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없는 초라한 슈퍼. 누런 장판을 얹은 네모난 평상. 미용실 귀퉁이 멈춰버린 삼색 기둥. 그 위에 내려앉은 뽀얀 먼지. 그것들은 부서지는 햇살을 곧이 맞는 비탈 길목에서 조용히 낯선 이의 발복을 묶어두곤 한다. 서울 도심 곳곳 눈에 익지 않은 길. 갈 곳 잃은 빈촌은 늘 그렇게 숨죽인 채 존재한다. 새로운 호기심에 이끌려 무작정 찾아온 이곳에서 나 역시 발이 묶여 있다. 낯선 곳에서 묻어나는 익숙한 외로움.
구불구불 엇갈린 골목들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당황스럽다. 돌아가기엔 이미 멀리 와버렸지만 둘러봐도 끝은 드러날 생각을 않는다. 그때 찬바람을 뚫고 콧속 깊숙이 흘러든 익숙한 냄새. 매콤하면서도 고깃국 특유의 진하고 구수한 냄새는 나의 걸음을 재촉한다. 음식점 앞에 붙어있는 소박한 글씨, '육개장'정겹지만 어딘가 낯선 이름. 지친 몸을 녹이기 위해 일단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육개장을 먹는단 생각만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입맛은 사라지고 배고픔은 공허함으로 변해버리는, 애초에 생각을 않는 것이 마음 편한, 내게 육개장은 그런 음식이다. 이렇게 혼자 음식점에 와서 시켜 먹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잠시 망설이다 한 숟가락 떠 맛을 본다. 첫 맛에서 느껴지는 강한 매콤함에 어느새 내 눈가마저 붉게 달아오른다.
소식을 들은 건 학생들로 가득한 등굣길 버스 안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십 분만 빨리 출발해도 여유롭게 앉아 갈 수 있었다고 후회하며 허둥지둥 만원 버스에 올랐다. 수업 십여 분 전. 길이 밀리면 이십 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 망설일 여유 없이 이리 밀고 저리 밀리는 만원 버스에 몸을 맡겼다. 그때 울린 전화벨 소리. 그렇지 않아도 다들 예민해진 상태인데 정적을 깨는 벨 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평소 통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나지만 따가운 그들의 눈초리에 전화를 받고야 말았다.
통화를 끝내고는 주저앉지 않으려 손잡이를 참 열심히 붙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숙인 채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류장에 한참을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왔던 길을 되돌아 장례식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뵌 적이 없으니 2년 만의 상봉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안부 전화는커녕 소식조차 듣지 못했는데, 이렇게 영정사진과 마주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들을 앞세운 엄마의 얼굴이란 이런 것일까. 새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은 내가 알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그녀에게만 1년의 시간이 10년의 세월만큼이나 더디게 흐른 것 같았다. 아버지를 잃은 나, 자식을 잃은 그녀. 안고 있는 슬픔은 같을지라도 견딜 수 있는 힘까지 같지는 않았으리라.
그녀는 7남매 중 막내인 우리 아버지에게 유독 각별했다. 어릴 적엔 절, 커서는 서울 딸의 집에 맡겨가며 키웠다고 들었다. 때문인지 더욱 눈에 밟히고 아픈 손가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들의 죽음이 그녀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그렇게 예뻐하던 손녀에게 등을 돌려야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일이었을까.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외면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누군가 망각에 기대어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했다. 나 역시 잊는 것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기에 꽤나 쉽게 그녀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그녀와의 재회가 이토록 허무하리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녀는 내게 마지막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은 것일까.
새하얀 머리를 곱게도 빗어 넘기고 웃고 있는 그녀의 영정사진 앞에서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때를 알고 준비라도 한 것 같은 그 사진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묵묵히 문상객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꽤 많은 음식을 나르고 치우기를 반복한 후에야 배가 고픔을 느꼈다. 그리고 내 앞에 가져다 놓은 육개장 한 그릇. 아버지의 생신에 먹어야만 하는 육개장은 왜 그리 목이 메고 가슴이 아렸을까. 속이 울렁이고 헛구역질이 나는 것 같아 그대로 숟가락을 놓아야만 했다. 그녀는 분명 알고 있었으리라. 그날이 앞세운 자식의 생일이라는 것쯤은.
오랜만이어서일까.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에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도 아랑곳 않고 깨끗하게 한 그릇을 비워냈다. 약간의 매스꺼움과 거북함이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아마 쉽게 소화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면서도 개운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육개장을 소화한다는 건 그녀를 소화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이제껏 진심으로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해 본 적이 없단 걸 알고 있다. 육개장을 먹으려 하지 않던 것처럼.
음식점을 나와 다시 주위를 바라본다. 마치 바리케이드를 쳐 놓은 듯 도시와 완강히 단절된 풍경. 그 모습에 잠시 나를 비춰본다. 나의 가슴속에도 늘 단절된 경계가 존재해왔다.
나는 이제 이곳을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있는 힘껏 육개장을 소화해낼 생각이다. 그러고 나서 그 완강한 경계를 허물 것이다.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그녀를 진정으로 그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