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우산 쓴 여자 / 청랑

 

 

햇살이 보자기만큼 남은 오후, 저만치 한 여인이 검은 우산을 쓰고 걸어오고 있다. 얼른 손바닥을 펴 보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궁금해 자꾸 뒤돌아보았다.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보냈던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바늘구멍만 한 빛조차 스며들 틈 없는 블랙이었고 코로나까지 덮쳐 날마다 살얼음판이다. 그러나 어디로 터전을 옮겨야 할지 막막했다. 전국 지도를 쫙 펼쳐놓았다. 눈을 감고 지도 위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곳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이른 봄 천마산을 찾았다. 언제나처럼 숲은 안온하다. 시선 닿는 곳마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피어난 야생화가 화사하다. 그 모습을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았다. 이곳이라면 내 삶에 작은 꽃이라도 피워낼 거 같았다. 옮겨갈 곳이 정해지니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천마산 주변을 알아보았지만, 나온 집이 없었다. 며칠 지나 부동산에서 연락해 왔다.

“이곳은 코로나 청정지역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코로나가 뭔지 모르고 살아요.

이런 집은 없어서 나오자마자 금방 나갑니다.”

청정지역과 금방 나간다는 말에 덥석 계약해버렸다.

붉은 벽돌집은 도타워진 봄 햇살을 가득 품고 있었다. 나의 마음을 끈 건 발코니가 딸린 이층 방이었다. 굳이 창 넓은 찻집에 가지 않아도 분위기 좋은 카페가 될 터였다. 이곳이라면 오랫동안 기생했던 내면의 음습한 싹도 사라질 거 같았다. 저 멀리 연둣빛 숲에 둘러싸인 마을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싱싱한 푸성귀와 온갖 꽃을 가꿀 수 있는 넓은 마당도 있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온다고 했던가. 이사하고 며칠 되지 않아 나의 야무진 꿈은 한낱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었다. 부동산 사장 말은 다 허풍이었다. 전에 살던 할머니가 이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 후로 6개월 동안 방치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러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누런 털이 뭉쳐 나왔다. 베란다 창은 여닫을 때마다 관절 꺾어지는 소리를 냈고, 나무로 된 테라스는 눈비를 맞아 쿨렁거렸다. 또 시커먼 벌레들이 기를 쓰고 집안으로 들어왔고, 파릇파릇했던 풀포기는 어느덧 쑥대밭이 되었다. 폐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사 오고 몇 개월쯤 되었을까. 드디어 집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갈빛 물이 주방 테이블 위에 떨어져 있어 냄새를 맡아보고 맛도 보았다. 분명 간장은 아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천장에 물방울이 박쥐처럼 매달려 있었다. 급기야 물방울은 몸집을 늘렸고 왼쪽에서 떨어지던 물이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두더지 잡기 게임 같았다. 바닥에 쓰레기통은 물론 스티로폼 통, 돗자리와 신문지까지 늘어놨다. 주방은 물 폭탄을 맞은 전쟁터였다.

집주인은 중국에 살았다. 그래서 이 집을 지은 건축업자가 관리했고 마을에도 그가 지었다는 집이 여러 채였다. 하루가 멀다고 하자 보수 때문에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곧 누수전문업체 사장을 불러들였다. 그는 얼굴빛이 불콰하고 흰머리 더부룩한 칠십 초중반쯤 되어 보였다. 선뜻 신뢰가 가지 않았다. 발을 옮길 때마다 옷에서 흙과 시멘트 가루가 떨어졌다. 잠가 놓았던 물탱크와 보일러 스위치를 올리며 누수는 탐지기로 금방 잡힌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화장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누수탐지기를 대었다. 추가 움직이는지, 물소리가 감지되는지 온 신경을 곧추세웠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잡아내지 못했다. 곧 변기와 세면대가 뜯기고 멀쩡한 타일 바닥이 깨부숴졌다. 윤기 자르르한 거실 나무판까지 뜯어냈다. 시멘트 가루로 집안이 뿌옜다. 저녁이 되자 장갑을 탁탁 털며 짐을 챙겼다.

“내 30년 동안, 만 채도 넘게 공사했지만, 이렇게 조악한 집 설계는 처음이 네요. 아무래도 누수 찾는데, 시간이 걸리겠는데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전문가라며 건축업자가 그의 손을 잡고 오지 않았던가. 요즘 밥도 제때 못 먹을 정도로 찾는 곳이 많다며 생각 같아서는 다른 사람한테 위임하고 싶다 했다.

“아니 사장님! 여기 사람 사는 집이에요. 집을 이 지경으로 해놓고 다른 사람한테 위임이라니요. ”

“내가 오죽이나 바쁘면 못하겠다 안 해요. ”

그 소리에 내 인내심이 팥죽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애원하고 협박해서(?) 이틀 후에 오겠다는 약속을 겨우 받아냈다.

밥하고 설거지하기 위해서, 빨래하기 위해서 밸브를 열었다 잠갔다. 숨구멍을 열어준 것인지 물줄기는 더 거세어졌다. 우비를 입고 큰 우산을 어깨 위에 받쳤다. ‘주방에서 우산 쓴 여자’가 된 것이다. 내 가슴골을 타고 물인지 눈물인지 흘러내렸다.

원인은 온수관이 터져서였다. 배관에 금이 가 그 틈새로 물이 새어 나왔다. 비좁은 공간에서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그를 보자 ‘남편이 저토록 고생하는 걸 부인은 알고 있을까. 지극정성으로 남편에게 잘해야 할 텐데….’ 뜬금없이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깜깜할 때 일어나 꾸역꾸역 같은 일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팔자도 운에 따라 결정되는 걸까. 내게 측은지심을 불러온 그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간식을 챙겼다.

시멘트가 마르기를 기다리다 보니 또 며칠이 걸렸다. 다행히 혹한의 겨울이 시작되기 전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완벽하게 고쳤으니 염려 말라고 큰소리쳤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주방에 비가 내렸다. 내 속에서 칼을 든 백정이 날뛰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누수전문업체를 선택했다.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았다. 다시 화장실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번에는 1층 주방 천장까지 뜯어냈다. 먼저 공사는 엉터리라며 일한 사람의 양심을 탓했다. 재질이 저렴한 배관을 썼기 때문에 터진 거였다.

공포는 현재 진행형인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방에 서면 천장부터 시선이 갔다. 마치 천장 깊숙한 곳에 괴물이 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했다.

칠십 언저리쯤 되면 전원생활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과연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일까. 만약 운명이라고 생각한 그곳으로 이사했다면 삶은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것. 가끔 다른 삶, 다른 곳을 상상해 본다. 멀리서 좋아 보인다고 성급하게 내 것으로 만들지는 말자. 어쨌거나 오지게 살아봤던 전원생활. 이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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