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30 (목) 12:00:00 성민희 수필비평·소설가기어이 장로님이 가셨다.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들은 지 며칠 안 되었는데 벌써 가시다니. 92세라는 나이가 얼마나 아슬아슬 벼랑 끝 걸음인지 실감이 난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가족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영정 앞에는 드문드문 흰머리가 섞인 60대의 자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 곁에는 손주들이, 맨 끝자리에는 서로 주먹을 맞부딪치며 킥킥 웃는 꼬마 증손주들까지 앉았다. 한 사람의 뿌리에서 세대를 건너며 뻗어나간 가지를 본인이 떠나는 자리에서 본다.
설교가 끝나고 곧이어 추도사를 할 시간이다. 강단을 내려가는 목사님이 다소곳이 허리를 굽히며 두 팔을 내민다. 그 몸짓에 내 시선이 따라가니 한발 한발 조심스레 땅을 짚으며 걸어 나오는 백발의 노인이 보인다. 목사님의 부축에 온몸을 싣고도 좌우로 흔들리는 어깨. 바싹 마른 몸을 감싼 회색 양복이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 훌렁거린다. 겨우 온몸을 강대상에 기대어 선 노인이 호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다가 훅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자네가 먼저 갔구먼. 내가 먼저 갈 줄 알았는데... ”
혼잣말처럼 웅얼거리고는 눈가를 닦는다. 마이크를 쥔 두 손이 가늘게 떨린다.
“이 사람과 나는…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한마디 하고는 숨을 내쉬고 또 한마디 하고는 추억에 잠기듯 잠시 멈춘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란히 걸어 다녔고, 서울의 대학도 함께 다니느라 하숙방도 같이 썼다고 한다. 낯선 미국 땅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학을 왔다. 문화도 말도 낯선 곳에서 서로는 유일한 고향이었고 가족이었다. 노인은 안경 너머로 눈물을 훔치며 말을 잇는다.
“국민학교에서 만나 여든 해가 넘도록… 이 사람 없이 산 날이 없었습니다.”
그는 강대상을 짚은 손에 힘을 준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두 개구쟁이가 이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인이 되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영영 목소리도 나누지 못하고 만나지도 못할 이별이다.
“잘 가게 친구. 나도 곧 따라감세.”
저 몸으로 어찌 여기까지 오셨을까 했는데. 차마 혼자 보내기가 애달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려고 오셨구나. 미국 유학을 떠나는 친구의 뒤통수에 대고 훗날 만나자고 다짐했던 것처럼.
그들은 긴 인생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스쳐보냈지만, 어린 날 손잡고 올랐던 기차에서 단 한 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 여든 해가 지난 후 비로소 맞이하는 오늘의 하차는 단순히 역 하나를 지나는 일이 아니다. 평생을 함께한 옆자리가 통째로 비어지는 일이다. 이 기막힌 현실을 노인은 어떻게 견뎌낼까. 혼자 남은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스쳐 가는 낯선 풍경을 어찌 홀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는 비어 버린 옆자리에 친구를 그대로 앉혀둔 채 남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밤이 오면 여전히 그의 목소리를 베개 삼아 잠이 들지도 모른다.
“그나마 자네는 배웅해 주는 내가 있으니 행복하네. 잘 가게.”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영정 속 사진은 빙그레 웃고 있다.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가는 노인의 등을 오래 바라본다. 오늘 장례식에서 만난 가장 깊은 슬픔은 먼저 떠난 사람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이 짊어진 상실, 그 무게다.
<성민희 수필비평·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