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AI의 심포니

2026-09-22 (화) 12:00:00 정유환 수필가
시를 쓰는 지인이 최근에 쓴 자신의 시를 보내왔다. 시에 곡을 붙여 예쁜 목소리의 가수가 노래하고 영어로 번역까지 했다. 적잖은 노력이 들어간 흔적이 보인다. 시를 감상하고 노래를 들으면서 댓글을 달았다. 작곡은 누구에게 맡겼어요? 가수는 누구예요? 답글이 올라왔다. AI에게 맡겼어요. 네? 반문하는 내게 그분의 담담한 답이 달렸다. 원하는 목소리와 성별을 말하면 AI가 알아서 다 해줘요.

매끄럽고 예쁜 노래가 더는 아름답게 들리지 않았다. 생명력이 없는 메마른 소리가 아름다운 시가 주는 감동을 앗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순 없었다. 자신의 글에 좋은 옷을 입혀주려 애쓴 작가의 ‘자기 글 사랑’을 뭐라 반박할 수 있으랴.

교회에서 최근 개강한 시니어 대학 AI반엔 수강생이 넘친다. 선착순에 밀려 다른 반을 신청한 학생이 부지기수다. 얼마나 많은 시니어가 AI를 배우고 싶어 하는지 보여주는 예다. 이제 AI를 모르면 화제에 끼어들기도 힘든 세상이 됐다. 세상에 뒤지지 않으려 뒤늦은 나이에 새로운 문명을 배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니어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내면서 한편으론 씁쓸하다.
 
이미 대부분의 문학 공모전에서는 AI가 쓴 글은 적발 시 제외된다는 공고를 빠트리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는 AI를 활용해 글을 쓰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어떤 저명인사는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으로 ‘의학 공부’나 ‘단순 암기식 교육(법률 공부 등)’은 미래에 큰 의미가 없다고 경고했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로봇이 사람보다 훨씬 수술을 잘할 것이고 법률 업무 또한 방대한 지식이 축적된 AI가 더 잘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의 말대로 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AI가 인간의 몸을 치료하고 수술하는 날이 올 것이다. 유쾌하지 않은 오싹함이 가슴을 지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앞날이 기대된다기보다 두렵다. 지금 당장 새로운 문물에 대한 신기함과 편리함으로 AI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게 남을까. 유튜브를 열면 거의 모든 창작물에 AI가 만들었다는 것을 표기하고 있다. 교회 광고에도 AI를 이용한다. 번거롭긴 하겠지만 목소리 정도는 사람의 소리가 들어가면 어떨까. 재미 수필문학가 협회에서는 회원들의 작품을 낭독 제작하여 유튜브를 통해 알리고 있다. 이마저 AI의 소리로 작품을 낭독하게 되지는 않을까, 노파심이 올라온다.

큰 사위는 작곡가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집 안에 있는 작업실에 앉아 곡을 쓰고 만든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리를 뜨지 않는다. 곡을 쓰는 일부터 믹싱하고 녹음하는 일까지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 글 쓰는 사람들은 종종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을 한다. 글쓰기뿐 아니라 음악 역시 끈질기게 앉아 쓰고 고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없을 터이다. 곡 하나를 완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듣고 고쳐야 하는지 AI, 그대는 아는가. 그런데 AI에게 말하면 곡도 노래도 입맛에 맞게 단시간에 만들어 준다니, 그런 세상이 되었다니 서글프다.

책상에 앉아 골몰하는 사위의 넓은 등 짝이 측은하다. 의료인인 작은딸 부부는 밀고 올라오는 AI의 기세를 누르고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자녀들의 앞일이 은근 걱정된다.

<정유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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