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 / 김남희  

  우리 집에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나와 전혀 닮지 않은 한 남자와 나를 무척이나 빼다 박은 한 남자입니다. 나를 전혀 닮지 않은 남자는 결혼을 하게 되어 한 침대를 사용하는 사이가 되었고, 나를 닮은 남자는 7월의 어느 여름날 그와 나 사이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때부터 두 남자는 침대를 사이에 두고 쟁탈전이 벌어졌지요. 지금의 코로나 형국처럼 침대를 사이에 두고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지요. 오늘도 두 남자는 밥상 앞에서도 신경전을 벌이는 중입니다.

   임신 6개월인데도 배가 만삭처럼 불러왔습니다. 만삭의 배를 움켜쥐고 시댁에서 맏며느리 역할을 톡톡히 치르고 있었지요. 16개월 된 첫딸이 재롱을 한창 떨 즈음 아들을 임신했습니다. 남편의 여동생 시누이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축하 인사차 집안에 들르고 임신 중인 저는 술상을 나르며 맏며느리 노릇을 하였지요. 술상을 들고 사랑채 디딤돌에 올라섰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댁은 시골 한옥의 전형적인 사랑채였지요. 몬드리안 모양을 한 문틀과 문살 사이를 햇빛이 제집처럼 드나드는 창호지가 발라져 있는 방문이었습니다. 술상을 디딤돌에 놓고 방문 고리를 잡아당기는데 고리가 쑥 빠집니다. 뱃속 아기까지 두 명의 몸무게를 감당하기엔 벅찼는지 빠진 쇠고리를 잡고 마당에 나동그라졌습니다. 저는 술상과 함께 순식간에 마당으로 한 바퀴 굴렀지요. 임신 중인 며느리가 마당을 구르자 집안은 난리가 났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다 버선발로 뛰어나왔지요. 부추전과 막걸리를 뒤집어쓴 채 빠진 문고리를 손에 쥐고 있는 며느리를 일으키며 뱃속에 든 아이를 걱정했지요. 시어머니는 부엌에서 뛰어나오며 얼굴이 하얘지고 시아버지는 배부른 며느리를 부려 먹는다고 시어머니를 호통치며 역정을 내셨지요. 손이 귀한 집안이라 뱃속에 든 아이가 잘못될까 봐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어른들의 걱정과 놀람 속에 정작 나는 아픈지 안 아픈지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문종이를 태워 재로 만든 후 물에 태워 마셨지요. 어른들은 임산부를 위한 양 조밥이라며 쏜살같이 만들어 왔습니다. 저는 까맣게 재가 된 종이를 처음으로 먹어 보았습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에어컨이 없는 단칸방에서 만삭의 몸으로 열대야를 견디다 못해 여관방을 찾았었지요. 남편과 함께 팔공산 여관을 찾았더니 주인이 한밤에 들이닥친 배부른 여자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해 컥컥거리며 숨어 웃던 기억이 납니다. 날이 너무 더워 에어컨 있는 데서 잠을 자기 위해 왔다 말해도 변명으로 듣는 눈치였습니다.

  양밥 때문인지 아이를 순산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튼실한 우량아 이 집안의 장손이었지요. 어른들은 손이 귀한 집안에 아들 손주가 태어났다며 엄청나게 좋아하셨지요. 아이를 놓고 병실에 들자마자 시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출산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는데 시어머니는 아들 한 명을 더 낳으라고 하셨지요. 그때 저의 마음은 산통에 지친 모든 산모와 마찬가지로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지요.

  아이가 돌이 되었을 때 저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동네 아주머니의 손에서 자라고, 조금 커서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손에서 자라고, 겨울이 되면 농사일이 뜸한 시댁에서 시어른들이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이를 보러 갔는데 그사이 엄마 얼굴을 잊어버렸더군요. 엄마를 봐도 낯선 사람인 양 슬금슬금 도망을 가는데. 그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학교생활을 할 때도 일이 너무 바빠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인 이유일까요? 아들은 또래에 비해 저체중에 군대를 갔다 온 지금도 빼빼 마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뱃가죽이 허리에 붙었다며 늘 일도 좋지만 아이들을 건사하라고 나무랐지요. 은연중에 저도 아이가 약한 것이 제 탓 인양 저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습니다. 모든 일하는 엄마들의 자격지심처럼 저 또한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엄마입니다.

   아들이 늦은 시각 아르바이트를 하고 식탁 앞에 앉습니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하자 얼른 일어나 밥상을 차립니다. 남편이 퇴근해 저녁을 차려 달라고 하면 때로는 피곤하다며 엄살을 부리기도 하는데. 아들의 밥상을 두말없이 일어나 차리는 것을 보고 남편이 난색을 표합니다. 군대 간 아들이 휴가 나왔을 때도 고기반찬을 남편에게서 아들 쪽으로 당기는 나를 보고 ‘군대에 있으니까’라며 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었지요. 반찬이 아들 앞으로 죄다 옮겨지는 모습에 서운하다고 말을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끌어당겨 저 앞에 놓아주는 남편입니다.

  내가 아프고 피곤할 땐 자식은 아프다 말을 해야 알아듣지만 남편은 나의 낯빛만 보아도 알아차립니다. 화초의 시든 모습만 보아도 물이 필요한지 햇빛이 필요한지 알아보듯 나의 얼굴만 보아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얼마나 힘든지를 단박에 알아차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아들만 두둔하는 것은 엄마이기 때문일까요? 오래된 암석들조차도 DNA가 있어 서로를 알아본다 하였듯 바다보다 깊은 심해 뱃속에서부터 이어져온 핏줄 때문일까요?

   아들이 자기 앞에 놓인 고기반찬을 아버지 쪽으로 밀어 놓습니다. 아들도 자신의 뿌리가 아버지로부터 인 것을 아는 것이겠지요. 밥상 앞에서의 신경전은 일단락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되찾습니다. 나와 전혀 닮지 않은 남자이든 나를 빼다 박은 남자이든 두 남자를 골고루 사랑해 주어야겠습니다. 자식은 새가 되어 새로운 둥지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남편은 나란히 손을 잡고 노을을 바라보는 사이가 되어야겠지요. 두 남자를 위해서 말입니다. 밥상 앞에서 벌인 신경전은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오래된 암석들처럼 어디에 있어도 서로를 알아 보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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