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로 선인장 / 엄옥례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봄을 손짓한다. 화단에 개나리는 꽃잎을 뾰족이 내밀고, 목련은 환하게 꽃등을 켠다. 어디선가 아이의 까르륵 웃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명랑한 봄이다.
바깥의 산뜻한 분위기와는 달리 소년원 학생들의 얼굴은 무표정이다. 봄꽃같이 피어야 할 나이가 무색하게 잿빛이다. 심리를 앞둔 학생들은 기대하는 판결을 못 받을까 봐 두렵고, 금방 들어온 학생들은 통제받는 생활의 적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은 법원에서 위탁한 학생들을 맡아서 교화시키는 기관이다. 갇혀 지내는 학생들에게 사회에 복귀해서 탈 없이 살 수 있도록 법, 인문, 정서 과목을 교육한다.
오늘 독서치료 수업 주제는 ‘어떻게 살까?’이다. 사막에 사는 사와로 선인장의 삶을 다룬 ‘선인장 호텔’을 읽으면서 풀어보기로 한다.
가지를 뻗은 선인장들이 책 표지에 가득하다.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사와로 선인장 군락지를 보는 듯하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모습이 사막의 파수꾼 같다.
사와로 선인장은 싹이 난 지 십 년 지나야 한 뼘 정도 자란다. 쉰 살에 어른 키가 되고 꽃이 피며, 예순에 가지를 뻗는다. 백오십 살쯤 되면 5층 건물과 맞먹는 키에, 자동차 다섯 대의 무게나 되는 둥치가 된다. 그 후 성장은 멈추지만 이백 년을 살다가 쓰러진다.
사와로 선인장은 헌신의 식물이다. 꽃 피고 열매 맺을 때부터 새와 벌, 나비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날짐승과 곤충들이 꿀과 열매를 먹고는 선인장의 몸통에 둥지를 뚫어 아예 눌러앉는다. 선인장의 아름드리 몸집이 뜨거운 여름 볕과 추운 밤을 지켜줄 수 있어서다. 목숨이 다하여 쓰러져도 너른 품으로 땅에 사는 동물들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풍화되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몸은 지붕이나 울타리를 짓는 목재로 쓰이기도 하고 선인장의 열매를 따는 장대로도 쓰인다.
하지만 내어주기만 하는 삶은 아니다. 베풀고 사는 보답이 따라온다. 깃들어 사는 동물들이 해로운 벌레를 잡아주어 병에 걸리지 않는다. 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니 하늘만 바라보고 서 있어야 하는 허허로운 사막에서 고독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사후에도 쓰임이 있어 계속 사는 것과 진배없지 않은가.
학생들에게 선인장 호텔의 감상을 들어본다. 사와로 선인장이 느리게 성장하지만 오래 사는 것이 신기하단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자기 몸을 내주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아낌없이 베푸는 삶이 대단해 보인다면서도 자신들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학생들의 반응에 공감한다. 아직은 어린 나이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의 바다에서 다양한 보살핌을 받았어야 했는데, 열에 아홉은 그러지 못한 아이들이다. 가정의 붕괴로 가치관이 바로 서기도 전에 세상으로 내몰려 비행에 휩쓸렸다. 관심 기울여서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라는 통계가 있다.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학생들이니 주고받고 사는 보람을 어찌 알아서 실천하고 싶을까.
독후 활동으로 20년 뒤의 생활을 상상하여 글쓰기를 한다. 중 고등학생들이니 이십 년 후면 대부분 서른 후반이 된다. 그때가 되면 직장에 다니든, 사업을 하든 대개가 자리를 잡을 테고 비혼주의자가 아니라면 가정도 이룰 나이다.
학생들의 활동지를 모아본다. 직업은 경찰관, 공무원, 약사, 일수쟁이, 요리사, 부모님 재산 관리 등이다. 공통점은 편하게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큰 집과 멋진 차를 소유하고 예쁘고 착한 배우자와 사는 것이다. 취미생활로는 골프를 치고 오토바이를 탈 거라고 한다.
학생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지만,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공통으로 몇 가지 걱정거리를 갖고 있다. 출소 후 생활의 어려움과 주변의 곱지 못한 시선, 별일 없이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출발이 늦다는 것이다.
선인장 호텔 이야기를 되짚어 들려준다. 사와로 선인장은 식물이 살기 어려운 사막에서 산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 밤이 되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기온을 견뎌야 한다. 느리게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깊이 뿌리 내리고, 더위와 추위에 견딜 수 있는 딴딴한 몸이 된다. 결국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나아가 찾아오는 동물들에게 열매도 나눠주고 몸까지 내어주면서 오래오래 살지 않느냐고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한술 더 떠서 나누며 보람을 느끼는 나의 이야기도 곁들인다. 책 속의 이야기와 실제 경험담을 더하면 설득력이 배가 될 수 있어서다.
책을 매개로 등을 토닥여주고, 희망을 솟게 해주는 일을 한 지 스무 해가 되어 간다. 사와로 선인장처럼 나도 늦게서야 나누며 사는 길로 들어왔다. 불혹의 중반,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 제 갈 길로 날아갔을 때였다. 바빴던 손이 쉬게 되자 남은 삶에 대해 생각하는 여유가 생겼다. 앞으로도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만큼 보람 있는 일을 갖고 싶었다. 궁리 끝에 마음 다친 아이들,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쓰다듬는 일을 하기로 했다. 평소에 책을 가까이했기에 관련된 일을 찾아보니 독서치료사였다.
자격증을 손에 쥐니 용기가 차올랐다. 노인의 외로움을 다독이고 청소년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일을 자청하였다. 간혹, 우울증을 못 이기는 노인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짓궂은 학생의 장난에 넘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허탈감이 온 신경을 타고 돌았다. 가족들 뒤에서 조용히 내조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모나고 울퉁불퉁한 심성을 감싸안아 둥글게 어루만지는 것이 내 일 아닌가. 금빛 날개를 가졌어도 공기의 저항이 없다면 날 수 없듯, 날갯짓과 저항이 균형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청둥오리도 강한 상승기류를 타고 높디높은 히말라야를 넘는다지 않는가. 내 몸짓이 그들에게 위안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웃을 일이다. 이리저리 부딪치며 나를 비우다 보니 그 자리에 일이 들어왔다.
대상자들은 주로 비탈에 선 나무들이다. 울타리 안 소년원이며 외진 군부대, 낯선 다문화 교실과 쓸쓸한 요양원을 찾아다닌다. 그중에 소년원 학생들의 교화에 참여한 지는 십 년 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일방적인 나눔만은 아니다.
‘이제 이곳에서는 만나지 않을게요.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라는 가슴 뭉클한 반응이 돌아온다. 이런 감동이 있기에 건강이 허락해 주는 한 이곳에 계속 올 거라고 말해 준다.
훈훈해진 학생들의 표정을 읽으며 어떻게 살까에 대해 정리한다. 성장이 느려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선인장처럼 소년들의 삶도 그러하기를! 어렵게 피워낸 삶이지만 찾아오는 동물들에게 열매를 나눠주고 몸을 내주는 선인장처럼 소년들의 삶도 그렇게 풍요로울 수 있기를!
한 학생이 불쑥 손을 들어 인사한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네요. 앞으로는 말썽 피우지 않고 살게요.”
나도 손을 번쩍 들어 화답한다.
"그럼, 그래야지. 사와로 선인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