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변했다 / 장미숙

 

 

그녀, N의 몸매가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밋밋하던 선에 굴곡이 생기고 탄탄해졌다. 걷는 모습도 전에 없이 활기차다. 어깨가 곧게 펴지고 자세에 흔들림이 없다. 그녀도 알고 있는 걸까. 모델이라도 된 듯 우리 앞에서 어깨를 곧추세운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나 어때? 몸이 달라졌지? 보기 좋아지지 않았어?”

뒤에서 걷던 우리는 당당함에 먼저 제압당한다. 그러잖아도 내심 공감하던 터라 그녀의 말에 강하게 힘을 실어준다. 예순의 나이에 몸매가 전에 없이 돌올해져서(전에 없다는 게 핵심이다) 어쩔 것이냐고 놀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른 건 다 좋은데 가슴이 왜 이리 커지는지 모르겠어. 쓸모도 없는데 말이야. 에이, 불편하기만 해.”

그녀의 말에 우리는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린다. 쓸데없이 커지는 가슴이라니, 풍만한 몸매를 원하는 젊은 여성들이 들으면 눈을 세모로 뜨고 노려볼만한 수위 높은 발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진심이다. 쓸모가 없다는 말, 현실적이고 지당한 말씀이어서 우리 셋은 헛헛한 웃음을 허공에 뿌리고야 만다.

그녀는 전성기를 맞았다. 몸매뿐 아니라 전에 없는 여유가 생겼다. 얼굴도 그렇고 생활에도 윤기가 흐른다.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얻었고 그에 걸맞게 시간을 탄탄하게 사용한다. 다른 사람이 그런 여유를 부린다면 배가 아플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그녀는 희망이고 대리만족을 채워주는 존재이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즐기는 것 모두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녀가 좋아질수록 어깨를 들썩이는 이유이다.

우리는 오래된 대학 동기이다. 늦깎이 공부를 하던 사십 대에 만나 지금껏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아니 갈수록 더 자유롭고 편하다. 셋의 공감대가 그만큼 수평적이기 때문이다. 수직이 아닌 수평의 관계, 그건 편안함을 전제로 한다. 비교 상대가 되지 않을 때, 서로 추구하는 바가 같을 때 상대방에게서 위로를 받고 자신을 편하게 투영한다.

한동네에서 살아온 것도 끈끈함을 더해주었다. 삶이 고만고만하고 남편들이 하나같이 실속이 없었던 탓에 늘 생활전선에서 뛰었다. 그렇다. 뛰는 건 우리 몫이었고 배우자들은 가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로 허송세월을 일삼았다. 그러니 결속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N과 S, 그리고 나, 지나온 날들을 치열하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경제적으로 허덕이며 시간에 쫓기고 자신을 위한 삶보다 누군가를 위해 늘 분주했다. 그게 가족이든 형제든 부모든 삶의 가속기에서 발을 놓지 못했다. 그랬는데 요즘 N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바람을 몸속에 들인 그녀, 뒤늦게 자신의 삶에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놀기와 운동에 빠졌다.

주말부부가 되면서 그녀의 일상은 많은 게 달라졌다.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왔는데 요즘은 샛길로 빠지곤 한다. 가족보다 놀기가 우선인 그녀에게 우리는 아주 바람직하다고 바람을 넣는다. 충분한 자격이 있고 그래도 되고 그렇게 살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녀 역시 우리의 바람대로 잘 놀고 잘 먹고 몸매마저 바람직하게 변해 간다.

이십여 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조용하던 그녀가 아니다. 그때는 얌전한 몸매에 얌전한 말투, 그리고 행동도 조심스럽고 매사에 자신 없어 했다. 맏며느리에 애들을 셋 키우며 3교대 근무를 하던 억척스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순하게 생긴 외모에 비해 감당하기 힘든 날들을 견디어냈다. 그 와중에 대학공부까지 하느라 출퇴근 전철에서 매일 존다던 그녀는 결국 한 학기를 남겨두고 졸업을 하지 못했다.

남편의 수입이 거의 없던 때, 그녀는 좁은 어깨로 가정경제를 책임졌다. 외향보다 내향이 강한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든 자신 없다는 말을 뱉곤 했지만 끈질기게 해내는 억척스러움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녀의 생활에 숨 쉴 틈이 생긴 건, 공공기업의 정직원이 되면서부터였다. 오랫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처지가 바뀌자 많은 게 달라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그녀는 기꺼이 그 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가족에 얽매여 바쁜 듯하더니 조금씩 그 굴레를 벗어났다. 아이들이 성장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각자 알아서들 사니 그녀로서는 크게 염려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정을 나 몰라라 했던 그녀의 남편이 직장을 갖게 되어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다.

수영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운동에 눈을 떴다. 그동안 몰랐던 운동의 효용성을 제대로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운동은 그녀에게 삶의 유익을 가져다주는 활동이 아니었다. 내가 끊임없이 운동을 권유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 일쑤였다. 사는 것도 바쁜데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던 그녀가 배드민턴을 치고 최근에는 탁구에도 열을 올린다. 이제 집안일에 붙잡히지 않게 되자 주말에도 집에 오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밤새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경치 좋은 곳을 찾는다는 그녀는 행복하단다. 메말랐던 얼굴에 혈색이 돌 수밖에 없다. 둔했던 몸도 어느덧 민첩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흥이 많아졌다. 몸치의 대명사였을 만큼 나무토막을 방불케 했는데 제법 박자를 맞추며 리듬을 탄다.

지난해부터는 새로운 공부도 시작했다. 직장이 끝나면 야간대학에 나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단다. 뭐든 느리긴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그녀는 거북이의 성실함을 닮았다. 입으로는 힘들다 하면서도 행동은 앞으로 나아간다. 뛰기보다 걷고 때로는 기어갈지라도 목표에 도달하는 인내심의 소유자이다.

나는 아직도 시간과 경제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덕인다. 여유로운 나들이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하고 산다. 가정경제는 어깨를 짓누르고 흔들다리를 건너듯 삶 또한, 불안정하다. 하지만 걷고 뛰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운동은 내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다. 그런 나와 동행해주는 그녀, 우린 그렇게 중년의 비탈길을 다독이며 오르고 있다.

<『에세이 포레』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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