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관 <인간관계의 애정을 회복하는 글> / 박종희

 

수필을 쓴 지 어느덧 30여 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필을 이야기하라면 아직도 머뭇거리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나에게 수필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에게 수필은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언제인가부터 수필을‘방부제’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십 대 후반까지는 수필이 길을 잃지 않게 나를 이끌어 준다고 생각했다. 그 길이란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점검하고 나를 각성 [覺醒] 하게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환갑을 넘기면서 이제는 수필이 ‘방부제’ 같다. 내가 고여있지 않게 하고, 어떠한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상하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 수필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백일장을 다녔지만, 정작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백일장을 다닌 습관 때문에 수필을 쓰면서 나는 문학 공모전을 스승으로 삼았다. 문학상 도전은 내 글을 평가받을 수 있는 유일한 관문(關門)이었다. 나만의 규칙을 정했는데, 공모전에서 낙선하면 퇴고의 시간을 늘리고 당선되면 내 수필의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도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여전히 수리되지 않은 언어들과 빈약한 사유가 내 발목을 잡는다.

나는 형용사와 부사보다 명사와 동사를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출가·가리개·소반·솔기 등 내 수필 제목은 유독 명사가 많다. 어느 날 우연히 명사 하나가 콕 박힐 때가 있다. 용케도 내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 명사는 보통 서너 달을 안고 다닌다. 머릿속에서 문장이 다양해지고 주제가 살아날 때까지 구워삶아 내 삶에 입히면 수필이 된다. 무심하게 흘러간 시간도 의미를 붙여 만져주면 풍경이 된다. 글이 나를 대변하듯 내가 살아가는 모든 일상은 수필이 된다.

속이 소란스럽고 분분해질 때도 노트북을 켠다. 실타래를 헝클어놓은 것처럼 머릿속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정리하고, 마음속에 고인 것들을 끄집어내면 편안해진다. 사는 게 각다분해 삶을 외면하고 싶을 때도 지나간 추억의 온기들을 들추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자기 객관화를 거치는 수필 안에서는 미움도 원망도 없다. 때문에 소원해졌던 이들과 인간관계의 애정을 회복할 수 있다.

 

책을 내는 것이 두려워 등단 후 11년 만에 첫 수필집《가리개》를 내고 다시 8년이 지나서 두 번째 수필집《출가》를 발간했다. 두 권 다 내 글에 주체가 되어주신 부모님 이야기와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담은 글들이다. 고백하건대, 부끄럽고 두려워 두 번째 수필집은 아직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책을 내면서 얻은 것도 있다. 두 번째 수필집을 엮는 과정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었고 출판이 한 인간에게 주요 변곡점이 되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어는 인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배운다고 하는데 수필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쓴다고 생각한다. 수필이 공감의 문학이고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체가 덜 세련되더라도 연민이 담긴 글을 좋아한다. 작가는 사람을 읽는 작업이고 수필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기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없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시대에 따라 수필도 진화하고 변천사를 겪는다. 많은 수필이론과 문제작들이 쏟아지지만 나는 그냥 이제껏 써온 내 방식대로 수필을 쓸 것이다. 내가 남의 수필을 잘 안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수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만, 수필 한 편을 읽고 나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수필 한 편이 한 사람의 인생은 바꾸지 못해도 그 글을 읽는 사람은 조금씩 따뜻해진다는 것을 믿는다.

“상처가 흉이 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상처가 빛날 수 있는 것은 글밖에 없다”는 말에 무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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