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꽃 / 오승익

 

낯선 덩굴이 시골길 돌담을 켜켜이 휘감고 있다. 마삭줄이나 으름 줄기 비슷하게 생긴 것이다. 덩굴 틈새로 옹기종기 하얀 꽃들이 활짝 피어 벌과 나비들을 유혹한다. 무슨 꽃일까. 궁금 탓에 핸드폰으로 몇 컷 찍고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고 지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시계꽃이었다. 꽃 모양이 마치 시계처럼 생겨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시계꽃을 보니 홀로 시골집을 지키고 있는 둥그런 벽시계가 떠올랐다.

“또깍! 또깍!”

못 하나에 자신을 맡겨 놓고 쉴새 없이 내쉬는 생명의 소리다. 자명自鳴을 벗 삼아 홀로 텅 빈 시골집을 지킨다. 유일한 벗이었던 어머니가 홀연히 요양원에 가시고 나서 시계는 외톨이가 되었다.

 

요양원에 가시기 전, 어머니는 밤잠을 자다가도 아침이 되어서도 낮에도 몇 번이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 시인은 “초침은 뛰어가고, 분침은 걸어가고, 시침은 엉금엉금 기어간다”라고 했다. 이들을 쳐다보며 어머니는 “아이구 시간은 무사 경 안 감신디사”하며 종종 투정을 부렸다.

 

자식들이 곁을 떠나고 나자 어머니 홀로 시골집을 지킨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처음 어머니의 방에는 ‘따르릉’거리는 조그만 탁상시계가 하나 있었는데, 나중에 눈에 잘 띄고 초침 보행 소리가 큰 둥그런 벽시계로 바꿔드렸다. 그때부터 벽시계는 어머니의 유일한 말벗이 되었다. “지금 몇 시냐?”, “왜 그리 더디 가냐?”, “왜 밤은 이리 기냐?”. 카이로스의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하지만 시계는 제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변함없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존재의 표현일까. 닭의 울음소리 대신 우주의 법칙에 맞춰진 시계. 어머니는 그런 걸 모를 리 없지만, 긴긴 겨울밤은 깨고 보면 또 밤이다. 투정을 부리면서도 하나뿐인 벗, 시계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몇 해 전, 설을 마치고 난 다음 날 아흔 중반을 넘으신 어머니가 갑자기 거동이 어려워졌다. 전날까지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셨는데…. 사람의 나이가 초고령에 이르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걸 황망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형제들이 날마다 번갈아 가며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 한 달이 되어가자 모두가 지쳐갔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일이었다. 하루는 누님이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어머니에게 여쭈었다. “어머니, 요양원엔 안 가시쿠과?”.

어머니는 평소 “내가 집에서 죽지 그런 데를 왜 가나?”며 부정적이셨다. 그런 마음을 알고 나서는 굳이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줄곧 지내왔다. 하지만 지금, 형제들의 일상이 흐트러져 가고, 때를 맞춰야 하는 일들도 속수무책 시기를 놓쳐가고 있었다. 아직 인지능력이 초롱초롱한 어머니도 이를 직접 보고 있었다.

 

용기 내어 묻는 큰딸의 물음에 뜻밖에 “나 요양원 가키여!”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달 정도 기다린 끝에 정든 집을 떠나 한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요양원의 엘리베이터 안으로 손을 흔들며 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 평소 싫어하던 곳에 들어가야만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돌아서 나오는 내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어쩔 수 없는 불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쉬움과 서운함, 절망감이 깃들어 있을 어머니와는 달리 나에게는 책임을 다했다는 홀가분함이 마음속에 흐르고 있었다. 결국은 내 마음자리 편해지려고 모신 셈이 되었다.

 

무탈하게 요양원 생활을 시작한 지 한 해 정도 될 즘,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졌다. 별안간 밥이 물리고 정신이 어질거리는 등 몸 상태가 가라앉아 갔다. 긴급히 종합병원의 중환자실로 옮겨져 산소호흡기를 달고 응급조치를 하는데 산소 수치가 계속 내려가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이란 게 이러한 것인가.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치료가 힘들 경우 인공호흡기를 뺄 것인가에 대해 각서를 요구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온 듯하여 가족들에게도 황급히 연락했다.

 

가족들이 모이자 촌음을 틈타 병원에서 필요한 어머니의 용품을 가지러 시골집엘 갔다. 텅 빈 집에 “도~각~! 도~각~!” 홀로 집을 지키던 시계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천천히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시계마저 어머니와 절망의 호흡을 맞추어 가고 있는 듯했다. 순간 어떤 영감이 퍼뜩 떠올랐다. 얼른 가게로 뛰었다. 파워 건전지 두 개를 사다 꺼져가는 생명줄을 붙잡았다. 기운을 얻은 시곗바늘이 다시 힘찬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우연이었을까. 기적이었다. 고비를 넘긴 어머니가 다음날부터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며칠 후 어머니는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다. 입원한 지 보름이 가까워져 올 무렵, 어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상을 회복하고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심전심, 삼십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거리에서도 어머니와 시계는 생명의 숨결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상호 조응일까. 그동안 수많은 시간 동안 서로 나누어 왔던 애증이 시공을 넘어 영적으로 이어진 것 같았다.

 

안정을 되찾은 후에도 늘 어머니와 시계의 생명에 신경이 곤두선다. 묵묵히 앞을 향해 걸어가는 바늘 삼 형제. 하루에 두 번 만나 서로가 살아 있음을 스스로 확인한다. 누군가 먼저 멈추어 선 순간, 다른 누구의 생명도 멈출 것만 같다.

 

텅 빈 시골집 어머니의 침대에 누워 시계를 바라본다. “또깍! 또깍!”. 시계 소리가 경쾌하고 힘차다. 크로노스의 시간이 언제 걸음을 멈추어버릴까, 노심초사하는 하루가 또 지나간다. 먼 길 여행을 떠나는 날, 어머니의 품에 시계꽃 한 송이를 안겨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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