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 최지안

 

 

앞 차가 갑자기 비상등을 깜박거린다. 끼이익! 오른발을 앞으로 뻗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상체가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쏠린다. 눈으로 들어온 긴장이 오른쪽 발끝으로 간다. 타이어가 마찰음을 내며 고삐를 잡아당긴다. 워워. 심장박동 수가 급상승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오른팔을 뻗는다. 반사적이다.

​아침 도로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심장을 찢는다. 도로가 막힌다. 두 대의 차량이 붙어있다. 차간 거리가 너무 좁았거나 브레이크를 너무 늦게 밟았거나, 찌그러진 자동차처럼 운전자들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급히 밟는 브레이크 소리 그다음은 늘 쿵! 사고가 날 때에 어김없이 브레이크를 밟는다. 안전과 직결되는 제동력은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차를 구입할 때 제로백이나 멋진 외관, 연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동력이다. 제동력이 시원찮으면 사는 것도 힘들다. 가던 말에서 뛰어내리기 힘들 듯 하던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 손을 떼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잘 놓치는 것이 문제다.

​치솟는 주식시장에서 뛰어내릴 시기를 아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더 오를 것 같은 욕심에 하루에도 몇 번을 '팔아? 말아? 하면서 번복한다. 주가가 떨어질 때는 또 어떤가. 다시 오를 예상에, 혹은 손해난 것이 아까워 계속 붙들고 있다. '뛰어내려? 말아?를 고민한다.

​큰아이는 몇 년 전부터 금 상품을 적립했다. 올해 금값이 뛰니 매일 고민이었다. 용돈으로 재테크를 하는 아이가 흥미로워 지켜보기만 했다. 내 생각엔 금값이 더 오를 것 같았다. 더 두어도 되겠다고 넌지시 말했으나 아이는 30퍼센트의 수익률을 달성하고는 매도했다.

​그 후 금값이 더 올랐다. 내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아이는 싱글벙글이다. 수익을 달성했으면 되었다고 한다. 떨어질지 올라갈지 매일 그 생각만 하니까 떨린다고 했다. 매도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고. 욕심이 없으면 사는 것도 쉽다.

​올라가는 일만 있다면 브레이크는 필요 없다. 브레이크가 중요한 것은 내리막이 있기 때문이리라. 내려오는 일은 올라가는 일 못지않게 힘들다. 자전거나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있지만 인생의 내리막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추락하는 것은 가속도가 붙는다. 올라갈 때의 희열만큼 내려가는 속도는 더 가파르다. 높이 올라갔던 사람일수록 가진 것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내려가는 가속도는 더 빠르다. 거기에 따라붙는 상대적이 허무감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자신만만했던 삶도 내리막에는 쉽게 흔들렸다. 쉽게 노여워지고 기습적으로 눈물이 솟았다. 한 번 흔들린 감정은 통제가 쉽지 않았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자존감은 쉽게 무너졌고 간신히 쓸어 올리면 다시 허물어졌다.

​브레이크의 부작용도 있다. 미리 조금씩 나누어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갑자기 밟는 경우의 여파는 크다. 앞으로 가고자 하는 자동차와 브레이크의 무력충돌이다. 힘의 방향은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출렁 뒤로 물러난다. 관성의 법칙은 그대로 몸으로 전달된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어딘가에서 부서졌다. 삶의 형태가 바뀐 후 나는 내 감정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흔들리지 말아야 될 것까지 출렁였다. 그 이후에는 견딜 수 없는 자책이 따라왔다.

​조금씩 브레이크를 밟을 때가 온 것 같다. 매달 통장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끊어진 지 두어 달,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켓에서 상품을 고르는 시간도 길어졌다. 딸기 한 팩도 더 싼 것으로 손이 가고 꼭 사야 되는 것인지를 망설인다. 이월 상품 가판대를 기웃거리며 만 원짜리 후드티를 뒤적거린다. 앞으로는 지금 옷장에 들어있는 옷보다 더 저렴한 옷들이 들어차게 될 것이다. 과일을 살 때에도 다른 물건을 살 때에도 심사숙고 끝에 구입을 하게 될 것이다.

​뭐, 그래도 괜찮다.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예쁜 옷들은 얼마든지 있고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조금씩 브레이크를 밟으면 무게 중심이 흔들리거나 임계점까지 다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리막길이어도 괜찮다.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돌아봤을 때 중심을 잃지 않고 나를 놓는 일 없이 길을 잘 걸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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