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를 끓이며 / 최연실
유리알처럼 투명한 하늘에 삽상한 바람 한 줄기 스친다. 창문에 빗방울이 또르르 흐른다. 빗줄기는 시원한 난타로 이어지고 초록 생명의 춤사위가 흥을 보탠다. 자연의 율동에 절로 어깨가 들썩이면, 비가 불러온 감흥에 수제비를 끓이고 싶어진다.
점심은 수제비다. 담백한 수제비 맛을 내는 데는 멸치만 한 게 없다. 정월에 사 놓은 다시 멸치가 있어 한 주먹 정도 식탁에 펼쳐 놓는다. 내장을 뗀 멸치를 냄비에 넣고 볶다가 노릇노릇해지면 손바닥만 한 다시마 한 조각을 넣고 물을 붓는다. 구수함이 퍼지면 준비해 둔 밀가루 반죽을 한 번 더 치댄다. 이내 우러난 육수에 한입 크기로 반죽을 떼어 넣는다. 유월에 산딸나무 꽃잎처럼 하얀 반죽이 둥둥, 내 유년의 추억도 덩달아 보글보글 떠오른다.
상도동과 봉천동을 잇는 곳을 마을 사람들은 봉천고개라 불렀다. 굽잇길 따라 오른 언덕배기에는 불그스레한 벽돌집이 마을의 터줏대감인양 자리하고 있었다. 붉은 담을 어깨동무한 바다색 양철대문에 빗장을 풀자, 햇살 한 줌이 등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볕이 놀다 간 자리에 한바탕 장대비가 쏟아지면 아버지는 큰 양은그릇을 들고 마루로 나와 앉았다. 아버지는 그릇에 밀가루를 쏟아 부었다. 까맣게 그을린 아버지의 손이 하얀 가루 속에서 춤을 추자 앙상한 아버지의 다리 위로 가루가 마른 안개꽃처럼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수제비 반죽을 다루는 게 서툴렀다. 늘 밀대로 밀고 칼로 쓱쓱 베어 수제비를 만들었다. 두툼하던 반죽은 하늘하늘한 어머니의 고쟁이처럼 얇아지고 얇아졌다. 아궁이에 놓인 솥에서 구수하게 우러난 바다 냄새가 등나무 꽃의 허리를 간지럽히듯 앞마당까지 나왔다. 진간장에 청양고추를 잘게 다지고, 고춧가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고, 칼칼한 신건지와 겨우내 먹던 묵은김치를 상에 올렸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면 등나무 아래 앉아서 항상 수제비를 먹었다.
수제비 반죽은 아버지가 집에 머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침병으로 일찍 예편한 아버지는, 군에서 받은 연금으로 상도동 일대에 땅을 매입했다. 매입한 부지에 집짓는 사업을 시작했다. 쨍쨍한 하늘에 먹구름만 스쳐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사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판을 벌였다. 오랫동안 군에 있었던 터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우여곡절 끝에 집을 짓지도 못한 채, 갖고 있던 땅을 헐값으로 넘겨야만 했으니 그 속이야 오죽했으랴. 네모지고 텁텁한 건빵처럼 기교가 없고 건조한 아버지였다. 술 내음만 맡아도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신하여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내 유년 시절에 수제비는 가난의 꼬리표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한동안 나는 수제비를 먹지 않았다.
그해 겨울, 한창 일할 나이에 아버지는 지인에게 통장 일을 제안 받았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그 시절 나라에서는 영세민을 대상으로 밀가루를 보급했다. 매월 초하루 아침이면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 노래가 고샅을 기웃거리는 물안개처럼 동네를 휘감았다. 오전 한나절이면 아버지는 동사무소에서 가지고 온 일을 마치는 데 충분했다. 매양 일이 끝나는 대로 마른 몸을 벽에 동그마니 기댄 채, 러시아 고전을 즐겨 읽었다. 희망 사항처럼 무인 武人으로 사는 삶 보다는 문인 文人으로 살고 싶다며 말씀하던 아버지였다. ‘도스토옙스키’의《죄와 벌》을 몇 장이나 넘겼을까, 그 사이에 책이“툭”방바닥에 떨어졌다. 반나절만 하는 통장 일조차도 아버지에게는 버거운 모양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예편 후에 다시 현장에서 하는 일을 선택해야 했으니, 당신의 감정을 돌볼 여유도 없이 어머니를 대신 가정을 돌봐야 했으니, 그 마음이 어땠을지는 쉽게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아버지가 끓여주던 수제비를 가난한 음식이라고 찡얼거리며 숟가락을 밀었던 나였다. 때 쓰는 어린 나를 달래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던 아버지의 손길, 그 눈빛이 그립다. 비가 오는 날이면 수제비 반죽하는 아버지를 떠 올린다. 수제비가 든 솥을 부엌에서 들고나오는 아버지가 그려진다. 마당을 뱅뱅 돌며 흘러가던 빗물 소리도 들린다. 달그락거리던 숟가락의 부딪힘도 공명처럼 퍼진다. 빗물을 촉촉하게 머금은 등나무 아래, 수제비를 먹는 가족의 모습이 환영처럼 스친다. 그날 이후로 수제비는 유년 시절을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다.
팔팔 끓고 있는 수제비에 어슷어슷하게 썬 호박을 한 움큼 넣는다. 아버지의 반죽처럼 나탈나탈하지 않아선지 건더기가 둥둥 떠오르는 게 덜하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냄새만은 부드럽고 맛깔스럽다. 밭에서 막 따온 청양고추가 없어 칼칼한 맛이 덜한 게 좀 아쉬운 듯하다. 남편과 딸은 내 수제비 서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숟가락질로 바쁘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빗물 머금은 나무의 초록이 더 짙어진 걸 보니 계절도 깊어진다. 아버지의 수제비가 영원히 잊지 못할 내 유년의 삽화로 기억의 페이지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