록색·녹색·연두색·노란색 등 다양한 색깔로 나타난다색깔을 사실적으로 구분할 줄 아는 힘은 역시 관찰에서 나온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단순히 그 음식의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는 것으로 음식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먼저 그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곰곰 따져본다아무리 궁리해 봐도 모르면 음식점 주인의 옷자락을 잡고 물어본다그리고 음식의 재료가 어떤 순서로 조리되었는지 생각해본다즉 음식을 나름대로 관찰하는 것이다그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 음식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한다내가 관찰한 것을 잘 기억해야만 음식을 원래의 맛에 가깝게 재생할 수 있다시란 내가 먹어본 맛난 음식내가 바라본 멋진 풍경을 언어로 재현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 곰곰 따져봐야

언어의 연필로 그릴 수 있어

 

 

 이때 기억은 시의 중요한 질료가 된다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타지 않게 뒤집고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그런 사람이 시인이다그러니 삼겹살을 먹게 되거든 제발 고기 좀 뒤집어라.

 

 당신이 들길에서 낯선 들꽃을 만났다고 치자우선 그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동행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집에 돌아가 식물도감을 뒤적여야 한다관찰의 목적은 다르지만 시인의 관찰은 과학자의 관찰에 버금가는 것이어야 한다당신은 식물도감과 조류도감과 곤충도감 들을 옆에 끼고 살아라어떤 생명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고그 생명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묘사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할 수도 있다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냄새는 오로지 묘사를 통해서만 언어로 그릴 수 있다장미 꽃잎이 열릴 때 나는 소리단풍이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소리배고플 때 맡는 짜장면 냄새감나무에서 우는 매미소리가 내 귓가에 닿기까지의 길나비가 날개를 너울거리며 날아가는 허공의 길을 언어의 연필로 그리는 게 묘사다.

 

 또한 묘사는 개념을 해체한다밤은 어둡다여름은 덥다꽃은 아름답다개나리는 노랗다와 같은 문장은 고정관념이 만든 개념적 표현이다묘사는 개념을 구체화하거나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예를 들면 시장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많다고 쓰면 죽은 문장이다. ‘가락시장에는 배추시금치상추가 많다고 쓰기 시작해야 문장에 조금이라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신석정의 시 <작은 짐승>을 읽으며 묘사가 어떻게 한 편의 시를 열고 닫는지 살펴보자.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이 시의 1연은 시적 화자가 머물러 있는 곳의 위치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좋았다’ ‘푸르렀다라는 직접적 어법의 두 서술어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행위에 일체의 가식이나 허황한 포즈가 내재되어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바다와 화자 사이에는 나무들이 서 있다여기에서 시인은 밤나무소나무참나무느티나무라고 나무들의 이름을 한 행씩 처리해 배치하였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흔한 나무 이름을 이렇게 행을 나눠 쓴 이유는 무엇일까화자가 머무르고 있는 산에 이러한 나무들이 자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이 나무들은 뒤에 나오는 다문다문이라는 부사의 도움을 받아 촘촘한 간격으로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독자들은 한 행씩 처리한 이 나무 이름을 보며 나무들이 바다를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그리고 화자의 마음 상태가 현재 지극히 평온하다는 것도 눈치 채게 된다묘사의 묘미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비가시적인 것 가시화하고

관념을 구체화해 표현하라

 

 

 시인이 특별한 장식이나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았는데도 단순하고 평범한 나무 이름 몇 개로 우리는 시가 제시하는 정황을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것이다묘사의 힘이다.

 

 그런데 난이와 나는 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까? 2연은 그 궁금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통사 구조상 1연의 반복과 발전 단계인 2연에서 시의 표제이기도 하면서 이 시의 의미를 푸는 키워드인 작은 짐승이 등장하기 때문이다짐승은 시에서 종종 본원적 생명을 갈구하는 존재의 상징으로 사용된다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인간의 문명과 대척을 이루는 지점에서 생을 영위하는 존재가 짐승이다.

 

 여기서는 날뛰고 포효하는 사나운 짐승이 아니라 작은’ 짐승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작은’ 이라는 형용사로 인해 짐승은 원래의 상징적 의미보다 훨씬 순화된 성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바다를 앞에 두고 난이와 작은 짐승처럼 앉아 있는 까닭은 복잡한 삶의 정황이나 들끓는 현실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다는 것이다격정의 바다가 말없이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난이와 나도 말없이 앉아 있음으로 해서 바다와 일체를 이루려고 한다.

 

 3연에서는 풍경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비교적 화려하게 등장한다그래서 3연은 시에 아연 활기를 불어넣으며 흐름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다화자의 호흡은 길어지고이제까지 원경을 비추던 시의 카메라는 난이의 머리칼로 클로즈업된다.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는 구름이 변화하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그 속을 거닌다는 것은 현실 너머에 있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고 싶다는 것을 뜻한다그래야만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현실 너머의 환상적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 현실에서 발을 빼고 싶은 의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한번 의문을 가져볼 법하다.

 

 망국의 백성으로 짓밟힐 대로 짓밟힌 당시의 우리는 차라리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던 것도 사실이다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미쳐서 날뛰는 일제를 되도록 멀리하고 싶었던 고달픈 작가의 심정을 읽어주었다면 이 시가 지닌 정신에 접근한 독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상처 입은 작은 역정의 회고>라는 자작시 해설 형식의 글에서 시인은 작은 짐승을 두고 이렇게 속내를 비친 바 있다시인은 작은 짐승처럼 말없이 앉아서’ 구름 속을 거니는 꿈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과의 거리 두기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이 시는 가슴속에 쌓인 울혈을 침묵과 관조로 풀어보려는 시로 해석할 수 있다.

 

 바다에서 구름으로 이동했던 화자의 시선이 다시 지상의 느티나무로 옮겨오는 것은 그래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느티나무 잎새가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시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느티나무 잎새가 머리카락에 붙음으로 해서 난이는 자연스럽게 느티나무와 한 몸이 된다난이와 느티나무의 연결은 난이=느티나무=작은 짐승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11. 체험을 재구성하라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낡은 목선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스무 살 때 쓴 시 <낙동강>의 한 부분이다이 시가 그리고 있는 대로라면 우리 아버지는 강에서 목선을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거나 뱃사공이어야 한다또한 아버지에게 그물 한 장을 물려받은 시 속의 는 이 시를 쓴 안도현이어야 한다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그물을 물려주기는커녕 그 당시 경기도 여주에서 수박농사를 짓던 농부였고낡은 목선을 소유했거나 수리해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나는 요샛말로 뻥을 친 것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이 시를 쓰는 동안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강은 물이 깊은 낙동강이 아니었다나는 낙동강의 지류의 하나인 예천의 내성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그 냇가에 시의 화자를 세워두었을 뿐이다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수심이 얕아 배를 띄울 수 없는 냇물이다시의 제목 역시 뻥이라면 뻥이다.

나는 낙동강이라는 제재를 붙들고 할아버지-아버지-로 이어지는 삼대의 면면한 핏줄을 노래하고 싶었고그물 한 장을 물려받는 것으로 마음속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고자 했다관계를 상징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인 그물을 어떻게든 이 시에다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이다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아니 의도적으로아버지를 어부로 둔갑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그렇다면 나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시로 말했으니 사기를 친 것인가나는 시인으로서 진실하지 않은 뻥쟁이인가?

 

 

<시적 허구(詩的虛構속에서 노래하고

연출가·배후 조종자가 되라>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화자라고 한다화자는 때로 서정적 자아’ ‘시적 자아’ ‘시적 주체’ ‘서정적 주인공’ ‘페르소나’(persona)와 같은 용어로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어떻게 부르든 시인과 화자를 따로 구별하는 것은 그 둘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습작기에 있는 사람일수록 시인과 화자를 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시를 쓰는 시인은 화자를 통해 말해야지 스스로 시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그러면 시가 시인의 사적인 발언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하게 여기지 말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라는 형식이 하나의 허구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안타깝게도 우리의 문학교과서는 소설은 허구라는 명제를 강조하면서도 시는 허구라는 말을 기술하는 데 인색하다모든 시가 허구가 아니라면 시가 예술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신변잡기 같은 사사로운 글을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시는 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바탕 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시인의 사소한 체험은 작품 속에서 치밀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그것을 우리는 시적 허구(詩的虛構)라고 부른다.

 

오규원의 말대로 시 속의 는 현실 속의 가 아니다시 속의 는 허구 속의 존재이며어디까지나 창조적 공간인 작품 속의 존재이다그러므로 그 는 객관화된 이며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어떤 국면 속의 형식화된 인간으로서의 이다.” 따라서 일상의 경험을 시로 표현할 때는 일상 속의 가 아닌구체적 경험 속의 를 그리는 시인의 형상적 시각이 필요하다시인은 현실 속의 를 죽이고 구체적 경험 속의 또 다른 를 살려 형상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형기는 또 사실의 세계가 신의 창작물이듯 허구의 세계는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했다이 말을 조금 바꾸면신은 사실을 만들고 인간은 진실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즉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는 말이다.

어떠한 진실을 그리기 위해 시인은 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첨삭할 수 있다사실과 상상혹은 실제와 가공 사이로 난 그 조붓한 길이 바로 시적 허구다이 시적 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 속에 갇혀 있으면 시인은 숨을 내쉴 수도 없고상상의 나라에 가지 못한다물론 진실을 노래할 기력도 사라진다그의 시는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게 된다.(그날 있었던 사실만 쓰려는 아이는 일기에 쓸 게 없다고 투덜거리거나 쩔쩔매게 마련이다.)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당신은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화자를 시의 무대 위로 내보내 놓고 화자의 뒤에 숨어 배후 조종자가 되어야 한다배우(화자)의 연기가 서툴거든 호되게 꾸짖어라그래도 배우가 영 탐탁지 않으면 당신이 배우의 가면을 쓰고 아주 잠깐 배우와 똑같은 의상을 입고 무대로 나가보라관객(독자)의 눈에는 당신이 무대에 등장한 줄도 모르고 가면 쓴 배우만 보일 뿐이니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보다 진실 그리는 시인>

<실제-가공의 사잇길 걸어야>

 

 

우리 현대시의 훌륭한 배후 조종자인 김소월과 한용운은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에서 여성 화자의 입을 빌려 이별의 정한을 멋들어지게 노래했다고은의 가계에는 실제로 누이가 없다그렇지만 그의 초기 시의 화자는 <폐결핵> <사치> <작별>과 같은 시에서 실제로 없는 누이를 여럿 거느리는 포즈를 취하면서 소름 돋도록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대학 4학년 때 겨울신춘문예를 준비하면서 나는 혁명에 실패하고 서울로 잡혀가는 전봉준을 그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신춘문예가 입을 모아 요구하는 참신성을 공식처럼 외우고 다니면서도 나는 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80년대라는 시대와 시를 어떻게 결합할 수 없나하는 것이었다.(캠퍼스 안에는 정보 경찰들이 합법적으로 방을 얻어 드나들던 시절이었다문학의 밤을 준비하면서 그 이름을 이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시로 내걸었다가 어둠이 무엇인가에 대해 따지는 사람들과 고된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그 흔한 어둠의 은유 하나도 허락되지 않던 때의 시는 그에 맞서기 위해 어둠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무렵에 읽은 책 중의 하나가 재일사학자 강재언이 쓴 <한국근대사>였다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책의 뒤표지에는 한 장의 조그마한 사진이 붙어 있었다그 사진을 설명하는 짤막한 한 마디,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을 나는 노트 한쪽에 또박또박 적어 두었다.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을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고치고 그걸 제목으로 삼아 학교 앞 자취방에 엎드려 시를 썼다동학농민전쟁에 대한 또 다른 책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건드리는 몇 가지 허구의 재료들을 모았다전봉준이 전북 순창의 피노리에서 체포된 시기는 음력으로 정월이었다.

그 어느 책에도 서울로 압송되는 동안 눈이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하지만 역사는 압송 시기를 음력 정월로 적어 놓았으니 이걸 놓칠 수 없었다나는 시의 배경에다 눈을 퍼부어 대기로 했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시는 시가 끝날 때까지 눈이 내린다만약에 앞으로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을 영화로 찍는 감독이 있다면 반드시 눈이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잡을 것 같다시적 허구는 역사적 사실보다 생동감 있는 진실을 보여주므로.

 

몇 해 전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시를 발표한 후에 독자들한테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그 바닷가가 도대체 어디냐한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어느 바닷가를 지나다가 우체국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혹시 이 시의 배경이 그곳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분도 있었다정보통신부에서도 연락이 와서 그 바닷가 우체국의 위치를 알려주면 시비를 하나 세워보겠다는 것이었다.

아아나는 그분들을 모두 실망시키고 말았다나는 가끔 변산반도 쪽으로 바람을 쐬러 가는데그 바닷가 언덕에 있는 몇몇 낡은 집들에 매혹되어 오래오래 그 집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그게 죄였다그 언덕 위의 낡은 집 문앞에 빨간 우체통을 세워두고우체국장을 출근시키고우표를 팔고우체부의 자전거를 굴러가게 하고,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간판을 거는 상상을 한 죄!

 

12. 말이 늙으면 시는 죽으리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있고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없을까일상어와 시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대체로 모든 일상어가 시어로 쓰일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문장과 대화에서 쓰이는 모든 말은 시어가 될 수 있다우리 현대시에는 표준어뿐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방언과 비속어까지 심심찮게 시어로 등장했다김용택은 환장하것네 환장하것어농사는 우리가 쌔빠지게 짓고쌀금은 저그들이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풍년 잔치는 저그들이 먼저 지랄”(<마당은 비뚤어져도 장구는 바로 치자>)이라며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노골적으로 농민들의 편을 든다김진경은 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넣구가시를 있는 대루 세우믄 누가 무서워헐 줄 아남유”(<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하고 충청도 말로 능청을 부린다안상학은 보래요삼시세끼 빵만 묵고 살라믄 살니껴대한민국 워델 가도 그런 사람 없을께시더”(<강씨 FTA>)라면서 경북 안동 말을 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김수영이 일찍이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자한참 후에 이에 화답하듯 황지우도 풍자의 대열에 합류한다. “간밤에도 그는 외국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년들을 대주고 그도 그년들 중의 한 년의 그것을 주물럭거리고 집으로 와서 또 아내의 그것을 더욱 힘차게더욱 전투적이고 더욱 야만적으로주물러주었다.”(<徐伐셔발(#아래아!!#), 셔블서울, SEOUL>) 이에 질세라 박남철은 한 발 앞서간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차렷열중쉬엇차렷,”(<독자놈들 길들이기>) 하고 호통을 친다.

 

현대어뿐만 아니라 중세국어영어화살표 같은 기호까지 시어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그리고 문장에 쓰이는 마침표·쉼표·물음표·따옴표·줄표와 같은 부호가 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못해 절대적이다심지어 옥타비오 파스는 침묵도 말이라고 한다. “침묵조차도 무언가를 말하는데침묵은 무()가 아니라 여전히 기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활과 리라>)

 

그런데 시어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철 조각이 아니다적어도 용접공이 강철과 강철을 이을 때 일어나는 불꽃이거나 그 불꽃의 뜨거움이거나 불꽃이 내장하고 있는 위험한 미래여야 한다그래서 때로 시어는 한글맞춤법이나 국어순화운동에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나는 자장면보다 짜장면메리야스보다 런닝구브래지어보다는 브라자펑크보다는 빵꾸머큐로크롬보다 빨간약이나 아까징끼가 더 시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옥타비오 파스도 시적인 언어는 일상으로부터 일탈할 때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시적 창조는 언어에 대한 위반으로 시작한다이러한 작용의 첫 번째 행동은 말들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다시인은 일상적인 일들그리고 그것들과 맺고 있는 연관 관계에서 말들을 뿌리째 뽑아내어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킨다이때 단어들은 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 된다.”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 전통 속에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는 한자 혹은 한자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우리 시인들은 한자의 형상이 드러내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한자가 시인들을 자극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기호의 의미는 같지만 이라고 쓸 때와 이라고 쓸 때 그 함의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우스운 이야기 하나어릴 적에 나는 음식점 간판에 적힌 산낙지를 보고 한동안 산에 사는 낙지인 줄 알았다가재처럼 심산유곡의 돌덩이 밑 어디쯤 사는……)

 

그런데 뜻글자라고 해서 그 뜻과 형상이 다 미학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관념적인 한자어는 시에서 척결해야 할 대표적인 낡은 언어다시적 언어의 성취 목표를 한 50년 이전쯤에 두고 있는 사람일수록 관념적인 한자어를 쉽게 지워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유치환이 <깃발>에서 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고 노래한 것은 1930년대 말이었고박인환이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라며 절망스러워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였다김현승이 堅固한 고독을 발표한 때는 60년대 중반이었다이 시인들이 애수와 애증과 견고한 고독을 노래할 즈음에 그 시어들은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아니다지금 그 시어들은 시간의 무덤에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이다.

 

무엇보다 관념적인 한자어를 써야만 그럴 듯한 시가 된다는 착각이 문제다정진규는 시에서 관념이 화자의 우월적 포즈’(<질문과 과녁>)라고 꼭 집어 말한 바 있다당신은 관념적인 한자어가 시에 우아한 품위를 부여한다고 착각하지 마라품위는커녕 한자어 어휘 하나가 한 편의 시를 누르는 중압감은 개미의 허리에 돌멩이를 얹는 일과 같다신중하고 특별한 어떤 의도 없이 아래의 시어가 시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그 시는 읽어 보나마나 낙제 수준이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진부한 말이란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모든 경서와 옛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말의 대부분이 이른바 진부한 말이다.”(김창협, <농암잡지외편시는 이런 진부한 시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사유라는 것은 원래 그 속성상 관념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법이다하지만 관념을 말하기 위해 관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학대행위다관념어는 구체적인 실재를 개념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관념어가 시만 좀먹고 있는 게 아니다예식장에도 있다흔해빠진 주례사가 그것이다행복과 공경과 우애와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주례사가 귀에 들리면 한시바삐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진정한 사랑은 개념으로 말하는 순간 지겨워진다황지우의 시처럼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늙어가는 아내에게)> 그게 사랑의 표현방식인 것이다.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하고 떠벌이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 휑하니 빈자리가 몹시 쓸쓸하게 보일 것이다당신은 그 빈자리를 오래 응시하라당신의 상상력이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고상상력은 이미지라는 처녀를 데리고 올 것이다말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그 처녀를 꽉 붙잡고 놓지 마라관념어를 떠나보낸 자리에 그 처녀를 정실부인으로 들어앉혀라그래도 관념어의 옛정이 그리워져 못 견디게 쓰고 싶거든 그 말을 처음 쓴 지 30년 후쯤에나 써라.

 

당신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겠다이시영의 <그대의 시 앞에전문이다나는 이 시에서 고독이라는 말을 발견하고 온몸이 찌릿찌릿해졌다이쯤은 되어야 고독을 말할 자격이 있다.

 

고독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사기리

밤새도록 앞뜰에 폭풍우 쓸고 지나간 뒤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잔바람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로이 위태로이 자신의 전존재를 다해 사운거리고 있다

 

13. 형용사를 멀리 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가 쓴 동시 한 편을 읽어보자. 어느 어린이 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동시를 쓴 아이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런 유형의 동시를 보면 화가 난다. 한숨이 절로 쏟아진다. 이 동시를 쓴 아이 때문이 아니다. 이런 동시를 쓰게 하고, 심사를 해서 상을 주고,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는 어른들이 한심해서다. 좀 더 과하게 말한다면 이 작품은 동시도 아니고 시도 아니다.

커다란 황금물감 푹 찍어
가을들판에 가만가만 뿌려놓았다
탱글탱글 누우런 벼이삭
살랑살랑 가을바람 불어오면
빠알간 고추잠자리
두둥실두둥실 흥겨운 춤사위

참새친구 멀리 이사 가도
외롭지 않은 허수아비
허허허 허수아비의 정겨운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 어깨춤 덩실덩실

우리는 이 동시를 읽으며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아니, 의문을 가져야 한다). 물감을 과연 커다랗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물감을 강하게 ‘푹’ 찍었는데 왜 조심스럽게 ‘가만가만’ 뿌리는가? 그렇게 물감을 뿌리는 주체는 누구인가? 호두나 감자도 아닌 벼이삭의 생김새를 ‘탱글탱글’로 표현하는 게 맞는가? 고추잠자리의 비행이 일정한 격식을 갖춘 춤사위라고 할 수 있는가? 허수아비와 참새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참새를 쫓기 위해서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서 있어야 할 허수아비가 왜 웃는가?(실성을 했나) 농부아저씨는 추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어깨춤을 추시는가?(낮술이라도 한잔 드셨나)
제목은 <가을맞이>다. 왜 그냥 <가을>이라고 하지 않고 <가을맞이>라고 했을까? 이 동시는 가을의 일반적인 풍경을 그저 평이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가을을 맞이하는 그 어떤 적극적인 자세도,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탐색도 없다. ‘가을’이라고 하면 맨송맨송해서 다만 무엇인가 덧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맞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면 왠지 시적인 표현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는 으레 꾸미고 몇 글자를 덧붙이는 것이라는 잘못된 의식이 시 아닌 것을 시로 행세하게 만들고 있다.


<형용사는 감정 직접노출 독자의 상상력 마비시켜>
<동사의 역동성 키워야 은유와 상징 되살아나>


글을 아름답게 하려고 다듬고 꾸미고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일을 수사(修辭)라고 한다. 이 동시는 온전히 수사의 기술로 쓴 동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쓰인 시어 중에 명사는 모두 10개다. ‘황금물감·가을들판·고추잠자리·춤사위·참새친구·이사·허수아비·웃음소리·농부아저씨·어깨춤’이 그것이다. ‘이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교롭게도 두 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한 복합어의 형태다. 이 명사들은 가을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결과로서 그 스스로 빛나는 시적 영감을 던져주지 못하고 시를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에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포함한 부사가 ‘푹·가만가만·탱글탱글·두둥실두둥실·멀리·허허허·덩실덩실’ 등 7개이고, 색깔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형용사로 ‘커다란·누우런·빠알간·흥겨운·정겨운’ 같은 말들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부사와 형용사를 빼고 이 동시를 한 번 읽어보자.

“황금물감 찍어/ 가을들판에 뿌려놓았다/ 벼이삭/ 가을바람 불어오면/ 고추잠자리/ 춤사위// 참새친구 이사 가도/ 허수아비/ 허수아비의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 어깨춤”

이렇게만 해도 작자가 형용사를 통해 대상을 간섭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 엘리어트는 일찍이 시가 “정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라고 강조하면서 시에서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을 경계했다. 형용사는 시인의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는 구실을 한다. 쉽게 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형용사가 유리한 것이다.
그러나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의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사가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시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고, 그 뜻은 쉽게 드러나지만 깊이가 없어 천박해진다. 사물의 핵심을 표현하는 데 게으른 시인일수록 형용사를 애용한다. 그가 제시한 형용사를 따라다니다 보면 독자는 상상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문장에서 형용사는 뒤에 오는 말(명사)을 치장하는 역할을 한다. 쓸데없는 치장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특히 형용사 중에 색채를 표현하는 ‘빨갛다·파랗다·노랗다·하얗다’와 같은 감각형용사는 아예 잊어버려라. 조지훈이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민들레꽃> 앞부분)라고 했더라도, 서정주가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국화 옆에서> 부분)라고 했더라도 당신은 ‘노오란’이라는 말이 아예 한국어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우리는 그동안 ‘노오란’을 시에 너무 많이 동원했고, 혹사시켰다. 제발 ‘노오란 개나리’ ‘빨간 장미’ ‘빠알간 고추잠자리’ ‘파란 바다’ ‘파아란 가을하늘’ ‘검은 밤’ ‘하얀 백지’ ‘하아얀 눈송이’라고 쓰지 마라. 그 색채 형용사들을 쉬게 하라. 색채 형용사들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동사의 역동성으로 채워 시를 살아 꿈틀거리게 하라. 기어가게 하라. 뛰어가게 하라. 날아가게 하라.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깔, 시간, 수량 등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 데 반해서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역동적인 어휘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다. 동사는 감각의 세계다. 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다. 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하는 게 다 동사로 표현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동사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잘 자, 많이 먹어, 이리 와, 빨리 가, 울지 마, 웃어 봐, 때리지 마, 안아 줘….”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한겨레, 2007. 12. 16.) 그러니 당신은 가능하면 형용사를 미워하고 동사를 사랑하라.

한국어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말은 조사의 종류가 많고 어미의 변화가 매우 다양한 언어다. 당신은 반드시 조사와 어미의 변화에 주목하라. “명사나 동사, 형용사만을 중시하지 말아라. 한 편의 시에서는 토씨도 명사나 동사 이상으로 율조에 큰 역할을 하며 울림에 크게 기여한다.”(최하림, <멀리 보이는 마을>, 작가) 토씨, 즉 조사 하나가 시의 어조와 호흡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문장을 맺는 어미를 종결어미라고 한다. 우리말은 종결어미를 통해서 시제, 경어법, 화자의 태도, 시의 리듬에 적지 않은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란 어미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종결어미는 ‘-ㄴ다, -ㅂ니다, -오’의 평서형, ‘-(느)냐, -니, -는가, -ㄹ까’의 의문형, ‘-구나, -군, -네’의 감탄형, ‘-어라/-아라, -게, -오’의 명령형, ‘-자, -세, -ㅂ시다’의 청유형으로 크게 나눈다. 이는 다시 ‘해라체·하게체·하오체·합쇼체’로 나눠지면서 경어법을 구별하게 된다.
근대 이전의 시에서 주로 쓰이던 ‘-노라, -도다, -지어다’와 같은 종결어미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죽은 어미가 되었다. 그러면 ‘-이다’는 어떤가. “나는 소금/ 좌판 위 주발이다/ 장날 폭설이다/ 지게 목발이다/ 헤쳐도 헤쳐도/ 산, 고드름의/ 저문 산/ 새발 심지의/ 등잔”(박용래, <겨울 산>) 은유적 표현에 기대어 의미를 단정하는 ‘-이다’는 70년대까지 시에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요즈음 시인들의 시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일상대화에서 요새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같다’가 시를 점령할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종결어미 하나가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다 짊어지고 갈 수도 있는 법이니까. 정말, 그럴 것도 같다.

 

14. 제목은 시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음식점을 고를 때 간판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간판에 적힌 상호, 간판의 크기, 글자체, 디자인에 따라 그 음식점의 역사와 음식의 맛을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조’라는 말이 붙어 있으면 일단 의심한다. 역사성의 과잉이거나 후발주자의 과장 광고일 수도 있다. 또 무슨 텔레비전에 출연했다고 요란하게 써 붙인 곳이 있으면 경계한다. 그게 설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맛없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는 문장도 아주 싫어하며, 할인가격을 보란 듯이 써 붙여 놓은 음식점도 꽝이다. 또 있다. 터미널 앞 식당가처럼 한 집에서 조리하는 음식의 수가 많아도 기피 대상이다. 최근엔 ‘웰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간판을 달고 있는 보리밥집에는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웃기고 있네, 비웃어주고 만다.


백석 시엔 멧새 깃털도 없어
후대 독자들 궁금할 수밖에

한 끼의 밥을 위해서도 이모저모 간판부터 살피는데, 하물며 시에서 간판이라고 할 제목을 어찌 소홀히 다룰 수 있으랴. 시의 제목을 이승하는 ‘첫인상’이라 했고, 강연호는 ‘이름’이라 하였다. 연암 박지원은 글을 병법에 비유하면서 “글의 뜻은 장수와 같고, 제목은 맞서 싸우는 나라와 같다”(<연암집>)는 문장을 남겼다.

그만큼 제목은 중요하다. “한 편의 시작품은 여러 부분이나 요소들이 모여 전체의 구조를 이루는데, 이때 제목은 전체 구조를 한 곳으로 응집하는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구조의 확장에 기여하기도 한다.”(강연호, <주제의 구현과 제목 붙이기>)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백석의 시다. 이 시의 제목은 <멧새 소리>이다. 그런데 시의 전면에 멧새 소리는커녕 멧새가 빠뜨리고 간 깃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처마 끝의 명태와 이를 동일시 한 시적 화자 ‘나’만이 꽁꽁 얼어 있을 뿐이다.

백석은 왜 이런 제목을 택했을까? 독자가 전혀 뜻하지 않은 의외의 제목을 제시함으로써 제목과 내용 사이에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노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시각과 촉각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이 시의 배경음악으로 멧새 소리를 삽입해 청각적 효과를 가미한 것일까? 후대에 이 시를 읽는 독자인 우리가 심심해 할까봐 일부러 그랬을까?(이 짧은 시 한 편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접었다 폈다 하는 이유도 시에서 제목이 그만큼 중요한 탓이다)

김춘수는 <시의 이해와 작법>(자유지성사)에서 시인이 제목을 붙이는 방식에 따라 시인의 태도가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를 쓸 때 제목을 붙이는 세 가지 태도가 있다. 첫째는 미리 제목을 정해 두는 것, 둘째는 시를 완성한 뒤에 제목을 다는 것, 셋째는 처음부터 제목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그는 스타일리스트답게 시의 의미와 내용을 중시하는 휴머니스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말한다. “제목이 정해져야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내용에 결백한 나머지 시의 기능의 중요한 면들을 돌보지 않는 일”이 있다며 시의 형식에 따라 내용이나 제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무제’있지만 좋은시 드물어
은근히 암시하되 언뜻 비치게

제목을 처음부터 붙이든 나중에 붙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심하는 그 과정이 창작자에게는 중요하다. 제목을 붙이는 일이 시쓰기의 처음이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라. 제목이 시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 제목을 고치거나 바꾸는 사이에 시는 진화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간다. 그것은 제목이 시의 내용과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에 놓여 있어서다.

실제로 제목을 이렇게 붙여야 한다는 시인들의 조언도 적지 않다. “시의 내용이 추상적일 때는 구체적인 제목으로, 구체적일 때는 추상적인 제목을 붙여주면”(박제천,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문학아카데미>) 좋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지엽은 “제목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것이 시의 격조와 긴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면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방법”과 “술어를 생략하거나 놀라움을 나타내거나, 감탄형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적 호기심이나 관능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선정적인 제목을 다는 경우”도 예를 든다.(<현대시 창작 강의>, 고요아침)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 봐도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 그럴 때는 <무제(無題)>가 기다리고 있다.

대구 근교 과수원
가늘고 아득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 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런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박재삼의 시 <무제>다. 사실 나는 평소에 시든 그림이든 작품 앞에 ‘무제’라는 제목을 턱, 갖다 붙이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목이 없다니! 그건 자기 작품에 대해 창작자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무제’라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제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제’를 제목으로 내건 작품 치고 제대로 된 작품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대체로 예술가연 하는 허위의식이 발동하거나, 작품의 미숙성을 눈가림하거나, 작가의 상상력이 부족할 때 궁여지책으로 갖다 붙이는 제목이 ‘무제’를 제목으로 단 시나 그림일 터이다. 특히 비구상 계열의 그림이 이런 제목을 붙이고 화랑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달아나 버린다. 그런데 나의 이런 편견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도록 만든 시가 박재삼의 <무제>다. “허리에 감기는 비단”이 왜 아픈지 나도 아니까!

대체로 제목은 시의 중심 소재를 앞에 제시하는 경우(밋밋하고 단순해서 재미는 없지만 내용보다 어깨를 낮춤으로 해서 내용을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시간이나 공간적인 배경을 취하는 경우(‘-에’ ‘-에서’가 붙은 모든 제목이 그렇다), 주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경우(김중식의 <완전무장>을 읽어보라), 첫 행을 아예 앞에다 내세우는 경우(최승자의 <개 같은 가을이>가 대표적이다)가 있다. 어떤 경우든 간에 호기심을 유발하되 난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며, 무겁되 가볍지 않게 해야 할 것이며, 은근히 암시하되 언뜻 비치게 해야 할 것이다. 다시 연암의 호쾌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라.

“억양을 반복하는 일은 맞붙어 싸워 죽이는 일과 같고, 제목의 뜻을 드러내 보인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군을 사로잡는 일과 같다. 짧은 말이나 글로 깊은 뜻을 담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은 함락된 적진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일과 같고, 글의 여운을 남겨 놓는 것은 전열을 잘 정비하여 개선하는 일과 같다.”

 

15.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김소월, <가는 길> 일부) 이렇듯 절묘하게 우리의 전통적 율격인 3음보를 활용하던 시절은 차라리 행복했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박목월, <윤사월> 전문). 간략한 7·5조에 기대어 봄날의 애틋한 정취를 짧게 노래하던 시절도 먼 옛날이 되었다.

시를 쓰게 되면 누구나 행과 연을 구분하게 되고, 그에 따른 리듬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문학수업 시간에 귀가 닳도록 듣게 되는 그놈의 내재율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내재율은 정형시의 율격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시의 내부에 숨어 있는 리듬을 말한다. 이 보이지 않는 리듬은 시와 시 아닌 것을 구별하는 중요한 형식적 잣대가 되기도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만 모든 자유시가 내재율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창작자의 입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김우창은 “어느 시대에서나 진정 잘 된 시에서 적절한 음악의 형식은 발견되어야 한다”고 했고, 이형기는 “일상에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소리를 예술적으로 조직한 구조물이 시”라면서 시의 음악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의미(내용)와 소리(형식)의 유기적 결합이 운율의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근대 이후 대부분의 창작자는 음악성보다는 회화성을 확보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주제나 소재와 같은 내용의 형상화를 고심하는 동안 리듬에 대한 배려는 뒤로 밀쳐두는 일이 빈번해진다. 시인들은 형식을 낯설게 변화시키는 일을 내심 두려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설혹 과감하게 기존의 형식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한다. 그렇게 현재의 형식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과 탈출하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 낀 존재, 그가 시인이다.

시의 리듬이 발생하는 지점은 행갈이, 연의 나눔, 음절과 음운의 반복·고저·장단·강약, 문장 부호의 배치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시의 행과 연은 외형적으로 시와 산문을 가장 잘 구별해주는 요소이다. 행과 연을 활용해 무엇을 쓴다는 것은 시인의 특권이자 시인에게 내린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시에서 이처럼 중요한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시지 않으면 시인으로서 낙제다. 당신이 시를 쓸 때 아무 의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행과 연을 바꾸었다면 지금부터 자중하라. 관습적인 행갈이는 당신이 쓰는 시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관습화한다. 시의 호흡에 따라 적당히 행을 바꾸면 된다고, 행갈이에 특별한 규칙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빨리 그 나쁜 생각을 버려라. 행갈이에 ‘적당히’란 없다.

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은 한 채의 집을 짓는 일과 같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즉흥적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계도면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을 수행할 인부와 집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확보해야 하고, 충분한 공사기간이 있어야 한다. 시가 하나의 유기체적 구조물임을 염두에 둔다면 행을 바꾸거나 연을 나눌 때에도 시인의 의도가 충분히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계획과 의도 없이 절대로 행을 당신 마음대로 바꾸지 마라. 시의 리듬을 고려해 행을 바꾸었다고 구차하게 변명 좀 하지 마라.

예컨대 최근에 당신이 10편의 시를 썼다고 치자. 그 시행의 길이가 다 고만고만하고, 각각의 시의 길이가 모두 비슷비슷하다면 당신의 시작 행위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라. 그때 당신의 리듬은 기계적인 리듬이어서 아무도 당신의 리듬에 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리듬뿐만 아니라 시의 내용도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백번 옳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박노해의 시 <지문을 부른다> 일부이다. 우리는 그동안 박노해가 현장노동자 출신의 시인이라거나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이 노동자의 당파성과 미래를 향한 진보적인 상상력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에만 주목해왔다. 물론 박노해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여기에 세 번 등장하는 ‘없어’에 사정없이 꽂혀버렸다. 주민등록증 갱신을 위해 지문을 찍다가 노동자로 산 덕분에 문드러지고 사라져버린 지문을 어쩌면 이렇게 선명하게 부조할 수 있는가! 인용 부분의 첫 번째 ‘없어’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충격과 놀라움이 있고, 두 번째 ‘없어’에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의 까무러치는 비명이 있고, 세 번째 ‘없어’에는 절망으로 들끓는 복잡한 심리가 투영되어 있다. 또한 ‘없어’의 뒤에 붙은 쉼표 하나하나는 시의 호흡을 가파르게 하면서 앞에서 터져 나온 ‘아’라는 감탄사를 뒤로 계속 밀어붙이는 구실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없어’는 지문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이외에 자본주의 시장에서 노동자의 존재란 없다는 각성까지 환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중 한 부분을 행갈이와 쉼표 없이 적어보자.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


어떤가? 행갈이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단 한 글자, 혹은 두 글자라도 그게 하나의 시행이 되려면 시의 전체 흐름에 힘을 가하는 무게가 있어야 한다. 만약에 전체 20행의 시가 있다면 한 행은 이십분의 일의 언어 밀도와 생각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김춘수는 <시의 이해와 작법>에서 시행 구분의 원리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제출한 적 있다. 그는 일본 시인 기다조노 가즈에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의 각 행은 ‘사상의 분량’ ‘의미의 분량’ ‘이미지의 분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것만 봐도 계산된 의도 없는 시행 바꾸기가 시를 얼마나 허약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시가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써야 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형식을 변화시킬 만한 에너지를 행 바꾸기에서부터 찾아라. 습관적으로 바꾸고 나눠왔던 행과 연에 변화를 도모하라. 한 행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바꿔보라. 시의 길이를 지금보다 길게 늘이거나 대폭 줄여보라. 모두들 긴바지를 입는 겨울에 시인은 반바지를 입고 뚜벅뚜벅 바깥으로 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시행이 산문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은 개별적인 리듬이나 이미지보다 전체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오규원 <현대시작법>)고 했다. 행갈이가 애매하고 지겨워지면 아예 행을 무시한 산문시로 건너가 보라. 거꾸로 산문시가 구태의연하다고 느껴지면 다섯 줄 이하의 짧은 시로 건너가 보라.

문장의 빛깔과 무늬를 문채(文彩)라고 한다. 시의 문채는 행과 연의 배치, 어휘의 선택 등을 통해 나타난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시에 대폭 도입된 ‘양행 걸침’ 형태는 시의 형식과 내용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그것을 선도한 것은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이다. 이 양행 걸침 기법은 한국시에 고질적으로 스며 있던 관망과 관조의 태도를 일시에 혁파하였다. 행갈이의 변화가 한국시의 질서 전체를 역동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 파급력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1989)에 와서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시작활동을 멈추었다가 최근에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세 시인이 있다. 서정춘, 위선환, 신현정 시인이 그들이다. 이 시인들의 시가 왜 좋은가? 다른 것 다 젖혀두고, 행과 연부터 다르다. 문채가 다르다. 오랜 시간의 내공이 개성적인 형식을 낳았다.

 

16.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본뜨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와 같게 하거나 흉내내어 그대로 따라 한다는 뜻이다. 미술시간이나 무슨 공작물을 만들 때 곧잘 쓰는 말이다. 떠야 할 본(本)을 문자나 행동으로 따라 하는 일을 모방이라고 한다. 또 그림이나 원본을 베끼는 일은 모사(模寫)라는 말을 쓴다. 동양화나 서예를 배우는 사람이 첫 번째 하는 일이 바로 모사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창의적으로 붓을 놀릴 자격이 주어진다. 붓을 놀린다는 어떤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모사는 필수요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사람은 모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연속성 위에 놓인 극이 행동의 모방이라고 했다. 이 모방론은 문학의 기원과 발생을 설명하는 일에서부터 창작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에까지 두루 활용된다. “인간의 욕망 자체에는 전염병 같은 본질적 모방 경향이 내재해 있다”(<폭력과 성스러움>, 민음사)고 한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다. 그는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모방본능은 동질성의 본능과 통한다고 하였다. “자기가 지향하는 존재를 발견할 때마다 그 추종자는 타인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을 욕망함으로써 그 존재에 도달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뛰어나거나 잘난 상대방과 유사해지려는 욕망은 본능적으로 언어 표현이나 행동을 통해 나타나게 마련이다.


〈억지 모방해 ‘아류’ 그치지 말고〉
〈변화를 추구하되 ‘법도’ 살필 것〉


예술작품의 모방에 관한 논의는 서양보다 동아시아에서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고대부터 당대까지 중국 시학의 요점은 모방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쉰(魯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견준 중국의 고대 문학이론서가 있다. 유협(465~532로 추측)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이 바로 그 책이다. 그는 전고(典故)를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경서(經書)의 우아한 어휘를 공부하여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면 이는 광산에 가서 구리를 주조하고, 바닷물을 쪄서 소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모방을 배우는 것, 그게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의 시인과 이론가들은 전고의 활용 여부가 창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즉 앞선 전통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심조룡>은 ‘통변(通變)의 기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통’이란 전통의 계승을 가리키는 말이고, ‘변’은 말 그대로 전통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론은 “문장을 이루는 문학양식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지만 표현의 기교에는 정해진 규율이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창작에 임할 때에 작가의 진정성(문심)과 언어의 예술적 표현(조룡)이 조화와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시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고를 활용하는 것을 모방의 한 방식이라고 본다면, 송대의 황정견(1045~1105)을 필두로 한 강서시파는 이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단 한 글자도 출처가 없는 것이 없다”(無一字無來處)고 하면서 옛사람의 시를 많이 읽고, 학식을 바탕으로 시를 지어야 한다고 하였다. 황정견은 시를 쓰는 방법으로 두 가지 유명한 이론을 제시했다. 옛사람의 시원찮은 말을 빌려 써 시를 돋보이게 한다는 ‘점철성금법’(點鐵成金法)과 옛 시인의 뜻과 표현을 빌려 새로운 시를 낳는다는 ‘환골탈태법’(換骨奪胎法)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금대에 와서 왕약허(1174~1243) 등에 의해 정면으로 비판을 받는다.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독창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강서시파의 이론은 표절, 답습, 짜깁기, 도용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시인들이 앞선 문장의 활용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인 것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통의 계승과 변화·발전 사이의 갈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중국 시인들에게 있어 모방의 문제는 단순히 표절 여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의 형식, 주제나 소재, 창작기법 등 시 창작의 전반에 걸쳐 모방의 방식을 줄기차게 사유했던 것이다.

옛글을 활용하는 ‘용사’(用事)에 대해 <중국 고전 시학의 이해>(이병한 편저, 문학과지성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용사’라는 표현을 ‘모방’으로 바꾸어 간추려 본다.

첫째, 모방을 위한 모방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죽은 시체를 쌓아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억지로 모방을 해서는 안 된다. 누에가 뽕잎을 먹되 토해내는 것은 비단실이지 뽕잎이 아니다. 셋째, 모방을 융화시켜 매끄럽게 해야 한다. 물 속에 소금을 넣어 그 물을 마셔봐야 비로소 짠맛을 알게 되는 것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주역에서는 “궁하면 변화하게 되고, 변화하면 통하게 되며, 통하면 오래갈 수 있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고 했다. 우리의 연암 박지원도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화할 줄 알아야 하고, 변화하되 능히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고 글쓰기의 지침을 이야기한 바 있다.

〈모사 관문 거쳐야 붓 놀릴 자격〉
〈중국 시가는 모방 놓고 논쟁도〉

현대에 와서도 시 창작에 대한 고민은 모방에 대한 고민과 궤를 같이한다. 모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가령 모방을 한다면 어디까지 모방하고, 무엇을 모방하며, 언제까지 모방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의 모방의 형태를 한번 살펴보자. 우선, 전범이 되는 시인이나 시적 경향을 추종하는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주제와 소재를 비롯한 시의 내용을 답습하는 일, 운율이나 언어 사용 기법 등 형식을 답습하는 일, 그리고 구체적인 문장이나 어휘 표현을 베껴 도용하는 일이 모두 모방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에다가 창작자 자신이 자신의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동어 반복하는 일도 일종의 자기모방에 해당한다.

김춘수는 모방을 일삼는 사람들을 아류라는 말로 평가 절하한다. 아류란 스타일과 소재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독창적인 어떤 시인의 뒤만 따라다니면서 세상에 남이 입다가 낡아서 벗어던진 헌옷만을 주워다가 헐값으로 팔아서 퍼뜨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박성을 통박하면서도 그는 습작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모방하게 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발 물러선다. 그러나 “습작이란 남의 영향권을 벗어나는 작업”이므로 남의 아류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쯤에서 당신은 작은 답을 구하기 바란다. 혼자 써놓고 혼자 보는 시라면, 그걸 습작이라 한다면, 남의 옷을 입고 자신의 옷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모방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에서 시적 영감이 번개 치듯 심장으로 날아오기를 기다리지 마라. 그보다는 차라리 흠모하는 시인의 시를 한 줄이라도 더 읽어라. 시험을 대비하는 공부도 하지 않고 ‘나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쳐보는 행위는 부도덕한 짓이지만 훔쳐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답안지 쓰기를 포기한 사람은 바보다. 당신은 모방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지 마라.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고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정희성, <아버님 말씀>)대로 말한다면 당신에게 모방을 하라고 하면 도둑질을 하라는 것이 되고, 당신에게 새로이 창조하라 하면 구차한 표현을 일삼으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모방을 배워라. 모방을 배우면서 모방을 괴로워하라. 모방을 괴로워할 줄 아는 창조자가 되라. 모방의 단물 쓴물까지 다 빨아들인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까스로 낼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모방의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즐거운 창조자가 되라. 모든 앞선 문장과 모든 스승과 모든 선배는 당신이 밟고 가라고 저만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징검돌 삼아 그들을 밟고 뚜벅뚜벅 걸어가라. 시인은 모든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구성할 임무를 타고난 사람들이므로.

 

17. 시 한 편에 이야기 하나를 앉혀라


비탈진 달동네 개똥이네 집 지붕이 비만 오면 샌다거나 공장에 나가는 순이의 얼굴이 핼쑥하다는 이야기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가 그랬다. 표현의 자유란 애초에 없었으므로 눈앞에 벌어지는 참담한 현실에 대해서도 침묵할 것을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그때 신경림의 <농무>가 솟아나왔다. <농무>라는 한 권의 얇은 시집이 조근조근 따지듯이 되새겨낸 세계는 현실의 사실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사건이 될 만했다. 얻어 쓴 조합 빚과 술집 색시의 분 냄새와 담뱃진내 나는 화투판이 소외의 장막을 활짝 걷어 젖히고 신선한 시어가 되어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파장>)는 화두를 접한 ‘못난 놈’들이 비로소 소주잔을 들이키며 당당히 어깨를 흔들 수 있게 되었다.


〈침묵 강요하는 참담했던 시절〉
〈신경림 ‘농무’ 현실묘사 ‘충격'〉


<농무>가 아직 내 책꽂이에 꽂히기 전, 까까머리 나는 이른바 고등학생 문단을 들락거리며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문학 소년이었다. 쥐뿔도 없는 내가 잘난 척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시를 척척 써낼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 기술을 나에게 전수한 것은 요샛말로 모더니즘이었다. 나는 가증스러울 정도로 치밀하게 언어를 계산하는 데 몰두했다. 삶의 남루와 슬픔을 함부로 까발리지 않아야 한다는 창작의 원칙 같은 것도 나름대로 정해두고 있었다. 나는 그저 향기롭기만 한 시를 쓰고자 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겨운 풍경들이 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전에는 나와 어울려 놀았으나, 내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담겨 있던 풍경들이 생생하게 다시 인화가 되어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가난하나 외롭지 않고, 우리는/ 무력하나 약하지 않다”(<시골 큰집>)는 시집 속의 평범한 좌우명 하나가 실제로 시골 큰집 내 사촌형의 책상 앞에 붙어 있을 것만 같았다. 쓸쓸하고 고단한 줄로만 알았던 하찮은 세계가 한 권의 시집 속에 그렇게 눈부신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다니! 게다가 구태여 말을 비비꼬지 않더라도 시가 태어날 수 있으며, 한 토막의 이야기도 서정을 만나면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새롭게 배웠다.

서정과 서사의 결합, 즉 시에다 이야기를 담는 우리 시의 전통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에 대하여 김기진은, 이 작품이 “생생한 소설적 사건”과 “현실, 분위기, 감정의 파악이 객관적, 구체적”임을 근거로 ‘단편서사시’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객관적인 현실을 형상화해야 하는 프롤레타리아 시의 창작방법론으로 이 용어를 제시한 것이다.
이야기가 담긴 서정시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시가 이용악의 <낡은 집>이다. 이 시에서 이용악은 초근목피의 세월이 우리 민족의 생존을 송두리째 뒤흔들던 1930년대의 상황을 어린 화자의 눈을 통해 절실하게 보여주었다. 그 당시 민중들의 생활상을 마치 단편소설처럼 펼쳐 그려낸 것이다. 이 한 편의 시 안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한 가족이 겪어야 했던 슬픈 이야기가 들어앉아 있다. 아이들은 축복도 받지 못하고 태어나 가난하게 살아야 했고, 가장은 가장대로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야반도주를 감행해야 했다. 떠나지도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시에 하나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들어앉히는 이 방법은 1970년대 김지하에 의해 ‘담시’라는 형식으로 발전했고, 신경림의 <농무>를 거쳐 1980년대에는 최두석 등이 ‘이야기 시’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정리한 바 있다.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새 우시어
하이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이용악의 <달 있는 제사>는 전체 5행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주 짧은 시다. 언뜻 보면 이 시에는 세부적인 사건도 없고, 특정한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나 배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중한 서사적 뼈대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짧은 시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어머니의 상실감을 아프게 바라보는 화자가 선명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슬픔은 ‘이슬이 두어 방울’ 속에 집약되어 있다. 이 두어 방울의 이슬은 이슬의 양이나 슬픔의 무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두어 방울은 현실의 슬픔이 감당할 수 없이 벅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반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슬픔을 이겨내려는 안간힘의 표상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용악은 ‘달빛·박꽃·이슬’이라는 전통적인 자연서정에다 당대 민중의 보편적인 삶의 고통을 ‘두어’라는 관형사로 압축하고 싶었으리라.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황인숙의 시 <삶> 전문이다. 단 석 줄로 삶을 간명하게 정리하는 이 시는 자꾸 읽어볼수록 아프다. 문장의 끝에 찍은 물음표와 말줄임표, 그리고 마침표를 유심히 보기 바란다. 첫 행의 물음표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두 번째 행의 말줄임표는 이루어지지 않는 꿈의 좌절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마지막 행의 마침표는 삶의 어찌할 수 없음으로 인한 체념, 혹은 그래도 살아가야 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따위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시에서 외상값의 의미도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확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부모에 대한 빚,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빚, 이웃에 대한 빚… 그런 외상값 때문에 사는 것, 그게 삶이라는 것을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이야기-서정 만나면 ‘시’ 탄생〉
〈감정 구성하고 소재 장악해야〉

이렇듯 아무리 짧은 시라도 한 편의 시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건의 전개와 인물의 배치에 관심을 두는 서사지향의 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하나의 관념이나 순간적인 이미지의 포착만으로도 충분히 한 편의 시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인은 머릿속에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해 놓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소재에 대한 시인의 장악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사를 쓸 때처럼 시에 도식적인 육하원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의 독자가 바라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머리는 매우 세밀한 육하원칙을 바탕으로 시를 통제해야 한다. 시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감정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구성한다는 것은 드러내고 싶은 감정의 순서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시도 하나의 구조물이라고 하며 시에도 기승전결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시의 기승전결 구조가 겉으로 보이지 않고 시 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시인은 머리와 가슴 속에 이야기를 쟁여두고 시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속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나희덕의 <허공 한줌> 전문

좀 길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이 시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판타지의 힘을 빌린 아기 엄마 이야기 하나와 그 이야기를 듣고 옮기는, 귀가하는 화자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죽음으로 아기를 살리는 모성도 감동적이지만 삶의 어떤 집착으로부터 풀려나는 한 인간(화자)의 모습이 시를 읽는 독자까지도 시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여 해방시킨다. 시인의 뛰어난 소재 장악력이 감동을 낳았다.

 

18.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라고 외친 햄릿의 고민은 펜을 들고 백지 앞에 앉은 시인의 고민이기도 하다. 시를 써야겠다는 그 순간부터 시인은 햄릿처럼 고민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성자와 창녀 사이에서, 수다와 침묵 사이에서, 욕망과 해탈 사이에서, 감성과 지성 사이에서, 내용과 형식 사이에서, 관조와 참여 사이에서,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시인은 정처 없이 흔들리면서 고민하는 자다.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갈등하는 사람, 그가 시인이다.

〈창작은 자기와의 끝없는 고투〉
〈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라〉

시를 가슴으로 쓸 것인가, 손끝으로 쓸 것인가? 습작기에 이런 주제를 두고 누구나 한번쯤 입씨름을 해봤을 것이다. 사소하지만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운 화두 중의 하나다. 작품의 진정성(가슴)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표현기술(손끝)에 심혈을 기울일 것인가?

굳이 나누자면 나는 손끝의 문학을 먼저 배운 축에 속한다. 시에 처음 눈을 뜬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나는 시를 ‘쓰는’ 소년이 아니라 ‘만드는’ 소년이었다. 어쩌다 새로이 하나의 단어와 문장을 만나면 그것들이 주는 울림 때문에 몇 날 며칠 아팠다. 어떤 단어는 환각제 같았고, 어떤 문장은 하느님 같았다. 그것들은 나를 꽁꽁 묶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했고, 목마르게 했고, 그러다가 어느 때는 또 하염없이 나를 해방시켰다. ‘측백나무’라는 말을 만나면 나는 측백나무의 모양과 빛깔과 향기에 취해 다른 나무들을 볼 수가 없었다. ‘이마’라는 말도 그 무렵 나를 사로잡은 말 중의 하나다. 어느 날 이 말이 나를 강타했다. 이마는 ‘얼굴의 눈썹 위로부터 머리털이 난 아래까지의 부분’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나를 설레게 했다. 이마는 때로 ‘밝다’라는 형용사의 변형된 명사형이었고, 햇빛이 비치는 아침의 연못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찰랑이는 머리카락이었다. 언어가 아니라 마치 무슨 환상의 기호 같았다. 나는 말에 사로잡혀 말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말의 감옥 속에서 행복했으므로 거기를 벗어나기 싫었다. 나는 말이 지시하는 대로 손끝으로 또닥또닥 시를 만들 뿐이었다.

1980년,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세상은 손끝으로 시를 만드는 일을 회의하게 만들었다. 대학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슴으로 쓴 시가 진짜 시다.”
시를 합평하는 자리에서도 술집에서도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선배들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시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를 살아야 해.”
아아, 시를 쓰지도 못하는데 시를 살아야 한다니! 손끝으로 시를 만지작거리던 나는 난처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삶과 시의 일치를 강조하던 그 시기에 나는 선배들의 조언이 문학적 허영의 표현에 불과하다면서 슬쩍 대들어보기도 했다. 그런 나를 향해 선배들은 일침을 가했다.
“자네 시는 뒷심이 약해!”
이때 들은 ‘뒷심’이라는 말 때문에 나는 거의 1년 동안 뒷심이 강한 시란 뭘까, 하고 혼자 고민을 거듭했다. 나를 고민 속으로 몰아넣은 그 선배는 심각한 얼굴로 이런 말도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어제 다 읽었는데 말이야, 삶의 고통이 뭔지, 죽음이 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그리하여 나는 서서히 문학의 무거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늘 손에 들고 있던 박목월과 서정주와 김춘수와 정현종 시집을 내려놓고 선배들이 권하는 역사와 사회과학 책들을 집어 들었다. 시집으로는 고은과 신경림과 김지하와 이시영의 이름이 든 것을 탐했다. 그리고 시학 강의실에 일찌감치 와 앉아 있던 보들레르와 바슐라르 같은 서양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다.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왠지 그렇게 해야만 시를 가슴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 황석영이 한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은 “소설을 엉덩이로 쓴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것은 작가가 소설에 투여하는 집중적인 시간과 인내의 중요성을 말한 것일 터이다. 어찌 소설뿐이랴. 시를 쓰려거든 당신은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쓰고, 엉덩이로도 쓴다고 생각하라. 가슴으로는 붉고 뜨거운 정신을 찾고, 손끝으로는 푸르고 차가운 언어를 매만질 것이며, 엉덩이를 묵직하게 방바닥에 붙이고 시에 몰두하라.

〈손끝으로 또닥또닥 쓰던 내게
“가슴으로 쓴 시가 진짜 시다”〉

감성을 앞세워 쓸 것인지, 지성을 바탕으로 쓸 것인지도 고민하지 마라. 김춘수는 “일상 속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느끼느냐 하는 능력”을 감성이라 하고, “비교하고 대조하는 작용”을 지성이라 한다면, 그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면 안 된다고 하였다. 당신은 감성이 녹슬지 않게 신체의 감각기관을 항상 활짝 열어두고, 지성이 바닥나지 않게 책읽기를 밥 먹듯이 하라. 그리하여 시를 쓸 때는 감성과 지성이 비빔밥이 되도록 골고루 비벼라.
시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고민도 끝까지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어느 글에서 문장을 배우는 사람은 먼저 형식을 배우라고 권한다. “문장을 배우는 사람은 옛사람의 글을 대할 때 가장 먼저 형식을 만나고, 다음으로 그 내용을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내용을 통해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문장의 형식을 만나 배우지도 않고서 어떻게 그 내용을 취하고 형식을 버리는 일을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문학사에서 시 쓰는 자가 취해야 할 태도를 가장 통쾌하게 정리한 시인은 김수영이다. 저 유명한 ‘온몸의 시학’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은 나는 20여 년의 시작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시가 무엇인지 규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김수영식 비판이다. 그는 시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데서 새로운 시가 탄생한다고 믿었다. 시인이란 끊임없이 이탈하는 자임을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그 어느 문법에도 갇히지 않는 변화와 갱신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작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김수영은 시인의 창작행위가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역설한다.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이 창조의 주체임을 깨닫고 철저히 인식의 전복을 꾀하는 일이 ‘온몸의 이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신과 육체를 모두 대지와 신께 바치는 오체투지의 자세와 다를 바 없다. 시를 창작하는 일은 온몸으로 하는 반성의 과정이며, 현재진행형의 사랑이며 고투이기에 김수영의 말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칭(艾靑)도 시인에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끝없이 긴장할 것을 주문한다. “예술과 생활이 통일과 조화를 얻도록 노력하기 위하여, 시인들은 항상 현실과 이상의 중간에 자신을 던져 놓아, 마치 물 따라 나아가는 배가 그에 거슬러 거꾸로 부는 바람의 시련에 저항하듯, 자신의 생명을 불안정과 흔들림 속에서 나아가게 한다.”
정현종이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사물의 꿈·1〉)고 노래할 때의 그 나무가 바로 시인이다. 그렇게 흔들리는 기쁨을 소설가 박범신은 이렇게 표현했다.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19.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비유는 일상적 언어 규범에서 일탈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언어 용법이다. 은유·직유·제유·환유의 뒷글자인 ‘유’(喩)는 ‘말하다’는 뜻의 ‘구’(口)와 ‘옮기다’라는 뜻을 가진 ‘유’(兪)의 결합이다. 즉 비유란 말의 원래 뜻을 옮겨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개나리꽃은 노랗다”는 일상 언어를 “개나리꽃은 병아리 부리다”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바꿔보자. 이 ‘병아리 부리’ 속에는 노란 색깔 이외에도 개나리꽃의 모양, 꽃잎의 연약함, 봄의 이미지 등이 첨가된다. ‘노랗다’는 일상 언어의 평이함이 전면 확장되어 의미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상과 대상 연결하는 ‘은유'〉
〈비틀고 꼬며 덧칠해야 할까〉

여러 가지 비유 중에 은유는 차별성 속에서 동일성을 찾는 수사법 중의 하나다. 옥타비오 파스는 “시는 대립적인 것들의 역동적이고 필연적인 공존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최종적인 동일성을 선언한다”(<활과 리라>)고 말했다. 누가 뭐래도 시는 은유의 덩어리다. 은유적 표현을 한정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시라는 양식이 은유에 기대어 태어났고 성장하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때로 은유의 폐해를 지적하는 연구도 우리의 흥미를 끌어당긴다. 구모룡의 <제유의 시학>에 따르면 시는 근대적 개념인 세계의 자아화나 동일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은유는 다른 대상을 자기화하는 수사학이다. 다시 말해서 은유는 대상과 대상을 강제적으로 연결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압하는 논리이다.” 이러한 은유적 욕망이 근대에 와서 주체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를 낳았다는 진단이다. 이처럼 “타자에게 폭력적”인 은유에 대한 대안으로 유기론을 바탕으로 하는 제유 시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말을 비틀고 교묘한 표현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비판에 일찍이 허균도 가세했다. “<서경>에 실려 있는 여러 편의 명문장을 보라. 모두 문장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어려운 말로 교묘하게 꾸민 구절이 있는가? (중략) 제자백가서만 보더라도 모두 자신들의 도리를 논했기 때문에 그 글은 쉽고 간결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는 문장과 도리가 둘로 쪼개져 마침내 어렵고 교묘한 말로 글을 꾸미는 일이 생겨났다. 이것이야말로 문장의 재앙이다.”(허균 <성소부부고>)

나도 땅을 가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민병하 선생님도
수원 근처에 오천평이나 가졌는데……
싼 땅이라도 좋으니
한 평이라도 땅을 가지고 싶다.
땅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좋으랴……
땅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땅을 가지고 있으면,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

천상병의 시 <땅>이다. 시인은 가진 땅이 한 평도 없어 “나도 땅을 가지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욕망을 드러낸다. 땅을 가지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소유욕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라 할 만하다. 어떤 이들은 도대체 이런 게 무슨 시인가, 되묻고 싶을 것이다. 이 시에는 시적인 비유도 없고 시적인 발견도 없다고, 이런 시라면 하룻밤에도 수십 편을 쓰겠다고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천상병이라는 유명한 시인이 쓴 것이니까 좋은 시라고 추어올리는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시인의 욕망은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는 아주 작지만 근원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땅을 가진 뒤에 땅값이 오르기를 기다리거나 거기에 부동산을 짓겠다는 투기 욕망 따위는 일절 없다. 오히려 그런 심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인은 그저 초목과 꽃을 심겠다고 한다(그러다 보면 땅값이 오르겠지, 하고 의심한다면 당신은 정말 속물이다). 이러한 단순성의 미학이 천상병이라는 시인을 만들었다.

이 시에서 무욕의 욕망을 읽고 은유 아닌 은유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은유의 성채 입구에 도달한 사람이다. 그러니 시를 쓰기 위해 책을 뒤져 은유를 배우지 마라. 은유를 잘못 배우면 말을 요리조리 비틀고 무슨 문장이든 꾸미려 하고 교묘하게 꼬는 일이 시의 전부인 줄 알게 된다. 나는 그것을 ‘비유의 덧칠’이라고 부른다. 비유를 덧칠하지 않고 단순한 상상력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저녁에 술 마시러 나갈 때 천상병의 이런 시 구절을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주막에서> 일부분)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가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도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 볼 생각이다.

미당이 작고하기 두 해 전, <현대문학> 1998년 1월호에 발표한 시 <내 늙은 아내>다. 그 한 해 전에 나온 마지막 시집 <80소년 떠돌이의 시>(시와시학사)도 그렇지만 말년에 미당은 여든을 훨씬 넘은 나이에 놀랍게도 소년의 목소리를 얻었다. 어른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사에 대해 이것저것 따지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년은 단순하게 세상을 읽으려고 한다. 삶의 갈등과 고뇌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당의 시에 나타나는 이 단순성은 이 세상을 한 바퀴 휘휘 돌아본 뒤에 마침내 다다른 시선(詩仙)의 경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과 인생의 산전수전 끝에 미당은 천진성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눈을 갖게 된 것이다.

〈특정한 틀에 갇히지 말고〉
〈천진난만한 상상 표현하길〉

내 아내는 여기 등장하는 ‘늙은 아내’와 달리 내 담배 재떨이를 아침저녁으로 비워본 적이 별로 없었다. 집에서 내 재떨이는 담배꽁초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버린 휴지 조각, 방바닥에서 집어낸 머리카락, 손톱 따위들을 담는 쓰레기통쯤으로 취급되어 왔었다. 나는 이 시를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는 시를 보고 뭔가 찔리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 다음날부터는 정말 내 재떨이도 확연히 달라졌다. 아침저녁으로 담뱃재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재떨이를 보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도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담배 재떨이는 대체로 둥글다. 그 둥근 모양과 부부 관계가 알맞게 버무려진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보름달을 떠올린다. 모자라는 것도, 더 채워야 할 것도 없는 보름달의 원형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 닿아야 할 사랑의 종착지를 상징한다. “아 내곁에 누어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戀人(연인)의 꿈은 또 한 번 비친다.”(〈눈 오시는 날〉 일부분) 그동안 미당의 시에 숱하게 등장하던 초생달의 이미지는 이 시에 이르러 비로소 환한 보름달로 가득 차올랐다. 미당은 자연스럽게 보름달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 단순함의 힘이다.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이다. 근래 이 시를 읽고 한참 동안 행복했다. 특정한 개념과 틀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이 이런 유쾌한 시를 생산했다. 엉뚱함의 힘이다. 꽃이 소를 웃겼다고, 소의 발바닥을 간질였다고, 연약한 꽃이 육중한 소를 살짝 들어 올렸다고 한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세상에 시인이 아니면 누가 이런 엉뚱한 발언을 하랴.

 

20.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꿔보면, 가장 중요한 진실은 사막의 우물처럼 어디엔가 숨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시학도 이 마음의 눈을 강조한다. 사물의 껍질보다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것이다. 이른바 ‘관물론’(觀物論)이 그것이다. “관물론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볼 것인가? 거기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누구나 보고 있지만 못 보는 사실, 늘 지나치면서도 간과하고 마는 일상 사물에 담긴 의미를 읽어 낯설게 만들기, 나아가 그 낯섦으로 인해 그 사물과 다시금 새롭게 만나기, 이것이 관물론이 시학과 만나는 접점이다. 시인은 격물(格物) 또는 관물의 정신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주변 사물이 끊임없이 발신하고 있는 의미를 늘 깨어 만날 수 있다. 시인은 반란자다. 그의 눈이 포착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롭다. 새로워야 한다.”(정민, <한시미학산책>)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
보물 같은 의미들이 숨어있다

우리의 연암도 그림의 리얼리티가 단순히 사실적 묘사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좋은 그림은 그 물건과 꼭 닮게만 하는 데 있지 않다.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고는 훌륭한 그림이랄 수 없다. 잣나무를 그리려거든 잣나무 형상에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마음속에 푸른 잣나무가 서 있지 않고는, 천 그루 백 그루의 잣나무를 그려 놓더라도 잎 다 져서 헐벗은 나목과 다를 바가 없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워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또 청대의 시인 심덕잠(沈德潛)도 유사한 말을 남겼다. “대나무를 그리는 자는 반드시 완성된 대나무의 모습이 가슴속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 시인은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을 눈으로 발견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 없는 멋진 이미지와 새로운 의미를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시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라. 이미 이 세상에 와 있으나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보물인데도 보물로 보지 못하고,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도 의미를 찾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머리를 굴리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시를 기다리지 마라. 발명하려고 하지 말고 발견하도록 애써라. 살갗을 보지 말고 뼛속을 보라.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졸시 <겨울 강가에서> 전문

이 시의 소재는 겨울 강가에 눈이 내리는 풍경이다. 실제로 어느 겨울 날 나는 강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깔리기 시작하는 섬진강을 갔고, 그 전날 내린 눈이 살얼음을 하얗게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문득 얼음 위에 내린 눈은 왜 녹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물과 눈송이 사이에 어떤 약속이라도 있었던 게 아닐까 궁금했다.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곰곰 생각하다 보니 이런 시 한 편이 태어났다.

시의 중간에 등장하는 “세찬 강물 소리”는 그 무렵 신문에서 읽은 과학상식 기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모든 물소리는 물방울들이 깨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인 거라고 했다. 폭포 소리가 큰 것은 물방울들이 더 많이 깨지기 때문이고, 여울에서는 물방울들이 돌멩이에 걸려 깨지기 때문에 물소리가 난다는 것이다.(나는 초등학생들이 보는 과학이나 생물 관련 책을 자주 뒤적거린다. 거기에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데도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나무가 새로 잎을 피워 내거나 떨어뜨릴 때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 나무를 노끈으로 묶거나 필요 이상으로 밤에 불빛을 쪼이면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등은 얼마나 매력적인 시의 소재들인가.)

삶을 관찰·발견·반성할 수 있게
가슴속 망원경·현미경 갖추길

시인도 과학자의 관찰에 버금가는 관찰의 자세로 사물을 봐야 한다. 아니, 사물의 현상이나 외피에 집중하는 과학자의 관찰을 넘어 시인은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과학은 삶을 앞으로 진보시키지만 시는 삶을 반성하게 만드는 양식이기에 더욱 그렇다.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한 부분에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해 내고 이것을 망각하고 사는 것에 대해 반성을 하고 그 관심이 타인에게로 전해지게 하는 것은 오로지 좀 더 여유롭고 또 세심한 관찰에서 비롯된다.”(김상욱,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

김명수 시인의 짧은 시 한 편을 읽어보자. “바닷가 고요한 백사장 위에// 발자국 흔적 하나 남아 있었네// 파도가 밀려와 그걸 지우네// 발자국 흔적 어디로 갔나?// 바다가 아늑히 품어 주었네”(<발자국> 전문). 바닷가 백사장 위에 찍힌 발자국은 누구나 볼 수 있다. 파도가 밀려와 그 발자국을 지우는 풍경도 바닷가에서는 흔하게 보게 된다. 그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가지는 데서 오롯이 시가 생겨난다. 발자국 흔적의 행방을 찾는 이 의문은 ‘품어주다’라는 동사를 만나 아연 시적 깊이를 획득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백사장 위의 발자국을 오래 바라보며 관찰하는 시인의 눈을 만나게 된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표제작인 다음 시의 제목은 <바다의 눈>이다. 관찰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 시에서 ‘바다의 눈’은 바로 ‘시인의 눈’이다.


바다는 육지의 먼 산을 보지 않네

바다는 산 위의 흰 구름을 보지 않네

바다는 바다는, 바닷가 마을

10여 호 남짓한 포구 마을에

어린아이 등에 업은 젊은 아낙이

가을 햇살 아래 그물 기우고

그 마을 언덕바지 새 무덤 하나

들국화 피어 있는 그 무덤 보네


세상을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 곳을 보려면 망원경이 필요하고, 미세한 것을 보려면 현미경이 필요하다. 거대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1970~80년대에 시인들은 주로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았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시인들은 현미경으로 사물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시적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광장’을 바라보던 시인의 눈이 ‘골방’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광장에 서서 망원경을 들고 군중을 바라보던 ‘그’가 골방의 ‘나’로 회귀한 형세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해 외치던 3인칭의 목소리를 1인칭의 내면 탐구 형식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장의 햇빛을 뒤로 하고 골방의 그늘에 들어앉은 시는 그 이전보다 훨씬 촘촘한 상상력의 밀도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골방은 음습해서 점점 자폐적 공간으로 바뀌어 가기 마련이다. 광장을 떠나온 자아는 아예 광장을 외면하거나 기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 단계 한국시의 자폐적 경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인의 눈과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할 때가 되었다. 시인은 옆에 항상 망원경과 현미경을 함께 준비해 두어야 하고, 광장과 골방 사이에서 그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그 둘 사이에서 긴장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인이란 시를 빚는 사람이면서 자기 자신을 빚는 사람이므로.

 

21. 퇴고를 끊임없이 즐겨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퇴고’라는 말은 당대의 시인 가도(賈島)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가까운 데 이웃이 적어 한가로운데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숲의 길은 황량한 들판으로 들어가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들은 연못가 나무 위에 잠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이 시의 마지막 행 두 번째 글자인 ‘고(敲)’는 ‘두드리다’는 뜻이다. 시인은 애초에 이 글자가 들어간 자리에 ‘민다’는 뜻의 ‘퇴(推)’를 썼다고 한다. 스님이 문을 민다고 해야 할지, 두드린다고 해야 할지 고심을 거듭하던 그는 어느 날 노새를 타고 가면서도 ‘퇴(推)’로 할지, ‘고(敲)’로 할지 골똘하게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길을 지나던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고관 앞에 끌려간 가도는 글자 한 자를 결정하지 못해 실수를 범했노라고 아뢰었다. 그 고관은 당시의 최고 문장가 한퇴지였다.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퇴(推)’보다는 ‘고(敲)’가 낫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때부터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그 이후 글을 수정할 때 퇴고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우연한 시상·표현은 씨앗일뿐
퇴고는 글쓰기의 시작이자 끝

그러면 한퇴지는 왜 ‘퇴(推)’보다 ‘고(敲)’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일까? 이것을 단순히 취향에 의한 단어 선택의 문제로 보면 곤란하다. 새들도 잠든 한가하고 고요한 밤에 스님이 문을 밀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 뒤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도 사건도 등장인물도 필요 없다.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거처이므로 스님은 발 닦고 이불 펴고 잠들면 그만이다. 긴장이 없는 정황은 울림이 없는 시를 만들고 만다.

그러나 스님이 낯선 집의 대문을 두드리게 되면 그 대문까지 걸어온 탁발의 고된 길이 보이고,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새들이 날개를 푸덕이는 소리가 들린다. 또 집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와 스님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 시가 역동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스님을 맞이하는 이가 수염이 덥수룩한 산적 같은 사내면 어떻고 어여쁜 여인이면 또 어떻겠는가?)

1940년에 처음 나온 글쓰기 지침서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모두 제9강으로 짜여 있다. 이 중 다섯 번째를 ‘퇴고의 이론과 실제’라는 주제로 할애하고 있다. 그는 “심중엣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퇴고는 “우연이 아닌, 계획과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태준은 산문 <무서록>에서도 퇴고에 대해 힘주어 말한 적 있다. “아마 조선문단 전체로도 이대로 3년이면 3년을 나는 것보다는 지금의 작품만 가지고라도 3년 동안 퇴고를 해 놓는다면 그냥 나간 3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단이 될 것이다.”

퇴고의 중요성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습작이란 퇴고의 기술을 익히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퇴고가 외면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덧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술이 되어서도 안 된다. 퇴고를 글쓰기의 마지막 마무리 단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퇴고는 글쓰기의 처음이면서 중간이면서 마지막이면서 그 모든 것이다.

시라고 해서 우연에 기댄 착상과 표현을 시의 전부라고 여기면 바보다. 처음에 번갯불처럼 떠오른 생각만이 시적 진실이라고 오해하지 마라. 퇴고가 시적 진실을 훼손하거나 은폐한다고 제발 바보 같은 생각 좀 하지 마라. 처음에 떠오른 ‘시상’ 혹은 ‘영감’이라는 것은 식물로 치면 씨앗에 불과하다. 그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면서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일, 햇볕이 잘 들게 하고 거름을 주는 일, 가지가 쑥쑥 자라게 하고 푸른 잎사귀를 무성하게 매달게 하는 일, 그 다음에 열매를 맺게 하는 일… 그 모두를 퇴고라고 생각하라.

내가 쓴 시에 내가 취하고 감동해서 가까스로 펜을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 때가 있다. 습작기에 자주 경험했던 일이다. 한 편의 시를 멋지게 완성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잠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튿날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쓴 그 시를 다시 읽어보았을 때의 낭패감! 시가 적힌 노트를 찢어버리고 싶고, 혹여 누가 볼세라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날 때의 그 화끈거림! 나 자신의 재주 없음과 무지에 대한 자책!

두려워 말고 밥먹듯이 고치되
뜸들 때까지 서둘지는 말아야

당신도 아마 그런 시간을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습작기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한 편의 시를 퇴고하면서 그 시에 눈멀고 귀먹어 버린 자가 겪게 되는 참담한 기쁨이 바로 그것이다. 퇴고를 하는 과정에 시에 너무 깊숙하게 침윤되어 잠시 넋을 시에게 맡겨버린 결과다(사랑에 빠진 사람을 콩깍지 씌였다고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렇게 시에 감염되어 있는 동안 당신의 눈은 밝아졌고, 실력이 진일보했다고 생각하라. 하룻밤 만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시를 볼 수 있는 눈으로 변화를 한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1922년 7월 <개벽>에 처음 발표되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업시
고히고히 보내들이우리다.

寧邊엔 藥山
그 진달래꽃을
한아름 다다 가실 길에 부리우리다.

가시는길 발거름마다
뿌려노흔 그 꽃을
고히나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흘니우리다

이 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진달래꽃>하고 상당히 다르다. 1925년 12월에 출간한 시집 <진달래꽃>을 준비하면서 소월은 3년 동안 시를 퇴고한 것이다. 시행을 바꿔 전체적으로 리듬을 유려하게 살렸고, ‘고히고히’는 ‘고이’로 줄였으며(‘한아름’은 ‘아름’으로), ‘그’라는 불필요한 관형사를 지웠다. 특히 3연은 대폭 손질한 흔적이 뚜렷하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앞서 등장한 ‘길’과 ‘뿌리다’ ‘고히’라는 말이 3연에 다시 반복되어 있는 것을 보고 언어의 장인인 소월은 못 견뎠을 것이다. ‘마다’라는 조사는 얼마나 가시처럼 그의 눈에 거슬렸을까? 이러한 퇴고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걸음걸음’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한국적 언어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신도 시를 고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밥 먹듯이 고치고, 그렇게 고치는 일을 즐겨라. 다만 서둘지는 마라. 설익은 시를 무작정 고치려고 대들지 말고 가능하면 시가 뜸이 들 때까지 기다려라. 석 달이고 삼 년이고 기다려라.

그리고 시를 어느 정도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시를 보여줘라. 시에 대해서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농부도 좋고 축구선수도 좋다. 그들을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잠재적 독자인 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이규보도 “다른 사람의 시에 드러난 결점을 말해 주는 일은 부모가 자식의 흠을 지적해 주는 일과 같다”고 했다. 누군가 결점을 말해 주면 다 들어라. 그러고 나서 또 고쳐라.

“글은 다듬을수록 빛이 난다. 절망하여 글을 쓴 뒤, 희망을 가지고 고친다”고 한 이는 소설가 한승원이다. 니체는 “피로써 쓴 글”을 좋아한다고 했고,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시를 고치는 일은 옷감에 바느질을 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고치되, 그 바느질 자국이 도드라지지 않게 하라. 꿰맨 자국이 보이지 않는 천의무봉의 시는 퇴고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22.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6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었다. 간밤의 숙취로부터 채 헤어나지 못해 머리는 지끈거렸고, 뱃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 날은 모처럼 별다른 약속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놀 수는 없었다. <한겨레>에 이 연재를 막 시작할 무렵이었으니까. 시어머니처럼 엄한 원고 마감 시간을 맞추어야 했다. 나는 매주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휴일에 쉬는 일은 접어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샤워를 하고 나서 맑은 공기로 머릿속을 좀 헹군 뒤에 학교로 향할 참이었다. 술을 좋아하지만 나는 숙취에서 완전하게 풀려나지 않으면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다.

문득 학교로 가는 것보다 작업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북쪽으로 가야 학교가 있고, 작업실이라 이르는 전주 근교의 누옥은 남쪽으로 가야 한다. 그 작업실에서 글 쓰는 작업을 하기는커녕 몇 주째 둘러보지도 못했다. 마당에 돋아나 있을 풀들과 툇마루에 쌓여 있을 먼지들을 어떻게 하나? 풀을 뽑고 청소라도 하고 방이 숨을 쉬도록 환기라도 해줘야 할 텐데. 거길 가면 새소리로 내 어지러운 머릿속을 씻어낼 수도 있을 텐데. 돌담 밑에 고추를 몇 주 심고 그 옆에 얼갈이배추 씨를 뿌려놓은 게 생각났다. 그것은 농사도 경작도 아니었다. 해마다 버릇처럼 하는 일이었다. 어설프게 흙을 덮어놓은 얼갈이배추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을 본 게 3주 전쯤이었다. 배추는 이제 잎사귀를 한 뼘 정도는 더 내밀었을 것이었다. 아마 애벌레들이 꼬물거리며 연한 배춧잎에다 마음껏 길을 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동네 노인들이 이를 보면 또 혀를 차시겠다.

〈머릿속 스쳐가는 ‘시상’ 잡아채, 서너 줄이든 한두 단어든 ‘메모'〉

“쯧쯧, 약을 좀 해야지.”
손바닥만 한 땅에 약이고 자시고 할 것 없었다. 두어 번 풋것을 뜯어먹을 수 있으면 좋았고, 나중에 꽃대가 올라와서 꽃밭 삼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여겼다. 자주 들르게 되면 나무젓가락으로 애벌레들을 잡아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 별안간 시 몇 줄이 머릿속으로 날아오셨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나는 책상 앞이 아니라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었다.) 큰소리로 아내를 불러 종이와 펜을 갖다 달라고 했다. 한 편의 시가 어떻게 와서 어떤 과정을 거쳐 시가 되는지 <한겨레> 독자들께 낱낱이 보고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떠오른 생각의 씨앗이 무엇이었는지, 메모는 어떤 형태로 남았는지 내 스스로 시작 과정을 한번 기록하고 싶었다. 그 날 아침에 쪽지 위에 적은 메모는 이런 것들이다.

“투기, 재테크/ 한 평 남짓 배추씨를 뿌렸다/ 한 평 남짓… 나비를 키웠다/ 배추밭 둘레 허공을 다 차지했다/ (나비의 생태-얼마나 날까?)/ 앉아라, 물러서라”

배춧잎을 갉아먹고 사는 애벌레를 잡지 않는다면 그 애벌레들은 틀림없이 나비가 될 것이었다. 나는 한 평 남짓한 땅에 배추를 키우지만, 애벌레는 배춧잎의 넓이만큼만 몸을 움직이며 먹이를 구하지만, 나중에 나비가 되면 애벌레는 배추밭 둘레 허공을 다 차지하고 날아다닐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배추를 한 평 키우는 게 아니라 나비를 한 평 키우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갈 수 있는 허공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나중에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키운 나비가 날아갈 그 허공은 모두 나의 것이기도 했다. 이런 욕심이나 호기는 얼마든지 부려도 좋지 않겠는가. 나비를 키움으로써 나는 경계도 말뚝도 박아 놓지 않은 그 허공을 차지할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내 소유의 허공! 변기에 앉아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제목을 ‘투기’로 할 것인지, ‘재테크’로 할 것인지는 차차 결정하기로 했다.

나는 시시때때로 메모한 것을 반드시 컴퓨터 속에 있는 ‘신작시’라는 파일에다 옮겨둔다. 그 파일을 열어보면 메모의 길이는 대체로 서너 줄. 단어 한두 개로 된 것도 있다. 어제 아침에 옮겨둔 것도 있고, 조금 전에 떠오른 것을 적어둔 것도 있다. 7∼8년 전에 메모했으나 아직 시로 날개를 달지 못한 것들도 수두룩하다. 수백 개의 그 메모가 옆에 없다면 나는 시인이 아니다. 그 몇 줄의 메모 때문에 여전히 시인이라고 어디 낯을 내며 나다닐 수도 있다. 그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알 같은 것이다.

〈곰삭아 익을 때까지 기다려라〉
〈‘줄탁동시’ 진통 … 가차없는 퇴고〉

시를 쓰게 되는 날(혹은 어쩔 수 없이 마감에 쫓겨 시를 써야 하는 날), 나는 우선 파일을 열어 메모를 일별한다. 아직 잠에서 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메모가 있는가 하면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메모도 있다. 컴퓨터 속 메모와 나와의 관계는 ‘줄탁동시’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시의 꼴을 갖추기 시작한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 한다. 그런데 이 ‘줄탁’은 어느 한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병아리가 온전히 하나의 생명체로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만약에 껍질 안의 병아리가 힘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껍질 바깥 어미 닭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아리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 비유를, 불가에서는 참다운 사제지간의 관계를 말할 때 곧잘 인용하곤 한다.)

6월 어느 일요일 변기 위에서 한 메모는 두어 달 컴퓨터가 품고 있었다. 박제천은 “작품을 써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달려들어 퇴고를 하는 일은 어리석다.(…) 작품을 써내고 난 뒤에는 일단 눈앞에서 치우는 일이 중요하다”(<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문학아카데미)고 했다. 즉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메모는 비교적 일찍 알을 깨고 나온 편에 속한다. 아래는 완성된 시이다.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두었다
한 평 남짓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한 편의 시를 고치는 동안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쩨쩨하고 치사한 사내가 된다. 창피할 정도로 별의별 짓을 다 한다. <나비도감>을 들추고, 포털사이트에서 얼갈이배추에 대해 알아본다. 행을 한 번 바꾸는 데 열 번 정도는 이리저리 붙였다가 뗐다가 해본다. 중간 부분 이후에 ‘─것’이라는 어조는 스무 번 정도 썼다가 지웠다가 가까스로 택한 것이다. 왠지 자신감 있는 어조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제목은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투기>보다는 <재테크>가 시의적절해 보였다. 재테크에 목숨을 거는 이들에게 나의 재테크 방법을 자랑하고 싶은 심사도 작용했을 것이다. 수십 차례 고친 뒤에 옆방에 계신 정양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은 중간 행 하나를 지우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있으나마나 한 행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어디 숨고 싶었다. 두 말 없이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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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탁동시 啐啄同時.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쪼는 것을 탁이라 하는데 이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부화가 가능하다는 비유에서 나온 고사성어. [벽암록]

 

23.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좋은 시란 어떤 시를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좋은 시란 이것이다, 라고 정의하는 순간, 모든 시는 그 낡은 기준에 갇혀버리는 나쁜 운명을 맞게 된다. 시가 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양식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좋은 시란 이것이다, 라고 감히 정리해본다면 어렴풋하게나마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시. 둘째, 새로운 인식을 도출하는 시. 셋째,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 여기에다 시인의 시작 태도가 공자의 말씀대로 ‘사무사’(思無邪) 바로 그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감동은 일차적으로 시인과 독자와의 교감, 즉 소통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시가 다 울림을 갖는 것은 아니다. 허망한 소통보다는 고독한 단절이 오히려 서로를 행복하게 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시를 보는 미학적 관점과 언어에 대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일치할 때 시적 감동은 증폭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언어란 시인과 독자 사이에 놓인 가교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훼방꾼이기도 하다. 저 유서 깊은 ‘낯설게 하기’는 그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자 할 때 여전히 유효한 시적 방법이다. 독자를 편하게도 하고 불편하게도 하는 시, 이것인가 싶으면 저것인 시, 바른가 싶으면 이미 비뚤어져 있는 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면 당신은 표현의 리얼리티 속에서 감동의 요소를 찾으려고 끙끙대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일차적으로 당신은 가장 물기 많은 말, 가장 적합한 어휘를 행간에 배치하기 위해 헤매야 한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언어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만날 때까지 찾고, 지우고, 넣고, 비틀고, 쥐어짜고, 흔들기를 마다하지 마라. 적어도 당신 하나쯤은 감동시킬 때까지 언어하고 치고 받고 싸워라. 완벽한 세계관과 정돈된 문학적 관점이 훌륭한 시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하나씩 껍데기를 벗고 성장하는 존재이다.

〈텍스트를 시가 되게 하는 건 그 안에 있는 어떤 ‘시적인 것’〉

황지우는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찾아 쓰겠다고 말한 적 있다. “어떤 텍스트를 얻은 문장을 시가 되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어떤 시적인 것”(<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한마당) 때문이라고. 이 말은 이미 ‘시’로 규정된 모든 규격화된 정의에 대한 부정을 통해 자신과 시를 갱신해 나가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러므로 ‘시적인 것’은 딱히 정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시인에게 모험과 도전을 요구하는 지침으로 이해해야 한다. ‘시적인 것’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손에 잡는 순간 또 달아나버리는 유기체와도 같은 것이다. 이것을 일찍이 간파한 고은 시인은 “시는 심장의 뉴스다”라고 멋들어진 화두를 토하기도 했다.

중국 송대의 시인 강기는 그의 시론집 <백석도인서설>에서 시에는 네 종류의 높은 경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이치가 높은 경지요, 둘째는 뜻이 높은 경지요, 셋째는 상상력이 높은 경지요, 넷째는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다. ‘시적인 것’을 탐구하는 우리에게 꽤 유익한 사색을 제공해주는 시론이다.
그는 먼저 “막혀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통하는 것을 이치가 높은 경지”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이치란 인간의 도리와 자연의 섭리를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다. 정경융합(情景融合)을 중요한 시의 가치로 여긴 동아시아의 시학과 동일성의 미학을 강조한 서양의 시학이 모두 이런 경지를 향한 시적 모색이라 할 수 있겠다.

천둥번개 지나간 곡우날 아침,
때아닌 우박과 꽃잎 사이

들숨과 날숨
부딪쳐 살아 오르며
낯선 우박이 자기를 녹여 꽃잎을 깨우네
낯선 꽃잎이 자기를 찢어 우박을 맞네

잘못 든 길을 알아차리고도
설레설레 봄꽃은 번지네

이안의 <숨길 1>이다. 우박은 꽃잎을 찢는 공격적 주체가 아니고, 꽃잎은 우박에 찢어지는 소극적 객체도 아니다. 엄연한 자연의 질서 앞에 주체와 객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박은 꽃잎을 깨우고 꽃잎은 우박을 맞이할 뿐이다. 낯선 우박과 꽃잎 사이의 작지만 소중한 소통의 숨길이 우주 전체의 봄을 불러온다는 이치를 말하고 있는 시다. 이때 이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속으로도 분명 “설레설레” 봄의 기운이 스며들 것이다.

〈내 자신의 언어 만날 때까지 찾고 넣고 비틀고 흔들어라〉

두 번째로는 “표현해낸 것이 표면적인 의미를 초월하게 되는 것을 뜻이 높은 경지”라고 했다. 문태준의 짧은 시 한 편(<황새의 멈추어진 발걸음>)을 보자.

무논에 써레가 지나간 다음 흙물이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
그는 한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을 본다
한 획 필체로 우레와 침묵 사이에 그는 있다

표면적으로는 써레질이 끝난 뒤 흙물이 가라앉는 모습이 시의 소재가 되고 있다. 흙물이 그저 가라앉는 게 아니라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이라고 말하는 것도 범상하지 않지만, 그것을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으로 확장하는 상상력은 놀랍다. 그리하여 “우레와 침묵 사이에” 있는 존재의 고독과 무상함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황새는 단순한 조류가 아니라 드높은 정신주의의 한 표상으로 읽힌다.(‘써레’와 ‘우레’라는 유사한 음성기호가 동일한 의미로 나란히 서 있는 언어유희도 볼만하다.)

세 번째로 “깊어 분명하지 않은 것을, 마치 연못이 맑아 밑바닥이 다 보이듯이 훤하고 분명하게 써내는 것을 상상력이 높은 경지”라고 했다. 나희덕의 시 <누에>를 보자. 두 딸과 꼽추인 어미 사이에 이어진 보이지 않는 실을 이토록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부조한 것은 시인의 상상력이다. 그 실은 급기야 모녀를 바라보는 화자에게까지 연결되고,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다.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꼽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 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이 시인이다. 다음은 김종삼의 <장편(掌篇)·2>인데, 이 시에서도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된 실을 본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일제 때 10전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밥 한 상에 10전이라니 그리 많지는 않은 액수였을 것이다. 분명 구걸로 얻게 되었을 10전짜리 두 개를 부모의 생일 밥값으로 당당하게, 그러나 가련하게 내미는 어린 소녀의 손목이 보일 듯하다. 그 눈망울도 보일 듯하다. 이렇게 서럽도록 아름다운 시를 읽다가 보면 사랑이니 효도니 인정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낡고 뻔뻔한 소리인지 깨닫게 된다. “특이하지도 않고 기이하지도 않으면서 문채를 벗어 떨치고, 그것이 오묘하다는 것만을 느낄 뿐 그 오묘하게 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묻자. 시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시적이라는 말을 배반하는 방식을 통해 시적이라는 말을 진화시킬 수는 없을까”(이원, <시와 세계> 2007년 가을호)를 고민하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24. 상상력 발전소를 가동하라

모든 사랑은 상상으로 시작되어 상상으로 막을 내린다. 특히 이성을 만나기 전이나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상상력의 펌프질은 두뇌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된다. 두 사람의 상상력이 접합 지점을 찾았을 때 우리는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 둘 사이에는 상상력이 엇갈려 삐걱거릴 때도 있다. 바야흐로 의심이 싹트면서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에 금이 가는 시점이 도래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신은 끈질기게 훼방을 놓고 연인들은 심각하게 결별을 고려한다.

처음에 상상력은 채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재 속에 숨어 있는 불씨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 생각의 크기와 밝기도 미약하기 그지없다. “상상력은 대상과 밀착되고 있는 상태를 말해준다. 분석적 관찰의 결과가 아닌 종합적 직관의 결과다”(이형기)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시적 상상력은 직관 중에서도 감각적 직관의 도움을 받는다. 이문재는 감각을 일컬어 “몸과 마음의 경계”이면서 “자아와 타자 사이에 있는 가교”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시에서 감각이 중요한 이유는 시가 “단순한 보기(見)가 아니라 꿰뚫어보기(觀)”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애초부터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인 것은 아니다. 시인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상상력을 풀무질하는 자이다. 시인이 불씨를 살려 강철을 구부리고 녹여 만들어낸 연장을 우리는 시라고 부른다.

〈상상력은 재 속에 숨은 불씨
꺼지지 않도록 풀무질하라〉

만약에 그렇게 해서 시인이 하나의 낫을 만들었다고 하자. 우리는 풀과 곡식을 베는 농기구로서 낫의 실용적 가치를 살피기 위해 그 연장을 요모조모 뜯어볼 것이다. 쇠의 강도와 둥그런 날의 각도는 적당한지, 날은 잘 벼려졌는지, 낫자루를 끼우기에 적합한지를 따져볼 것이다. 시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낫은 실제로 삶을 구체화하고 객관화하는 데 기여한다. 시적 상상력이 허무맹랑한 공상과 구별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의 낫이 농기구가 아니라 인명을 해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할지 모른다. 시인의 상상력이 또 다른 상상력을 촉발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시인이 만들어낸 낫의 외형을 보면서 그것의 미학적 가치를 따지기도 할 것이다.
질베르 뒤랑은 “상상된 공간은 매순간 자유롭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존재의 지평과 희망을 영원 속에서 재건립한다. 상상계는 우리의 의식이 궁극적으로 의지하는 존재이며, 영혼이 살아 있는 심장이다. (…) 상상력의 기능은 죽어 있는 객관성에 유용성이라는 동화(同化)적 흥미를 부가하고 유용성에 기분 좋은 것에 대한 만족감을 부가한다”(<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상상력이란 “세상과 사물을 맺어주는 비밀스러운 끈”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문인수의 <쉬>는 ‘뜨신 끈’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은 어느 날 정진규 시인한테서 아버지를 안고 오줌 뉜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시의 불씨였다. 불씨를 붙잡고 상상력의 풀무질을 계속한 끝에 부자간의 인연을 오줌발의 ‘뜨신 끈’이라는 경이로운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낸 것이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시에서 상상력은 비유를 동반할 때가 많다. 바슐라르가 <촛불의 미학>에서 “불꽃은 우리에게 상상할 것을 강요한다”고 말할 때 당신도 무작정 상상을 강요당하고 싶은 적이 있는가? 그가 “불꽃은 젖어 있는 불이다”라거나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시계다”라고 했을 때 당신은 그 매혹적인 은유 앞에서 금세 시인이 된 듯 착각에 빠진 적이 있는가? 그리고 또 그가 “불꽃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아편을 먹는다. 그리고 불꽃은 아무 말 없이 죽는다. 그것은 잠들면서 죽는다”라고 강렬하게 외칠 때, 시의 불꽃에 타서 죽고 싶은 적이 있는가?
상상력은 무엇보다 창의성과 긴밀하게 동거한다. 현대창의성연구소장 임선하 박사의 <창의성에의 초대>를 읽다가 아동의 창의성 교육에 관한 이론이 일상에서 ‘시적인 사고’와 ‘시적인 상상력’을 추출하려는 우리의 관심과 거의 유사한 접근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즉 창의적 사고와 시적 사고는 별개가 아니며 한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창의적 사고의 기능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민감성이다. 주변 환경에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능력을 이른다. 자명한 듯한 현상에서도 문제를 찾아보고, 나와 친숙하지 않은 이상한 것을 친밀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둘째, 유창성이다. 특정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초기의 아이디어가 최선의 아이디어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한층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것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들로부터 많은 것을 연상하기, 문제 상황에서 가능한 해결 방안을 있는 대로 많이 찾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융통성이다. 고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시각 자체를 변환시켜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상투적이고 고정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전혀 관계없는 사물들의 유사점을 찾아본다든지, 사물의 구체적인 속성에 주목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넷째, 독창성이다. 기존의 것에서 탈피하여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나만의 것을 찾고, 기존의 생각이나 가치를 부정하는 사고를 말한다.

〈혹여 불 꺼지면 어둠 속 있으라
눈 닫힌 대신 코와 귀 열릴지니〉

다섯째, 정교성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기존의 아이디어를 한층 치밀한 것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이다. 헝클어지고 조잡한 생각을 다듬고 그것의 실제적인 가치를 고려해서 발전시키는 활동이다.
이와 함께 이 책에서는 창의적 사고의 성향을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자발성, 독자성, 집착성, 호기심이 그것이다. 이런 용어는 “상상력, 독창성, 확산적 사고, 창조성, 발명, 직관, 모험적 사고, 창출, 탐구, 창안”과 더불어 시를 읽고 쓰며 상상력을 공부하는 우리의 잠든 의식을 적절하게 자극한다.

시인들이 때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기인으로 비치기도 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덜떨어진, 철없는 낭만주의자로 인식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이 인생의 모범생이 되지 못하고 일탈을 꿈꾸거나 혁명을 갈구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를 쓰는 일은 마음속에 상상력 발전소를 차려 가동하는 일이다. 그 발전소에서 당신은 먼저 머리에 입력된 모든 개념적 언어를 해체하라. 정진규의 말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버리고 ‘어머니의 고봉밥’을 상상하라. 개념어는 삶을 일반화해서 딱딱하게 만들지만 구체어는 삶을 말랑말랑하고 생기 있게 만든다.

때로 상상력 발전소가 이유 없이 정전이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거나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글렀어, 하고 체념하거나 포기해서도 안 된다. 어둠 속에서는 어둠을 오래 바라보라. 시각이 닫히면 청각이나 후각이 열릴지도 모른다.
당신은 상상력을 위해 자신에게 맞는 필기구를 준비해두고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갈 필요가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의 절반쯤을 과감하게 버릴 필요도 있다. 상상력을 위해서 며칠 동안 세수를 하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은들 어떠리. 시는 놀이가 아니라 상상력의 게임이니까. 상상력으로 승부를 걸고 싶은 당신은 체 게바라의 말을 상상력 발전소의 연료로 써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25. 몇몇 시인들이 들려주는 시작법



“시인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중국의 현대시인 아이칭의 <시론>에 나오는 제일 첫 문장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언어를 다는 저울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므로 시인은 양심을 속이거나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표연히 흩어지거나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일체의 것을 고정시켜 선명하게, 마치 종이 위에 도장을 찍듯이 또렷하게 독자의 면전에 드러나게” 하는 시의 기교를 함께 강조한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중시하는 이러한 견해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중국 시론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경융합론’을 펼친 왕부지의 시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情)과 경(景)은 이름은 둘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분리될 수 없다. 시를 묘하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양자를 자연스럽게 결합시킬 수 있어 가장자리를 남기지 않는다. 정교한 시는 정 가운데 경을 나타내고, 경 가운데 정을 나타낼 수 있다.” (류워이 지음, 이장우 옮김, <중국의 문학이론>)고 했다.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도 문장이란 “굳세면서도 막힘이 없고, 시원스럽게 통하면서도 넘치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뼈가 드러나지 않고, 상세하면서도 살찌지 않아야 한다”(<청장관전서>)는 말로 조화와 통합의 문장론을 내세웠다. 이는 에리히 프롬이 시적인 언어를 “내적인 경험, 감정 및 사고들이 마치 외적 세계에서의 감각적 체험과 사건들인 것처럼 표현된 언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마음/말, 진실/기교, 내용/형식, 정/경, 강함/부드러움, 내적 경험/외적 표현 등 모든 이항대립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조화와 결합을 이룰 때 좋은 시가 태어나는 법이다. 심지어 시인의 재능/노력도 서로를 격려하고 고무하는 유동적인 것이지 어느 한 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한 편의 시는 이처럼 시인들의 고뇌의 집적이며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일상속 느낌 그냥 흘리지 말고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그렇다면 시인들은 시를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를 쓰라고 말하고 있을까? 시작법에 관한 현역 시인들의 조언을 몇 가지 경청해 보자.
강은교 시인은 첫째, 장식 없는 시를 쓰라고 한다.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으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한다.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시적 경험이라는 것은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쓸 때 발현된다는 것. 셋째,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며 시작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넷째,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으므로 늘 세상을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다섯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 정신의 무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에서 예술의 힘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익히라고 제안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 것, 무엇보다 많이 쓰고 또 그만큼 많이 지우라고 한다.(시인이 <사랑법>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고 노래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끝으로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한다고 매우 이색적인 의견을 제출한다. 즉 시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 강은교 시인다운 비결이라 하겠다.

최영철 시인은 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느낌’이므로 이런 느낌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는 게 시창작의 첫 단계라고 한다. 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면 속으로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번 중얼거려 보라고, 그 다음 단계는, 바람이 어떻게 시원한지를 느껴 보라고 한다. ‘막혔던 가슴속 응어리를 뚫어 주듯이 시원하다’ ‘바람에 실려 그리운 사람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 모두에게 어떤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그것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글을 남과 다르게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라고 권한다. 그 또한 자신감을 강조한다. 글감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주변에서부터 찾을 것이며, 자신의 부끄럽고 추한 부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미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숨김없이 보여주어야 독자는 흥미와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잡념이 많은 것도 괜찮은 일이며, 연속극이나 신문기사 한 줄에도 쉽게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오히려 시를 쓸 자격이 있다고 등을 두드린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무엇보다 앞세운다. 늘 보게 되는 밤하늘의 달과 별도 시인의 눈에 붙잡히면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하늘로 가 별 닦는 일에 종사하라고
달에게 희고 동그란 헝겊을 주셨다
낮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밤에 보면 헝겊 귀퉁이가
까맣게 물들어 있다
어두운 때 넓어질수록
별은 더욱 빛나고
다 새까매진 달 가까이로
이번에는 별이 나서서
가장자리부터 닦아주고 있다.

―최영철, <밤에> 전문


장옥관 시인은 시적 발상을 획득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일상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느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붙잡아야 감수성 훈련이 된다. 둘째, 사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셋째, 어린아이의 눈처럼 사물과 현상을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상상력이 커진다. 나의 관점을 버리고 대상의 눈으로 나를 보라는 것. 넷째, 자신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섯째, 가까운 곳에서 시를 찾는 눈이다.


〈'어떡하면 다르게 쓸 수 있을까’
자신의 숨기고픈 얘기서 출발〉


실제로 장옥관 시인이 시로 형상화하는 소재는 대단히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벚꽃 아래로 지나가는 개, 자신이 누는 오줌, 포도를 껍질째 먹는 일, 아스팔트에서 본 죽은 새, 옛 애인에게서 걸려온 보험 들어 달라는 전화……. 그러나 이것들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면 경이로운 존재의 실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빛을 뿜는다. 시인은 길을 걷다가 장애인을 인도하는 노란 안내선을 보며 놀랍게도 밑창으로 하나하나 핥으며 걷는 길의 등뼈를 발견한다. 신발의 밑바닥이 길을 핥는다는 통찰을 통해 시적 발상이 어떻게 발화하는지 보여주는 시다.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만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디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장옥관, <걷는다는 것> 전문

 

26. 시를 완성했거든 시로부터 떠나라

 



고등학교 시절, 여학교 시화전에 가기 전에 문예반 선배들은 우리를 세워놓고 이렇게 명령했다.
“반드시 여학생 하나를 울리고 와야 한다.”
선배들의 사주를 받은 우리는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럴싸하게 악동의 표정을 연기했다. 시에 대해 질문이 있다는 핑계로 한 여학생을 불러놓고,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그 여학생의 시를 집요하게 칼질했다. 여학생은 도마 위에 올려진 한 마리 가여운 생선이었다. 악동들의 파상적인 질문 공세에 파들파들 떨다가, 주춤거리며 대답하다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학생이 운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울음을 끄집어냈던 것이다. 시화전시장을 상갓집으로 만들어 놓은 뒤에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그때 우리들이 파놓은 질문의 수렁에 빠져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교복들이여, 부디 용서하시라.).


<시인은 언어의 대변자일 뿐
시는 독자에 의해 창조되는 것>


차라리 그 여학생,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더라면 악동들의 공세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친절한 여학생은 자신의 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설을 하면서 우리들의 마수에 걸려들었던 것. 이 시를 쓴 계기가 무엇이라거나, 무엇을 집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거나, 시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그 여학생은 순진하게 진술했을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시에 대한 겸손하고 친절한 답변을 통해 그 시의 감동을 높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시의 감동이 아니라 시의 몰락을 불러오는 변명이고 화근임을 여학생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 속에 다 있어요.”
그냥 이렇게 한마디 내뱉고 쌀쌀하게 돌아섰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뻘쭘해진 우리 악동들이 오히려 두손들고 줄행랑쳤을 것을!

일찍이 스테판 말라르메는 시인이 언어를 소유해서 부리는 게 아니라 시인 자체를 언어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시인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인은 언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는 자일 뿐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에서 텍스트에서 저자의 권위를 빼앗고 독자의 탄생을 선언한 바 있다. 그렇게 보면 시인이 시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완전한 시는 독자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시를 창작하는 사람은 시인의 개인적인 삶과 시를 별개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삶은 엉망진창으로 살되 건강한 시를 쓰라는 말이 아니다. 시라는 텍스트의 자율성을 존중해야지 창작자의 사사로운 체험이나 느낌을 가지고 시를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 편의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이 쓴 것이지만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시를 완성했거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 시를 잊어버려라. 당신은 그 시로부터 미련 없이 떠나라.


바닥난 통파
움속의 降雪(강설)
꼭두새벽부터
降雪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
휘젓고 있을
귀뿌리 가린
후살이의
木手巾(목수건)


박용래(1925∼1980)의 <시락죽>이다. 시인은 갔어도 우리는 오늘도 이 시의 언어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본다. 시를 읽을 때마다 행과 행 사이의 건너뜀이 왜 이런 보폭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降雪’은 왜 ‘강설’로 바꿔 쓰면 안 되는지, ‘후살이’는 왜 세간의 ‘세컨드’와 다른 의미인지 생각하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빗자루로 간밤에 내린 눈을 쓰는 마음을 생각하고, 목수건에 오른 때를 생각하고, 지금은 옆에 없는 이 여인의 남자를 생각한다.
시가 다다라야 할 언어의 절제력과 고밀도의 기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우리는 박용래 시인에게 물어볼 수 없다. 아니, 설령 시인이 살아 있다 해도 물어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되리라.(만약에 어떠한 연유로 쓴 시인지를 우리가 묻는다면 시인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아이처럼 칭얼대시겠지.)


<시의 결점 지적하면 달게 듣고
오독해도 가르치려 들지 말라>


어리벙벙한 시인은 대체로 자신의 언어가 투명하다고 착각한다. 시인이 명징하게 말을 한다고 해서 독자에게 언어가 다 명징하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말을 하기 때문이다. 말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 침묵, 혹은 말과 말 사이의 침묵도 모두 결국은 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막스 피카르트는 “형상은 침묵하고, 침묵하면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고 <침묵의 세계>에서 쓰고 있다. 그에 의하면 형상, 즉 이미지는 “말하는 침묵”이다. 시가 언어를 통한 표현 수단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는 매우 도발적인 지적이다. “시인의 말은 그것이 태어났던 침묵과 자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 안에 깃든 정신을 통해서 스스로 침묵을 생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시인이여, 누군가 당신 시의 결점을 지적하면 겸손하게 귀를 열고 가만히 들을 일이다. 얼토당토 않은 비판이라도, 돼먹지 못한 소리라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 해도 달게 들어야 한다. 독자가 당신의 시를 오독한다고 독자를 가르치려고 대들지 말 것이며, 제발 어느 날짜에 쓴 시라고 시의 끝에다 적어두지 마라. 당신에게는 그 시를 완성한 날이 대단한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독자는 그 따위를 알려고 당신의 시를 읽지 않는다. 당신이 완성했다는 그 시는 당신의 마음 속에서 완성된 것일 뿐, 독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언제든지 변화하고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우고 보더라도 분명히 당신의 시임을 알게 하는 게 최선임을 잊지 말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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