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종이 울릴 때 / 김희숙

 

 

그리움으로 노을을 만난다. 도심 한복판 빼곡한 고층 사이로 붉은 조각이 설핏설핏 보이다가 언덕을 벗어나면 그렁그렁 추억이 고인 핏빛 하늘이 안겨온다. 그런 날에는 어디선가 하교를 알리던 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댕~댕~댕. 소리를 좇아 눈길이 먼저 서쪽으로 달려간다.

도시의 삶에 두 발이 지친 날, 마음을 앞장세워 노을을 찾아간다. 태양과 나란히 달리면 해당화 꽃잎을 간질거리는 갯바람과 자갈 굴리는 파도가 거북바위에 부서지는 서쪽 끝에 가 닿는다. 사람들은 그곳을 영광 백수해안도로 노을길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어디 가나 지는 해는 볼 수 있으련만 해안선 따라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노을 지는 광경을 한시도 놓치지 않는 길이라 얻은 이름일 것이다.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느껴지던 연인의 품속 같은 곳, 응석부리는 아이에게 내어주던 아버지의 등처럼 듬직한 길, 언제 찾아가도 김 오른 밥상이 기다리는 옛집처럼 편안한 고향, 그곳에 가면 노을이 마중을 나온다. 비탈진 돌땅은 논물 가두어 키우는 벼농사는 어림없고 겨우 호미질로 콩이며 들깨나 상추를 올릴 정도로 척박하지만 다가가보면 너른 바다를 품어서인지 반상 인심은 넉넉한 마을이 해안가로 엎드려 있다. 백수읍 길용리에서 시작한 칠산갯길 삼백리 노을길 구간은 백암리 석구미에서 끝이 난다.

노을은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시간에 물든다. 노을길에 들어가려면 법성포구를 지나야 한다. 콘크리트 바닥에 쌓였던 조기 더미가 소금을 덮어쓰고 세 가닥 줄에 엮여 옥상으로 바람맞이 나서면 조기 엮던 할매들이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쪼그렸던 무릎을 세우며 저절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에 구수산 뒤에서 얼쩡거리던 노을이 냉큼 불려 나온다. 긴 꼬리 붉은 갯골이 물 빠진 개펄에서 꿈틀거리고 앙상한 종아리를 감쌌던 몸빼도 구겨졌던 무늬를 펼쳐 꽃송이를 피워 올린다. 신발에 엉겨 붙은 비린내를 씻어내는 수돗물 소리는 노동의 고단함까지 시원스레 쓸어내린다. 수건을 툭툭 털며 철문을 나서는 백발 위로 선홍빛 물감이 번진다. 조기 작업장의 퇴근은 한낮의 쪽잠 들었던 어부에겐 출근을 준비하는 때이다. 포구에선 뱃전에 꽂힌 삼색 깃대가 허공을 휘젓는다. 좁다란 철다리는 어구를 나르는 발걸음 따라 삐걱거린다. 어깨에 만선의 기대가 묵직하게 실려서이리라. 칠흑의 밤을 밝힐 집어등을 줄지어 매달고 꽃게잡이 나서는 어부의 물장화가 석양빛에 번들거린다.

아침놀을 볼 때는 상념에 잠기기보다 새로운 하루와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된다. 바다를 뚫고 떠오르는 태양과 어둠을 밀어내는 아침놀 아래에서는, 비상하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힘차고, 물살을 가르는 뱃고동 소리는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신호처럼 들린다. 덩달아 타향살이에 가진 것 없는 변변찮은 삶이지만 단단하게 살아갈 용기까지 얻는다. 해돋이 태양은 장엄하지만 아침놀은 긴 여운이 남지 않는다. 내게는 서해 하늘을 물들이는 목홍빛이어야 진정한 노을로 여겨진다. 노을은 잠시 머물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우리네 짧은 삶과 닮았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고 세상이 빛으로 충만할 때에는 의식하지 못하다가 해가 저물어 어둑해지고서야 밝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언제나 죽음 앞에 삶이 값지게 느껴지듯이. 나무가 키를 키우는 여름과 나이테를 만드는 겨울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봄가을을 거쳐야 야무지게 자라듯 노을은 낮의 분주함을 잠재우고 밤의 나른함을 깨운다. 그리고 새벽을 잇는다.

연한 놀빛이 짙은 암흑을 밀쳐내며 붉어지는 광경을 보다가 세상 이치를 환하게 깨쳤다는 젊은이가 생각난다. 그는 너나없이 살림살이 팍팍한 시절에 이웃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며 뜻 맞는 이들과 함께 숯을 구워 기금을 조성하고 바다를 막아 농토를 늘리어 빈곤한 사람들을 도왔다. 내 어릴 적 고향에서는 집집마다 부엌 한쪽에 자그마한 항아리를 두었다. 어머니는 쌀보리를 씻을 때마다 한 줌씩 덜어두라고 이르셨는데 그가 제안한 절약법 중 하나였다는 걸 어른이 된 후에 알았다. 모인 곡식은 학교로 가져가 어려운 자들을 돕는데 쓰였다. 나라 안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였던 시기에 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품게 한 새벽녘 붉은 노을 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그가 새롭게 사상을 펼쳤던 영산성지가 노을길 초입에 있다.

길을 걷다보면 슬며시 기억길로 꺾여든다. 칠산 앞바다 위로 찰랑대는 은빛 줄을 마음으로 당기면 중학교 교무실 창문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복도 끝이 소란해지고 교복 입은 학생들이 겹벚꽃 아래로 우르르 몰려나온다. 남학생들 한 무리가 앞서는가 싶으면 등굣길에 매단 흰 칼라가 눈부시게 뒤따른다. 교문 앞 매점을 들락거리는 발소리는 피로에 지쳐 둔탁하게 끌린다. 마음길이 열리는 시간이어서인지 하늘마저 발그레 붉어지곤 한다. 버스 정류장에선 선뜻 말을 걸어보지 못하지만 남녀 학생들끼리 서로를 힐끗거리며 수줍은 마음도 주고받는다. 그러나 어디선가 갈림길이 기다리기 마련이다. 소년을 태운 버스와 소녀가 탄 버스는 노을을 정면에 두고 방향을 달리한다. 소녀는 버스가 노을길로 접어들면 반대쪽으로 내빼는 버스 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하였다. 시간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아궁이 불길처럼 맹렬히 타오르던 노을도 금세 스스로를 태워 검은 재를 뿌린다. 이곳 사람들은 그 금쪽같은 빛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두려 노을이 머무는 곳에 정자를 지어 벗을 대하듯 노을을 맞는다.

노을길이 어수선하다. 중장비가 오르락내리락 가풀막진 언덕길을 곧게 펴는 중이다. 튀어나온 모퉁이를 썰어내어 움푹 들어간 기슭을 메운다. 느슨하게 굽어 돌던 둘레길에 고무줄 당기듯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도시 건물 사이로 감질나게 보이던 노을을 마음껏 만나고자 트인 바다로 달려왔으나 노을길이 짧아졌다. 천천히 바라봤어야 할 붉은 빛을 스치듯 지나치진 않았는지. 굴곡 없이 편편하게 다듬어져 가는 길에서 “사진사 양반, 절대 내 주름살을 수정하지 마세요. 그걸 얻는 데 평생이 걸렸거든요.”라던 나이든 영화배우의 말이 떠오른다. 보통은 얼굴 주름을 숨기고 탱글거리는 젊음을 보여주려 하는데 그녀는 오히려 나이 자국을 당당해했다. 주름이야말로 진정 빛나는 생의 노을이지 않을까.

끝물인 해당화 꽃잎은 시들해지고 수평선 너머로 드리웠던 빠알간 흔적마저 흐릿해진다. 바다로 던져두었던 시선을 거두니 칠산섬이 딸려온다. 지는 노을이 아쉬웠던 이가 두드렸을까. 대~엥 대~엥 대~엥. 바닷길 종루에서 나직하게 종소리가 울린다. 온몸으로 노을종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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