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의 뼈 / 심선경

 

 

읽다 만 책을 보려고 펼쳐 드는데 눈이 몹시 침침하다. 안경을 빼고 두 손바닥을 비벼 열이 나게 한 다음, 눈 주위에 대고 한참을 그대로 둔다. 빛이 차단되자 두 눈동자는 갑작스런 어둠이 당황스러운 듯 움직임을 멈춘다. 손바닥에 배어든 어둠은 눈을 뜨고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을 보여준다. 칠흑 같은 밤하늘이 펼쳐지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별들이 하나씩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별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하나씩 내 눈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짧게 반짝 빛나더니 이내 지워지고 또 다른 별들이 반짝 빛나다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어두워진다. 손으로 눈을 가리기 전, 창밖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의 자잘한 웃음소리와 누군가를 부르던 큰 소리가 지금은 아득하니 멀어진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마음을 한군데 집중하면 시끄러운 시장바닥도 산중의 절간으로 옮겨간다.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명상수련원에 온 것 같다.

 

단학수련을 그만둔 지도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수련 때 처음 배웠던 자세나 동작들은 아직 내 몸이 기억한다. 지금의 시력회복운동도 그때 배워서 아직까지 써먹는다. 수련원에서 운동을 할때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뼈와 근육 어느 곳 하나 손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토닥이고 주무르고 문지르는 모든 동작들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어 남부럽지 않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매일 식전식후 구분하여 알약을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어도 사흘이 멀다 않고 병원문을 두드린다. 단학수련비의 몇십 배가 넘는 돈을 병원에 갖다 바치면서도 개운찮은 몸과 찌뿌둥한 마음이 엮인 무거운 꼬리를 종일 달고 산다.

 

잠시 눈을 가렸던 손으로 안와구를 더듬는다. 눈동자를 감싸고 있는 안와의 윗가장자리는 전두골, 아랫가장자리는 바깥쪽이 협골, 안쪽은 상악골이라 한다. 손으로 만지면 그 형태를 느낄 수 있다. 슬쩍 눈물샘을 건드렸는지 뻑뻑하던 눈이 촉촉해진다. 병원 진료실에서 본 해골 모형이 떠오른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 표면 아래의 차갑고 단단한 뼈들의 실체가 내 손의 감각을 통해 하나씩 만져진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땅'이라는 의미의 아다마(adamah)와 아담(adam)을 붙여놓음으로써 인간의 근본이 '흙'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 최초의 인간 중 한명인 아담이 혼자 외롭지 않도록 그에게 그의 갈비뼈 중 하나를 뽑아 만든 반려자를 주었고 그 여인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와는 '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로 그녀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하느님이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계보를 거슬러 오르자면 태초에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인간은 살고 있었으며 내 얼굴의 껍데기 속, 즉 피부 아래의 뼈는 이미 존재해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오랜 역사를 지닌 그 실체를 만져보는 지금, 그것은 왜 이다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척추동물의 머리를 이루는 뼈를 두개골이라고 부르는데 사람의 경우 뇌를 감싼 마루뼈, 이마뼈, 벌집뼈, 나비뼈, 뒤통수뼈, 관자뼈와 얼굴을 이루는 코뼈, 눈물뼈, 광대뼈, 위턱뼈, 아래턱뼈, 입천장뼈, 보습뼈, 코선반뼈 등 뼈들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그나마 지압법을 공부할 때 몸속의 혈을 찾느라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둔 것이 위급한 상황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 오늘이 아니었다면 언제 그 뼈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었을까. 표면이 벗겨진 두개골을 우리는 해골이라 부른다.

 

이마뼈로 손이 간다. 이마를 덮고 있는 피부와 근육이 얇아 이마뼈의 표면과 윤곽에 사소한 변형이 있어도 그것이 그대로 이마 표면에 나타난다. 내 이마뼈 표면엔 세로로 길게 내린 미간주름이 깊다. 뺨 양쪽의 광대뼈가 너무 돌출되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표정이 익살스러워 보이거나 강한 인상을 준다. 거울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생각보다 도드라져 보인다.

 

사춘기 때 얼굴을 뒤덮은 악성 여드름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 피부과를 3년 동안 뻔질나게 다녔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때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백반증이 생겨 레이저 시술을 5년 이상 받았고 좋다는 약과 건강보조식품들을 다 먹어봐도 낫지 않아 대인기피증까지 생길 뻔했다. 거친 피부와 주름을 완화해보려고 정기적으로 보톡스를 맞고 피부 마사지에 들인 비용은 이른바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부러움을 사는 직장인의 평균 연봉에 가까운 액수다.

 

이렇게 애지중지 보살핌을 받은 얼굴은 두개골의 껍데기에 붙어 쌩글거리고 눈물지으며 찡그리는 표정을 만드는, 마음처럼 얇디얇은 존재다. 하지만 두개골은 이 얼굴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음직한 튼튼한 구조로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임에도 껍데기에 붙은 얼굴만큼 관심을 준 적이 없다. 드러나지 않고 내 얼굴 모양을 잡아주고, 내 표정을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이지만, 얼굴이라는 껍데기에 가려져 철저하게 무시하며 살아왔다.

 

장식용이나 할로윈 테마로 등장하는 해골 디자인은 가면, 의류, 가방 등에 디자인되어 일상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함께 파헤쳐진 실물 해골은 그 모습이 흉측하여 흠칫 뒤로 물러선다. 인간은 해골을 보면 두려움을 느끼지만 누구나 자신의 얼굴 피부 속에 썩지 않은 해골을 지닌 채 살고 있다.

 

거울에 비친 해맑은 얼굴, 그 얼굴 뒤로 뻗어있는 내 두개골은 가장 마지막에 나의 생生과 사死를 증언해 줄 단서이다. 얼굴이 표정을 모두 지운 후에, 얼굴이 부패하여 살이 모두 내린 후에도 얼굴 뒤에 있는 단단한 뼈는 여전히 남아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태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로 돌아가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만든 아담과 그 갈비뼈를 취해 만들어진 하와가 본래 한 몸이었듯, 얼굴과 두개골은 분리되었으나 하나인 존재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남에게 보여지는 것들에게 얼마나 많은 치장을 하고 관심을 두었었나. 반면 남에게 보여지지 않는 것, 뒤에 숨은 것들은 아예 무시하고 제멋대로 방치해 오지 않았던가. 가려져 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 설령 그것이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이라 해도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오늘, 곱게 단장한 내 얼굴 뒤에 차갑고 무뚝뚝하며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하와의 뼈가 곧은 몸으로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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