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편의 생(生) / 장미숙
가스레인지 아랫부분의 빨간 스위치를 발로 툭 치자 시뻘건 불꽃이 쏟아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 갑자기 열기가 덤벼들어서 움찔 뒤로 물러섰다. 긴장으로 등이 꼿꼿해졌다. 화력이 강한 가스 불에서는 새파란 불이 이글거렸다.
불 속에서 주방장은 아무렇지 않게 웍(wok)을 다루었다. 옴폭하고 커다란, 묵직해 보이는 웍이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토치(Torch)에서 쏟아진 불이 웍 속 음식물에 달라붙었다. 양파며 고기가 솟아올랐다가 가라앉고 불은 그것들을 삼키려 날름날름 혀를 내밀었다.
웍을 흔드는 주방장의 손은 기계처럼 재발랐다. 음식물에 불맛을 입히는 행동은 계속되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드디어 토치가 꺼지고 음식이 기름에 돌돌 말리며 벌겋게 익어갔다. 주걱으로 거칠게 저을 때마다 강한 양념 맛이 의식을 파고들었다. 불맛 입힌 오징어 볶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걸 처음 보았다.
주방장의 팔에는 커다랗고 자잘한 흉터가 있었다. 불에 대어서 일그러진 피부가 고단한 일상을 말해주었다. 주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배달과 홀에서 시킨 주문서가 폭력처럼 밀고 들어왔다. 주방에는 세 사람이 있었지만, 각자 적을 대하느라 고군분투 중이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우동 면과 어묵, 소바 면이 익어가고 다른 쪽에서는 우동 국물이 팔팔 끓었다.
주방 가운데에서는 토치가 불을 뿜고 튀김기에서는 돈가스가 말렸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주방은 열기로 차올랐다. 삶고 튀기고 볶고, 한꺼번에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딩동딩동’ 끊임없이 울리는 주문 벨 소리는 공포에 가까웠다.
종류별로 쟁반이나 오목한, 혹은 배달용 플라스틱 그릇에 음식을 옮겨 담는 일이 반복되었다. 우동 면이 다 익었다고, 튀김이 다 되었다고 삑삑삑, 여러 개의 타이머가 소리를 질러댔다. 삶은 면을 씻고, 돈가스를 자르고, 밥을 푸고, 소스를 뿌리고 그 속에서 혼돈의 상태가 이어졌다. 카오스였다.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 멍해지는 찰나, 요란하게 울리던 타이머는 내 뒷덜미를 낚아채서 전투장으로 밀어 넣었다. 서툴다고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섰다간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질 것 같았다. 홀에서 음식을 나르는 젊은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며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손이 필요한 곳으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오갔다. 눈치껏 씻고 담고 푸고 넣고를 반복했다. 발바닥이 미끄러웠다. 면을 헹구고 토렴하면서 흘린 물이 주방 바닥에 흥건했다.
평소에 차분한 성격이지만 침착을 되찾기는 쉽지 않았다. 정신이 반쯤 빠져 있는 내게 주방장이 웍을 건넸다. 제육볶음에 불맛을 입히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엉겁결에 웍을 받아들었다. 곁에서 보기만 했는데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웍은 무거웠고 불꽃은 강하고 사나웠다. 웍을 앞뒤로 흔들었다. 열기가 삼킬 듯 덤벼들었다. 등이 축축해졌다. 팔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미 일에 익숙한 두 사람도 혼란스러운지 주문서를 쳐다보다 타이머 소리에 왈칵 화를 냈다.
서툴지만, 나는 열심히 웍을 흔들었다. 음식점 주방에서 고기에 불맛을 입히는 나는 누구인가, 혼란은 계속되었다. 주방장이 옆에서 잘한다고 추켜세웠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주방은 무질서 속이었다. 점심시간 한 시간 반이 그렇게 흘렀다.
주문 벨 소리가 차츰 줄어들었다. 휴, 한숨이 터짐과 동시에 싱크대를 본 순간 아찔했다. 생애 통틀어 그토록 많은 설거지 양을 본 건 처음이었다. 각양각색의 그릇들이 층층을 이루며 싱크대에 가득 차 있었다. 음식물이 반쯤 담긴 것, 다 비워진 것, 무질서 속에 그릇은 또 하나의 전쟁을 예고했다. 폭풍이 지나간 후에 남겨진 것들, 얼마나 많은 이의 희로애락이 스며 있을까.
까만 장갑을 손목 위로 끌어 올리고 수세미를 들었다. 금세 음식은 부패를 시작해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조금 전 따뜻했던 돈가스 소스가, 오징어 볶음이, 면발과 밥이 차갑게 식은 채 뭉쳐서 쓰레기로 변해갔다.
잔반을 따로 모으면서 그릇을 씻기 시작했다. 주문서가 아닌, 이제는 그릇이 패잔병처럼 밀려 들어왔다. 평소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성미지만 점차 남은 음식에 무감각해졌다. 손도 대지 않은 쌀밥 위로 시뻘건 김칫국물이 흘러내리고 남긴 면발은 퉁퉁 불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갔다.
한 시간여 이어진 설거지로 음식 찌꺼기는 커다란 통을 채웠고 그건 지극히 폭력적이었다. 일을 두려워해 본 적 없지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이런 상황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었다. 물리적인 행동만이 폭력이 되지 않는다는 걸 온몸으로 체험했다. 내가 모르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 힘겨움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보았을 뿐인데 나는 금세 지쳐버렸다.
아침에 출근해서 양파를 썰 때까지만 해도 일의 성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생전 그토록 많은 양파를 썰어보긴 처음이었지만 오랫동안 칼을 잡아 온 내게는 쉬운 일이었다. 성인 남자 주먹보다 큰 양파가 앞에 가득 쌓였는데 40kg에 육박하는 무게라 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 말고는 어렵지 않았다.
재료를 썰고 다지는 일은 계속 이어졌다. 오이를, 당근을, 고추와 미나리를 썰었다. 아침 9시부터 주방은 분주했다. 잠깐 물 마실 시간조차 없이 점심시간이 밀어닥치고서야 나는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우동 가게 주방보조라는 구인광고를 봤을 때 무슨 일인들 못 할까 자신만만했다. 갑자기 직장을 잃고 나니 급한 마음에 조건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고깃집이나 한식에 비하면 우동이 나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나는 주방에 투입된 것이었다.
일이 무서운 건 아니었다. 몸을 써야 하지만, 익숙해지면 못할 것도 없는 단순한 노동에 불과했다. 하지만 개인 물병조차 둘 곳 없는 복잡함과 사방이 꽉 막힌 폐쇄된 공간에서 나는 혼돈의 극치를 맛보았다. 주방장의 팔 곳곳을 채운 흉터는 불길한 상황을 연상시켰다. 한국 사람은 주방보조를 하지 않는다고 주방장이 말했을 때 현실을 실감했다.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들의 몫이 된 지 오래인 듯했다.
3일을 채운 뒤 정중하게 그만두겠다는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겉에서 바라보는 우동 가게는 평화롭고 안락해 보였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한 그릇의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치열함을 알기나 할까. 나 또한, 밥을 사 먹으며 가려진 이들의 땀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을 전쟁터 같은 음식점 주방에서 깨우친 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한 귀퉁이를 받치는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그곳은 또, 누군가에겐 절실한 삶을 이어갈 직장이기도 했다.
(『에세이문학』202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