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을 뒤로 하고

 

                                                                                                                                        박 유니스

 

인천공항 출국 게이트 밖에 눈이 내린다.

 

삼 층 출국장 끝, 대형 유리창 밖 하늘에 흰 눈발이 분분히 부딪혀 흩어진다. K와 걷던 이화동 골목길에 내리던 눈발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그 길에서 찾아 들어간 어느 찻집 유리창에 부서지던 그 눈발이다. 며칠 전 동창 모임에서 K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탑승객 여러분, 눈 때문에 탑승이 지연되겠습니다. 탑승객들은 별 동요 없이 눈 내리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봄가을에만 찾던 한국을 처음으로 초겨울에 갔다. 서울의 멋진 설경을 기대했지만 11월이 다 가도록 눈 소식이 없더니 떠나는 오늘 새벽부터 눈이 내린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내리는 첫눈!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마가리로 가자.’ 백석이 나타샤와 가려고 했던 마가리는 어디쯤일까. 

 

대학에 입학하던 해, 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K를 처음 만났다. 전공과 교양 과목 여러 강의를 함께 들었지만 마주칠 때마다 서로 목례만 하고 지나치곤 했다. 1학년을 마치고 K는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군대에 갔다고 했다. 몇 마디 나눠 본 적도 없는데 강의실이 텅 빈 것 같았다. 다시 개강하고 교정의 개나리 가지마다 노란 봉오리가 막 터질 무렵, 학교로 보내온 그의 편지를 받았다. 첫 휴가를 기다린다고. 무척 보고 싶다고. 휴가 중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3학년 가을 학기가 시작되어서 교정의 단풍나무잎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할 때 K는 학교로 돌아왔다. 한 번 끊긴 지식의 광맥을 다시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듯 했지만 그는 시간을 내어 나와 자주 만났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내가 죽은 후에 내 무덤가에 한 그루 버드나무를 심어주오. 그 부드러운 낙엽들과 내가 잠든 땅 위의 가벼운 그늘을 나는 사랑할 것이오.' 알프레드 뮈세의 에피타프(Epitaph, 묘비명)를 주고받으며 먼 훗날 파리 페르 라셰즈에 있는 그의 무덤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도서실에서, 늦가을 오후의 교정을 걸으며 우리의 학문과 사랑은 익어 갔다.

 

졸업하고 도미 준비로 바쁜 날들을 보내는 동안 그도 졸업 후의 거취와 장래 문제를 고민하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 빠르게 날들이 지나갔고 이곳 대학원 개강에 맞춰 나는 도미했다. 시간이 흘러 K도 졸업을 했고 그 얼마 후, 그는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기숙사 창문으로 보이는 산타 모니카 바다에 낙조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를 기다렸던가. 한국 바다와 닿아 있는 그 바다를 그 저녁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몇 년이 지난 후, 그가 프랑스 여성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뜻밖에 그의 전화를 받았다. 캐나다 밴쿠버에 이주했다고 한다. 반가웠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우리는 서먹했던 것도 잠시, 어제인 듯 친밀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지내 온 얘기, 친구들 소식,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의 역사와 현재 상황 등, 긴 대화를 이어갔지만, 대화 가운데 이미 뮈세나 아폴리네르는 이미 없었다. 그는 유럽의 진보 정권들에 염증을 느끼고 프랑스에 대한 환상도 많이 옅어진 듯했다. 우리 대화는 자주 끊기고 때로는 의견 충돌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그는 곧 있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캘리포니아 쪽 태평양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고 나를 보러 LA로 내려오려던 계획도 취소한다고 했다.

 

"우린 만나기 어렵겠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텃밭이거든. 나는 심지어 투표도 하지 않아. 내가 어느 후보를 선택하든 캘리포니아는 민주당이 가져가니까. 와이프가 언어 문제로 많이 힘들어해. 자꾸 토론토로 옮겨 가자고 하네. 그쪽에서 프랑스어가 더 많이 통용되니까. 언제부터였던가, 어렴풋이 너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듯한 느낌이 들었어. 토론토로 이주한 후부터 연락이 뜸해졌고 그 후, 너의 와병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지. K, 너는 또 홀연히 가 버렸네. 통보도 없이, 이건 반칙이야, 세 번째의. 처음 입대했을 때, 결혼했을 때 그리고 이번까지."  

 

그리운 K, 세상은 어수선해. 대통령이 이웃의 동맹국을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하고 그 총리를 ‘거버너 아무개’라고 불러서 놀라는 중이야. 너희 총리에 대한 우리 대통령의 무례를 어떻게 설명할까. 한국의 대통령이 낙마한 다음 날부터 이곳에서도 대통령 반대 시위가 시작됐어. 한국 사태에 고무된 것일까, 그러나 미국은 잘못이 명백하게 밝혀진 고작 한 사람, 닉슨 대통령을 아주 점잖게 물러나게 한 미미한(?) 경력밖에 없지. 그에 비해 한국은 대통령을 외국으로 추방해 버리고 총탄으로 쓰러뜨리고 바위에서 뛰어 내리도록 코너로 몰아가고 줄줄이 감옥에 보내 버리고 5년 임기는 간데없이 2년이 지나면 탄핵해 버리는 대단한 민족이지. 진보는 진군하고 있고 보수는 보푸라기처럼 흩어졌어. 진보는 진행 중이고 보수는 보세 창고에 보관 중이야.' 

 

세상이 바뀌니까 우리 친구들도 당당해졌어. 오랜 세월 동안 간헐적으로 진보 인사들의 글을 소개하고 조심스레 동기들의 반응을 살피던 P가 며칠 전, 뜨뜻미지근한 친구들에게 강펀치를 날렸어. <중략.... 우리는 S대 출신이고 4.19 데모에도 참여했다. 노인이 되면서 보수가 되는 것은 자기 재교육이 미진했다는 증거다>라고. 우리가 4.19에 참여했던 것이 어떤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서였던가? 오로지 독재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진보도 보수도 아니었던 나는, 그러니까 노인이 되면서 자기 재교육이 미진해진 것이 아니고 애초에 미진했던 존재네. 지금까지 그렇듯 분명한 진영 논리를 구사하는 노인들이 신기해. 이 나이까지 그토록 명료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한편으로는 고맙고."

 

서울을 떠나던 날, 비행기에 탑승한 후에도 세 시간 가까이 더 기내에 갇혀 있었다. 한 대가 빠져나가면 그새 활주로에 쌓인 눈을 다시 쓸어 내고 나서야 다음 비행기가 뜰 수 있었다. 활주로 옆에 차례를 기다리는 여러 나라의 국적기가 장사진을 쳤다. 비행기에 갇힌지 두 시간쯤 지나자, 불문률을 깨고 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내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스트레칭을 하고 커피도 심지어 라면도 주문했다. 항상 갑이던 승무원들이 그날은 을이었다. 

 

떠나 온 설국이 그립다. 떠나보낸 건 모두 그리워. K도 고국도 그리고 우리의 젊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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