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미역국

댓글 2026-09-29 (화) 12:00:00 김영화 수필가
 
어언 세월이 흘러 근 반세기 전 일이다. 5월 초순이었지만 시카고의 봄은 외로운 산모에게는 몸도 마음도 살을 애이게 추웠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 선생에 물어서 미역국보다 더 한 것도 쉽게 만들 수 있겠지만, 그때는 요리책이나 어른들에게 일일이 배워야 했다. 음식이라고는 라면도 끓여보지 않았던 남편이 처음으로 자기 생각대로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그 미역국은 파, 마늘, 당근, 호박, 양파 등 온갖 채소들이 다 들어있는 미역 채소죽이었다. 나름 정성을 다해 끓여준 성의를 생각해서 먹어보려고 했지만, 두 수저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쉬지 않고 흐르는 눈물이 미역죽을 뜬 숟가락과 밥에 범벅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어머니가 그리웠다. 요리 솜씨, 바느질 솜씨 등 못 하는 것이 없는 우리 어머니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끓여주는 따뜻한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적, 아프거나 힘들어할 때마다 늘 안아주고, 싸매주던 할머니의 까끌까끌하던 손길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내가 어느 정도 일어서서 걸을 수 있을 때가 되어서 부터는 요리책을 보고 나 역시친구가 가져온 홍합을 넣고 난생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고 점차 요리 솜씨도 나아져서 지금은 우리 손주가 제일 좋아하는 맛있는 미역국을 만든다.

한동안 미역국은 지인들에게 주는 내 방식의 사랑 표시가 되었다. 아마도 만물박사, 해결사인 인공지능 이전까지 였을것이다. 주위에 산모나 아픈 사람을 만나면 미역국을 끓여다 주곤 했다. 명절이나 생일에 우리처럼 일가친척 없이 혼자 보내는 사람을 불러서 함께 미역국을 먹었다. 그때 시카고에서 첫 아이 낳고, 텅 빈 배와 허허로웠던 가슴을 채워줄 사랑의 미역국이 간절했던 일을 잊을 수 없어서다.

어디 미역국의 위로와 사랑이 없어서 눈물범벅된 밥을 먹는 사람이 없는지 눈을 돌려 좌우 주위를 살펴본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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