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는 저마다의 삶이 있다. 몽돌은 강물이나 파도에 휩쓸려 그때마다 몸을 뒤척인다. 둥근 생김새가 비슷해 보여도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돌 속에는 각자 걸어온 삶의 궤적과 시간이 담겨 있을 것이다.

 

세상의 가지가지 돌들은 제 나름의 환경에 길들게 된다. 수석壽石이나 대리석은 독특하고 고운 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맷돌과 돌층계처럼 우직하게 일만 하는 돌도 있다. 현실 여건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돌이라 하여 예외가 아닐 테다.

 

야속했다. 사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찾아오면 반겼고 떠나가면 못내 서운했다. 변덕이 죽 끓듯 하여 믿을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인 것을. 하루가 멀다고 드나들더니 갈수록 발길이 뜸해졌다. 인근 주민들에게 나름 봉사했지만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건네는 자가 없었다.

 

한때는 새벽부터 저물녘까지 정신없이 바빴다. 동이 틀 무렵 마을 어른들이 오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지나갔다. 낮에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은 징검다리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물수제비뜨다가 싫증이 나면 여울에서 멱을 감기도 했다. 물장구치며 놀고 있는 아이들 머리통이 작은 징검돌처럼 보였다.

 

숱한 사람이 밟고 지나간다. 누구를 차별하거나 편애하지도 않는다. 건너는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가 높든 낮든 나이가 많든 적든 덤덤하게 대해 준다. 새털처럼 가벼운 아이의 발걸음도 있고, 지게까지 더한 건장한 일꾼의 묵직함도 느꼈다. 이 한 몸 돌다리가 되어 그들을 보살피는 게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다.

 

인근에 콘크리트 다리가 생긴 후 갑자기 퇴물이 되었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두고 옛것을 고수하기는 힘들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섭섭했다. 언제부터인가 물끄러미 사람 사는 세상을 쳐다보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새벽녘이면 다리 위로 택배 차량이 지나간다. 매일 같은 시각에 밤잠을 마다하고 다니는 주인공의 얼굴이 궁금하다. 처자식이 있는 가장일까, 노총각일까. 생수를 비롯한 각종 상자를 들고 등짐장수처럼 가정과 시장을 연결하는 사람. 누군가의 단잠을 위해 밤새워 일한다는 것은 타인의 징검다리가 되는 일. 어쩌면 그는 가난에 떠밀려 스스로 징검돌을 자처했을지도 모른다.

 

징검돌이 된다는 것은 타인에게 등을 내어 주는 일. 등을 통해 사람은 인정을 주고받는다. 젖 먹던 시절의 나도 어머니의 땀에 찌든 무명 적삼에 얼굴을 묻고 등에 바짝 붙어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나를 보듬어 주었던 혈육의 등에 의지했고, 학창 시절에는 스승이나 선후배, 친구의 배려라는 디딤돌을 밟았다. 그들의 등을 딛고 일어섰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나도 타인의 징검돌이 되곤 한다. 자식들이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지 않도록 내 등짝을 내어 준다. 발 디딜 공간이 좁고 옹색한 내 등이지만,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힘이 닿는 한 도와주기도 한다. 물살이 세지고 홍수가 나도 묵묵히 버텨야 한다. 내 몸이 불편할 때 누군가가 큰 짐을 들고 올라서면 허리가 부러질 만큼 괴롭지만 참고 견뎌야 한다.

 

징검돌은 눈길을 끄는 돌은 아니다. 여울의 얕은 곳을 따라 덤벙덤벙 놓여 있다. 생김새와 크기가 제각각이요, 서로 간의 간격도 다르나 사람과 사물, 사람과 세상을 연결해 준다. 인공미가 없는 소박함이 사람과 자연을 서로 결속해 주는 것이리라. 순리에 순응하려는 지혜도 엿보인다. 그것은 자연 친화적인 돌이 가지는 담백한 질서나 순박한 멋이라 해도 되지 싶다.

 

징검돌의 미덕은 지조를 굳게 지키는 데 있다. 흐르는 물살에 꿋꿋이 버티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뚝심의 표상이다. 세파에 초연하여 미동조차 없다. 사람처럼 좋은 자리를 탐내거나 시샘을 내지 않는 심성. 중심을 못 잡고 균형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옹골참.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연민하고 그의 슬픔까지도 짊어지는 의리. 이러한 듬쑥한 덕성을 갖춘 게 그의 매력이다.

 

주말이면 인근 지역 사람들이 운동이나 산책을 하며 지나간다. 이런 감성을 느끼려고 일부러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도 있다. 몇 달 전 콜센터에 취업했다던 아가씨도 주말이면 지나간다. 오늘은 누군가와 한참을 통화하며 징검다리 주위를 서성인다. 노상 밝은 표정이었던 사람이 최근 들어 수면이 부족한지 얼굴이 부스스하다. 오늘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종종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쉰다. 모르긴 해도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에 꽂히지 않았을까. 일이 고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사회생활이란 세상의 규범과 질서 속에 톱니바퀴처럼 나를 끼워 맞추는 것. 그러려니 여기고 마음을 삭이며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발 디딜 변변한 매개체 하나 없어 허우적거리는 인생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소박한 꿈을 이루려다 밑천이 없어 주저앉은 사람, 소액의 빚을 갚지 못해 신용 불량자가 된 사연, 어릴 적에 부모를 잃거나 그들로부터 소외를 당한 사정도 있다. 오만과 편견이 가득 찬 세상에서 힘든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는 사회. 그들에게 사닥다리 한 칸이나마 딛도록 하는 게 공동체의 책무가 아닐까.

 

세상에는 징검돌처럼 살아가는 삶이 많다. 낙타는 등에 불룩한 혹을 달고 사막을 걷는다. 무거운 짐을 싣고 수행자처럼 걸어야 할 고행의 길. 메마른 땅에서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덥고 건조한 사막에서 가장 큰 강적은 바로 자기 자신일 터. 낙타는 뛰지 않고 그저 제 페이스대로 걷기만 한다. 마치 자신의 등을 내주고 길을 만드는 징검돌처럼.

 

누구나 삶의 등짐 하나 지고서 평생을 종종걸음친다. 약육강식이 기본 법칙인 삶터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험한 인생길을 걷는다. 세월이 흘러 노쇠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녀도 쉽사리 짐을 내려놓지 못한다. 가난과 자식이라는 짐을 한평생 짊어졌던 모든 어머니의 굽은 등이야말로 고귀한 징검돌이다.

 

어쩌다 징검다리를 만나면 저절로 걸음을 멈춘다.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바라본다. 띄엄띄엄 놓인 돌들이 어느 순간 꿈틀거린다. 잠에서 깨어난 사연들이 내 가슴을 은은하게 적셔 주곤 한다.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설핏설핏 스쳐 가는 것이다.

 

징검돌은 징검다리에서 오늘도 일한다. 다 잘 될 거라는 희망 하나를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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