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뒤 맑음 / 박영란
나를 포함해 세 여자가 집을 떠났다. 한 아파트에 30년을 살면서, 함께 된장을 담그고 반찬 종지가 오가고, 아이들은 커서 결혼을 하고 그 아이들이 아이를 낳는 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젊은 새댁에서 할머니가 되었다. 이쯤 할머니가 되어서야 비로소 감행한 것은 이틀의 여행이었다. 늘 벼르다 만 것을, 어느 날 카톡창에서 순식간에 이루어진 결행이었다. 숙소와 비행기 표 예약은 어떤 번복이나 취소가 어렵다는 다짐이었다.
남편이라는 남자들이 없어서 불편한 것은 낯선 지형에서 운전해야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없어서 좋은 게 더 많았다. 집을 두고 나온 여자들은 그 해방감만으로도 해맑았다. 드높은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 둥둥 떠다녔다. 이 모종의 기분을 알 턱이 없다. 남편을 포함해서 당사자인 우리들조차 50여 시간에 불과한 이 홀가분한 자유를 말이다. 집안일과 남편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게 그렇게 구속이냐고 묻고 싶겠지만.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귀염을 다 받고 사는 강아지도 집 밖을 나가면 꽁지를 흔들고 야단 아닌가. 차려주는 밥에 아무 일 하지 않고 그냥 있어 보는 것. 이 생각 하나로 세 여자는 비로소 그렇게 뭉쳤다.
공교롭게도 숙소의 이름은 ‘비로소433’ 이었다. 4′33″는 미국의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가 피아노 연주를 기다리는 관객들 앞에서 피아노 뚜껑을 연 다음 가만히 앉아 있다가 뚜껑을 닫아버린 연주 시간으로 유명하다. 4분33초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고요와 정적 속에서 비로소 ‘소리’를 듣게 하겠다는 것이 연주가의 의도였다. 공연장의 연주가 아닌 내면의 소리에 집중케 했다. 우리가 머문 팬션의 주인장도 ‘비로소433’ 안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일상을 떠나 잠시 머무는 손님들에게 비로소 침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배려와 이곳은 그런 곳이라는 소신이 은근히 전해졌다. 마치 미풍처럼 스쳐 간 그 느낌은 펑 뚫려 달아나려는 마음에 살짝 무게감을 얹어주는 기분이었다. 낯선 곳에서 머물고 싶었던, 딱 그런 곳이었다.
우린 소리없이 환호하였다. 오붓한 식당의 붉운 벽면은 책장으로 만들어져 그 앞에서 서성이게 만들었다. 꽂혀있는 많은 책 속에서 내 아끼고 좋아했던 책들을 발견했을 때 반가운 스침과 환호가 지나가고 이어 몇 권씩 책을 뽑아 들고 객실로 갔다.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방.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꾸어진 넓은 정원의 꽃들과 나무들이 창으로 내려다보였다. 더 바랄 게 없었다. 애초 오름을 오르겠다는 욕심도 미술관에 가자는 우리의 계획도 다 부질없었다. 각자 책을 읽다가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커다란 창에 우람한 후박나무가 가득 차 있고 잎새 사이로 서광이 비쳤다. 동이 틀 무렵 고요한 빛이 방안의 사물들에 스며들고, 새가 와서 우짖는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누워있었다. 부지런한 친구가 산책하자고 성화를 부리면 점퍼 하나 걸치고 오솔길을 빠져나가 바닷가로 향했다.
청명한 가을의 위미리 바다는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이었다. 광활하고 맑은 푸른 빛에 취해 포구를 끝없이 걸었다. 산길 만나고 해안과 마을을 돌고 돌았다. 땀이 돋을 쯤 제 자리로 돌아오면 식단 위에는 따뜻한 스프와 갓 구운 빵과 샐러드 그리고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식사를 차려놓은 아침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상이 살짝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때 그 흔들어 깨우는 감동은 우리만이 아는 기쁨일까. 이 소소한 감격을 공유하는 것. 역시 남편과는 어렵다.
우리의 화두는 그런 것이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밤하늘의 정원에서 문득,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하게 되는 이야기는 ‘왜 남편과는 이런 대화가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사소한 내용일망정 이야기의 꼬리가 이어지고 맞장구를 쳐주고 자신의 마음을 끄집어내어 공감을 얻는 그 기본이 말이다. 그래서 여자들끼리 몰려다니는 풍속도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것이 우리의 아쉬움이었고, 토로였다.
멋진 팜퍼스 나무가 심어진 정원을 걷다 보면 바닥 곳곳에 적혀있는 글귀들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고 이렇게 무언가를 데려가고 다시 무언가를 데려온다고 나무가 그랬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 이런 문장들이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 아래서 수런거렸다. 주인장이 쏟아놓은 글귀를 주워 담으니 발끝에서 마음으로 닿는 소리가 있었다. 뭔가 훅 치고 들어와서는 가만히 위로해 주는 따뜻함이 나를 멈추어 세웠다. 외면하고 싶은 것, 괴로운 것, 감사한 것들이 정녕 그냥 흘러가지 않았고 지금의 나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정리는 ‘4분 33초’보다 더 빠르게 영혼을 스쳐갔다. 삶의 나사를 조금 풀어보는 일. 그것이 여행이었고, 그 틈 사이로 내가 숨 쉬고 있는 지금이 보였다.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