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사냥 / 구활
달빛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처음에는 옛 선비들의 시에 나타난 달이 무작정 좋더니만 날이 갈수록 하늘에 덩그렇게 뜬 달이 그렇게 수가 없다. 요즘은 부스럼처럼 하늘에 달이 돋으면 월월교月月敎 신도가 된 것처럼 맘속으로 경배를 드린다. 때로는 함께 노닐어 보려고 빠져 있는 동쪽 강을 향해 무작정 걸어 나가기도 한다.
초승달보다는 반달이 좋고 반달보다는 보름달이 좋다.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걸출한 시를 지은 이백의 영향이기도 하고 음력 칠월 보름인 기망날 황강에서 뱃놀이를 즐긴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탓이라 해도 무방하다. 괜히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실눈 같은 그믐달이 좋으니.” 하고 우겨대지만 만월의 아름다움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옅은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기운 반달이나 슬픔이 묻어있을 것 같은 페르시아 단도의 굽은 칼날 같은 초승달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밤하늘을 좋아했다. 밤하늘에는 우선 달이 있고 무리지어 흐르는 은하가 있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움직인다고 했는데 별밭 속의 별들도 흐르다가 지치면 별똥별을 만들어 팔매질을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알퐁스 도데 선생은 <별>이란 글을 쓰면서 목동과 주인 집 소녀의 가슴 속에 푸른 별 하나씩을 심어 주었듯이 내 가슴 속에도 오래전부터 찬란한 밤하늘이 둥지를 틀고 밤마다 무수한 얘기들을 풀어놓는다.
외박하고 돌아온 누이의 뿌연 얼굴 같은 낮달은 좋아하지 않는다. 달이라면 그래도 불그스레한 화장기 있는 얼굴에 계수나무 가지로 약간의 우수를 드리워야지 선크림만 잔뜩 처바른 그런 모습은 딱 싫다. 몇 년 전인가, 음력 칠월 보름에 맞춰 지리산 종주에 나선 적이 있다. 첫날은 성삼재에서 연하천을 거쳐 벽소령 산장에서 짐을 풀었다. 산행의 기쁨을 술 한잔으로 추슬렀더니 그 아름다운 기억이 새벽 두 시에 오줌 기운으로 돌아 나왔다.
산장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밖으로 나왔다. 초저녁에 만나지 못한 서 말들이 가마솥 뚜껑보다 더 큰 백중 달이 바로 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얼마나 밝고 환하던지 신문의 작은 활자도 안경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감격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 하나님, 제게 이런 축복을 내려 주시다니요. 능선의 밤공기는 초겨울처럼 쌀쌀했지만 산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밤 달과 함께 즐기지 못하면 평생토록 후회 할 것 같아서였다. 달과 나의 거리는 내 긴 팔을 뻗으면 손끝에 닿을 듯이 정말 가까웠다. 이렇게 큰 달이 뿜어내는 아우라의 축복을 내 혼자서 받는 것은 난생처음이다.
또 한 번은 진묵대사의 게송 한 줄을 읽고 강화 석모도 보문사로 달려간 적이 있다. 보문사 눈썹바위에 올라 해명산을 거쳐 전득이고개로 달려가면 바로 석모도 선착장으로 내려갈 수가 있다. 해 질 녘 능선 길 종주 중에 만날 수 있는 태양이 다비를 마치고 열반에 드는 일몰 장면은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절경이다. 개펄 너머로 번져가는 짙은 암회색 톤의 바다 풍경은 한두 개의 물감만으로 쓱쓱 문질러 그린 정말 담백한 그림이다. 거기에다 떠오르는 보름달을 마지막 고갯마루에서 볼 수 있다니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대사의 게송은 “달 촛불 구름 병풍에 바다는 술독이 되네.”라는 것이 었는데 그게 가슴에 불을 질렀다. 이렇게 아름다운 달과 구름과 술의 유혹을 뿌리친다면 어떻게 풍류를 논할 수 있겠는가. 마음먹고 달려갔으나 마침 하나님은 동네 주막에 나가 계시는지 일몰은커녕 월출조차 보여 주지 않았다. 다만 머드팩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있는 무채색의 서해 개펄만 지겹도록 보게 하여 그 기억만 선연할 뿐이다.
달을 볼 때보다 못 볼 때가 더 많은 나의 달빛 사냥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기도하듯 달맞이에 나선다. 내가 월월교에 대한 신심이 더 깊어진 까닭일까, 아님 내가 맛이 가도 한참 간 것일까. 요즘은 한술 더 떠 붉은 달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풀벌레 소리에 맞춰 춤도 추고 싶어진다. 여치와 배짱이란 놈들은 어미가 작년에 불렸던 그 노래를 배운 적이 없는데도 음정 박자 하나 틀리지 않고 시원스레 불러 젖히겠지.
지난해에도 칠월 기망에 맞춰 변산의 월명암月明庵에 뜨는 달을 보기 위해 이박삼일 일정으로 서해 쪽으로 떠났다. 낮시간을 도반들과 함께 선유도에서 보내고 돌아오니 암자에서 달을 즐길 시간이 어긋나 버렸다. 밤안개가 깔린 급경사 하산 돌길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할까봐 바짝 흘리며 올라갔던 산길을 되돌아 내려오고 말았다.
나는 여태 세상에 편들며 살아왔는데 달은 왜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는가. 달이 메르스 같은 전염병에 걸려 위독해지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지만 암자의 달은 나에게 술상 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나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 적혀 있는 ‘월명암 달빛 사냥’은 여전히 미완의 소나타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