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바다 / 김백윤
바다에 해바라기꽃이 활짝 피었다. 해녀의 노란 테왁이 해바라기처럼 햇빛 아래 눈부시다. 바다는 한순간 꽃밭이 된다. 점점이 피어난 해바라기가 물결 따라 일렁인다. 해바라기가 움직일 때마다 여인의 깊은숨이 메아리친다. 바다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아내를 품었다가 내어놓는다. 바다의 몸속에는 여인들이 살고 있다. 바다를 도반으로 여기는 제주 여인들의 몸에 응축된 소금기가 노란 테왁에 씨처럼 박혀 있다.
아내가 물살을 가르며 다가온다. 아내의 해바라기에 부서지는 햇빛이 찬란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내의 몸에서 바다의 속살 냄새가 난다. 비릿하면서도 생생한 바다가 망사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검붉은 우뭇가사리가 터질 듯 수십 개의 손을 뻗친다. 깊은 바다에서 뿌리를 내리고 끝없이 번식하는 우뭇가사리는 어쩌면 강한 제주 여인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움도 걱정도 뭍에 남겨두고 서슴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해녀의 삶은 은유적이기보다 직설적이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전해진 물질을 거부하지 못하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때 이미 그녀들은 바다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는지도 모른다.
우뭇가사리를 가득 채운 망사리를 뭍으로 끌고 온 아내는 깊은숨을 몰아쉰다. 고무옷에 가려진 아내의 거친 팔이 눈에 선하다. 망사리를 가득 채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바다를 더듬어야 했을까. 숨을 참으며 바다를 누볐을 아내의 긴 시간이 망사리의 무게만큼이나 등을 짓누른다. 그래서 망사리를 끌어 올리는 일은 가슴에 묵직한 통증을 수반한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매년 4~5월이면 우뭇가사리 채취 작업이 시작된다. 마을회에서 작업 시기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일이다. 바다를 벗해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 해 농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무를 만드는 원재료가 되는 우뭇가사리는 해녀들에게 가장 큰 소득원이다. 목숨을 담보로 물속을 거침없이 뛰어들어야 하는 해녀의 삶이란 바다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녀들만이 작업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남자들은 물론, 이미 은퇴한 해녀들까지도 합세한다. 일을 그만둔 연로한 분들이 나서다 보니 예기치 못한 사망사고도 발생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평생 해녀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뭍에서 지낼지라도 바다가 몸속에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바다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이 익숙하다. 이웃은 타인이 아닌 나와 우리의 개념이다. 특히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날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 돕는다. 바다에서 끌어올린 망사리가 워낙 무겁다 보니 여럿이 힘을 합해야 뭍으로 옮길 수 있어서다. 가족이 없는 사람은 일꾼을 구하기도 한다. 운송 수단도 총동원된다.
나도 만사를 제쳐놓고 아내와 함께 바다로 나선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아내의 모습은 진지하다. 장비를 다 갖추고 바다에 뛰어들 때는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의 여전사 같다. 이제는 바다가 삶의 현장이 되어버렸으니, 아내의 몸에는 바다의 무늬가 새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해녀들이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동안 남자들에게는 기다리는 일이 남는다. 해녀를 아내로 둔 남편들에게 그때만큼 가슴을 죄는 시간도 없다. 아내가 들어간 바다를 바라보며 그녀들의 가쁜 숨을 헤아리는 일은 초조하다. 막걸릿잔을 들고 있어도 남자들의 눈과 귀는 바다로 향한다. 행여 아내의 신호를 놓칠세라 손에 땀이 난다.
망사리를 가득 채운 해녀가 바다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남자들도 바빠진다. 해녀들이 거둬온 망사리를 차례차례 뭍으로 옮겨야 해서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남자들의 몸에도 소금기가 밴다. 망사리에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집 근처로 옮겨 말리는 작업도 남자들의 몫이다. 우뭇가사리를 말리기 위해서 펼칠 때 나는 가끔 가슴이 울컥한다. 붉은빛을 띠는 해초에서 아내의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서다.
일일이 손으로 뜯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귀한 해초는 뭍에서 산들바람 맞으며 뜯는 나물과 다르다. 뭍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쉬엄쉬엄 먼 곳에 눈을 주기도 하지만 바다는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몇 초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하니 그 두려움이 오죽할까. 원시림 같은 바다의 길에서 온 신경이 곤두섰을 아내의 마음이 우뭇가사리의 붉은 기운에 스며있는 것 같다.
작업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보통 다섯 망사리 정도를 채취하면 일과를 끝낸다. 뭍으로 올라온 해녀들은 바다와 전쟁을 치른 것처럼 기진맥진해 있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해초가 널린 곳으로 달려간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몸에 묻은 소금기를 털어내기 바쁘게 우뭇가사리 속에 파묻힌다. 채취하고 말리는 작업은 한 달 동안 계속된다. 제주 해녀들에 의해 생산된 우뭇가사리는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하고 한천의 재료로도 쓰인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우무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해녀들의 강인함이 바다에 길을 낸 덕분이다.
우뭇가사리 채취를 할 때면 청정한 제주 바다가 우리 집 앞뜰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바다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친근하다. 오염되지 않게 가꾸고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제주에 살면서 느끼는 자부심 같은 것이라고 할까. 직접 물질을 하는 아내는 나보다 더한 마음일 거다. 온갖 먹을거리를 바다에서 얻을 뿐 아니라, 가정경제까지 지켜주니 바다는 해녀들에게 생명줄이다. 바다의 품에 안긴 해녀는 강인하면서도 아름답다.
물질이 끝나면 아내의 해바라기는 다시 기다림의 시간 속에 놓인다.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에서 아내를 지켜주는 테왁, 바다에 있을 때는 아내를 햇빛 반짝이는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주고 집에서는 조용히 시간을 갈무리한다. 바다는 오늘도 해녀들의 숨을 품고 깊은 침묵에 잠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