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 / 청랑
내게 숲은 성지다. 세상의 들판에서 지친 나를 반기고 위안을 주는 곳이다. 마치 나만이 간직한 비밀스러운 샘터 같은 곳. 나는 그곳에서 삶의 민낯을 모두 발설하는 고해성사라도 드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집 가까이 우이령이 있다. 소귀 고개, 무엇이든 편안하게 들어줄 것 같은 고갯길이다. 이곳에서의 '우이독경'은 소를 모독하는 무례한 말이다. 덩치에 적당한 귀는 얼마나 의젓하고 점잖은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인간의 편향된 귀에 비하면 또 얼마나 정직한가
맨발로 걸으면 포슬거리는 흙의 감촉이 살갗을 간질인다. 작은 새들이 낮게 날고, 시절에 맞춰 피는 온갖 꽃과 나무의 사열을 받으면 무겁던 발걸음은 어느새 경쾌해진다. 아카시 꽃향기는 더 짙은 내음으로 꿀벌을 모으고, 보라색 싸리꽃과 꽃을 가장한 산딸나무의 앙증스러운 하얀 '포'들이 골짜기를 환히 비춘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위용을 자랑하는 나무 아래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가늘고 여린 나무들의 옹색한 몸부림도 보인다. 잠시 길옆 음습한 곳으로 눈길이 머물면 민달팽이가 시간은 제 편이라는 듯 여유롭게 이끼를 보듬고, 고사리 쇠뜨기 같은 양치식물도 나 여기 있노라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때는 높은 산만 찾았다. 번개와 천둥, 세찬 바람과 소낙비, 그때의 나에게 희열과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눈보라 속에서 바윗덩어리만큼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맨손으로 바위산을 오를 때도 있었다. 발톱이 빠지고 발목이 삐끗거려도 오르고 또 올랐다. 산은 정복할만하다고 자만한 탓일까, 결국 큰 사고를 내고 병원에 실려 갔다.
IMF, 국가부도는 곧 가정의 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안식처로 알았던 결혼생활은 진흙 펄에 나를 내동댕이 쳐버렸다. 딸의 불행으로 애면글면하던 친정엄마는 큰 병을 얻어 기나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내 삶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그럴수록 절대적인 용기가 필요했다. 불가항력으로 짓누르던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려면 나 자신을 그만큼 더 혹독하게 다스려 강단剛斷을 키워야 했으니까.
생명력을 과시하는 것들의 구석에서 보이지 않던 썩은 그루터기도, 바위 틈새에서 꼬부라지고 무릎마저 꿇은 어린 소나무도 보이기 시작했다. 생명의 존귀함이 내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산은 그렇게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 스승으로 다가왔다. 칼바람 부는 한라산 겨울등반도, 눈보라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철원에서 시작되는 한북정맥도, 지리산 종주도 겁 없이 해낼 수 있었다.
내 속말을 들어줄 귀가 많은 우이령이다. 오랜 기간 발길이 끊겼던 그곳은 숲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여러 종류의 나무와 거기에 매달린 수많은 잎사귀, 오솔길에 드러난 돌부리, 우직스러운 바위며 이름 모를 야생초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만 열면 그것들은 대가 없이 받아주고 돌아 나올 땐, 생기마저 얹어준다.
어쩔 수 없이 남의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공중목욕탕 비좁은 사우나 안에서 걸러짐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 아침을 끝낸 여인들이 참새 방앗간 동네 카페에 모여 재잘대는 이야기들. 다이어트와 음식과 어젯밤에 본 드라마가 재연되고 자식 걱정과 남편의 흉쯤은 기본 안주로 깔린다. 솔깃한 소식에 쫑긋 귀를 모으지만, 그때뿐 공허한 말들은 메아리로 사라지고 만다.
날빛 고운 날, 딸과 함께 우이령 길을 걸었다. 요즘 수심 가득한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모처럼 같이 걷자는 내 제안에 딸은 순순히 따라나섰다. 그즈음 다니던 직장을 대책 없이 그만둬 몹시 불안해하던 터였다. 나의 궁금증에 날선 대답으로 자주 말문을 닫게 하는 까칠한 성격의 딸이다 보니 서로 말없이 길을 걸었다. 한동안 묵비권을 행사하던 딸과 맞잡은 손에서 온기를 느끼는 순간,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둔 것은 같은 과 선배의 인격모욕과 갑질에 지쳐서라고. 광고 회사는 밤낮이 없고 출퇴근 시간 또한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였다고. 이제 나이도 삼십 대로 접어들었고 친구들은 결혼이라는 나름 안정된 세상으로 옮겨 앉았는데 자신은 허허벌판 한가운데 홀로 선 심정이라고. 어미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졌으면 싶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동안 '왜?'로 다그치기만 했지 '그랬구나.' 하며 품어줄 아량이 부족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자식들은 거친 세상에서 나처럼 도망치거나 숨지 말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기를 빌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헤아려주기보다는 '왜, 왜 그랬어' 하며 매번 등을 떠밀기 일쑤였다. 속상한 마음에 말을 앞세웠지만 이해하고 들어줄 귀는 늘 뒷전이었다.
며칠째 강한 태풍이 불어닥쳤다. 걱정되어 찾은 우이령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평온했던 숲은 여기저기서 신음했다. 산꼭대기에 있던 우람한 나무들이 속절없이 부러지고 뽑혀 널브러진 채로 패잔병의 몰골처럼 참혹했다. 온몸으로 세상과 맞서던 달팽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청개구리며 오색딱따구리 소쩍새와 수리부엉이는 모두 어디로 피했을까. 말없이 우직하게 지켜본 우이령은 또 얼마나 애달팠을까. 어린 나무들의 비명을 어미의 마음으로 들었을 테지. 하지만 나는 우이령의 치유와 복원 능력을 믿는다. 불행 없이 어떻게 행복을 알 수 있을까. 고통 없이 어떻게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걸음마다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 속말도 다 헤아려주는 우이령, 딸과 함께 다시 이 길을 걷게 되면 뭐라 말해줄까. 들어줄 귀만 활짝 열면 선선히 그 답을 줄 것 같다. 나는 그저 우이령에 내 속살을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태풍으로 한동안 막혔던 우이령이 다시 트였다.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지금,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길로 다시 태어났다. 희망의 싹 하나가 울창한 숲을 만들 듯 딸도 푸른 씨앗 하나 지녔으면 싶다. 어미의 간절한 마음 때문일까, 어디선가 울리는 워낭소리가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