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4 (화) 12:00:00 김영화 수필가“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울어?”
두 살 된 손주가 한 달 전에 태어난 동생 곁에서 “응애응애” 울어대는 신생아의 손을 만지며 묻는다. 아이를 돌보아주는 할머니가 집에 가신 토요일이었다. 갓난아이는 배가 고팠거나 기저귀가 젖어서 울었을 것이다. 제 방에서 놀던 손주가 엄마를 부르며 동생에게 달려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제 마음을 말한 것 같다.
아이를 돌보아주는 이모할머니가 두 살 된 아이도 일 년 동안 키워주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다시 오셨지만, 이번에는 첫째 아이보다는 대부분의 시간을 갓난아이하고 시간을 보낸다. 손주는 할머니의 사랑을 빼앗긴 서운함 때문인지 엄마 아빠에게 더 매달리면서도 동생이 예쁘단다.
두 살배기 손주가 울고 있는 갓난아이의 손을 어루만지며 건넨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세상을 알 리 없을 어린아이가 동생이 우는 이유를 배고픔이나 불편함보다 먼저, ‘그리움’에서 찾다니…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일까?
그리움은 부재에서 시작된다. 곁에 있을 때는 당연했던 존재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단순히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첫 번째 안식처였을 것이다. 하루 종일 함께 놀아주고, 눈을 맞추고, 품에 안아주던 시간이 그의 마음속에 따뜻한 사랑으로 남아 있어서 잠시의 빈자리도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늘 바쁜 어머니 대신, 날 지극히 사랑하고 항상 내 편이 돼 주신 할머니 바라기로 살았다. 할머니가 친정 부모님 제사에 갈 때도, 시장에 갈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따라다녀서 내 별명이 ‘할머니 껌딱지’였다. 집을 떠나 시내에서 중학교에 다니게 됐을 때, 할머니 없이는 잠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내가 걱정돼서 할머니는 늘 우셨다고 했다. 나의 할머니는 오래전에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지만, 어쩌다 꿈속에서 할머니를 만나면 부둥켜안을 수 없어서 울다 깨곤 한다.
그리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워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의미다. 아이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사랑이고 축복이다. 할머니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스럽게 돌보았는가를 말해준다.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함께 손뼉 치며 노래하고 놀아주던 할머니가 동생을 더 안아줄 때 할머니에 대한 그의 서운함 앞에서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움과 연민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기에 사랑할 수 있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기에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받으려 한다.
사랑에도 전염성이 있는 것일까. 두 살배기 손주가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그를 돌보아준 이모할머니에게서 받은 사랑으로 울어대는 동생의 손을 잡아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울어?”
그의 작은 가슴에도‘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있었다니…
두 살 된 손주가 갓난아기 동생에게 건넨 따뜻한 마음으로, 누군가가 보고 싶어서 울어본 모든 사람을 사랑하련다.
<김영화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