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색을 더하는 시간

 

아파트 광장놀이터에 그녀들이 보인다. 팔에 가방 하나씩을 들고 손을 흔든다. 저 가방 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활짝 핀 꽃 사이에서 환히 웃는 그녀들이 아름답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지만, 중년의 여인들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나는 친구들을 보며 느끼곤 한다. 그건 열정과 마음이 함께하기에 가능하다.

우리는 둘레길을 걷는다. 사방이 꽃이고 나무는 푸르름을 머금었다. 얼마나 좋은 계절인가. 아니 얼마나 좋은 시절인가. 우리가 딱 그렇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서로를 향한 믿음과 신뢰, 즐거움도 배가 된다. 고단한 날들을 버텨내는 힘을 얻는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공원 배드민턴장이다. 사십 분을 족히 걸어가면 숲속에 들어앉은 아담한 배드민턴장이 나온다. 우리는 이곳을 아지트라 부른다. 그만큼 함께한 시간이 쌓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오월부터 찾았으니 사계절의 변화를 이곳에서 실감했다. 아지트에는 나무 그림자 사이로 밝은 햇살이 가득하다. 계절 따라 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곳, 푸른 나무가 키를 세우고 겨울에는 여백의 미가 도드라지는 곳이다.

작지만 네트가 두 개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과 산책하는 이들이 가끔 오갈 뿐 산속에 있어서 조용하다. 우리는 주말 오후에 만나 이곳에서 세 시간 정도 같이 한다. 처음에는 한 마을 친구인 셋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한 사람이 늘었다.

목적은 배드민턴이지만 운동과 더불어 놀이에 심취한다. 네 명 중 전문적으로 배드민턴을 배운 사람은 없다. 우리식으로 즐긴다. 춤과 배드민턴을 병행하는 것인데 정해진 룰은 없다. 뛰다가, 춤추다가, 배드민턴을 친다. 그러다 보면 세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모두가 바쁘게 살지만, 운동의 중요함은 잊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칙칙한 삶에 밝은색을 더한다. 집에서 가져온 간단한 먹을거리를 나누고 고민도 털어놓는다. 무엇보다도 배드민턴 치면서 춤추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신나는 음악 속에 셔틀콕이 오가고 누구랄 것도 없이 흥에 겨워 몸을 흔든다. 그러면 일제히 단체 막춤으로 이어진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든 말든 상관치 않는다.

평균 나이가 예순에 가깝다 보니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시들어가는 중이다. 반면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찾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건 운동이다. 운동은 나의 오랜 생활습관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에게 운동을 권유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들도 열정적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눈빛만으로도 통한다.

우리는 밋밋한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동안은 숨겨둔 끼를 발산하는 것이다. 순간순간을 동영상으로 찍어 공유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결국은 건강한 삶을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운동하는 걸 구경하는 이들도 생겼다. 재미있게 논다고 나름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잘하고 있구나 싶다.

거창한 준비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가벼운 옷차림에 물 한 병, 고구마나 과일 몇 조각, 정도만 있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 비용이 드는 것도,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고로 잘 활용하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다.

넷이서 배드민턴을 치다 보면 함성과 탄식이 터진다. 이럴 때 주위에서 박자를 맞춰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새들이다. 새들도 우리를 아는지 반갑게 맞아준다. 응원도 하고 때로는 야유도 보낸다. 새들뿐이랴. 키 큰 나무도, 자잘한 꽃들도, 심지어 들고양이들도 우리를 구경한다. ‘신나게 노는구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새벽 세 시부터 하루를 시작할 만큼 나의 하루는 빠듯하다. 일하고 글 쓰고 살림하고 공부도 하지만 운동만큼은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야말로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헤어질 때면 늘 아쉬움이 앞선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새로운 한 주를 맞아 열심히 살자는 각오를 다진다.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 함께라서 더 행복한 시간, 우리는 주말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라켓을 메고 씩씩하게 아지트로 향한다.

(『삶의 온기』 202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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