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민달팽이 / 정정예
풀 한 포기 자라나지 못하는 어두운 지하도에 달팽이가 산다. 푸릇푸릇 배추이파리처럼 달팽이들이 신문지이파리에 잔뜩 달라붙어 영양분을 긁어먹고 있다.
등에 붙은 나선형의 껍질 달팽이가 아닌 민달팽이는 껍질 없이 미끌미끌한 몸을 느리게 밀고 다닌다. 짊어지지 않고 제 등껍질을 떼어냈으니 햇빛과 바람 피해 음습한 곳을 찾아 숨어들 수밖에는 없다. 따가운 땡볕 쪼이기라도 한다면 금방이라도 등거죽이 바짝 말라 죽을 수도 있으니 그래서인지 어둡고 습한 곳을 아예 떠날 줄 모르고 산다.
지하도에서 신문지 한 장만을 의지한 채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워 뒹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연체동물처럼 머리 촉수만 보여 민달팽이 같다. 머리맡에 흩어진 빵 봉지와 우유곽이 그들의 체액을 만들어 내기 위한 영양분인 듯.
지나가던 사람의 구둣발이 신문지를 밟았다. 민달팽이는 신문지 이파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솜털 같은 잔가시 위에 허연 체액을 흘려 몸을 뒤튼다. 차가운 바닥을 꿈틀대며 배로 밀고 기어가던 민달팽이가 사람들의 구둣발에 촉수가 밟혔는지 몸을 잔뜩 움츠린다. 달팽이는 사람들의 발길에 차일까 두려운지 기어가던 몸을 움찔거리곤 시멘트 바닥에 바투 몸을 밀착시킨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갈 때야 밟혔던 달팽이가 사력을 다해 남은 촉수로 널브러져 있는 신문지 이파리로 기어든다. 언제부터 여기 살게 되었을까. 민달팽이의 고단한 삶의 궤적을 본다.
신문이파리가 따스한지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이곳, 이파리 속에 파고든 얼굴은 보이질 않는다. 제 등 집은 어디에 떼어놓았을까. 제 등껍질 짊어지고 다니기가 그리도 버거웠을까. 등 헐고 물집 잡혔어도 제 등껍질 떼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더위와 추위는 능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등에 굳은살이 박힐 때까지 인내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제 몸 쓰라려 이리 뒤틀고 뒹굴지는 않았을 터이다.
애초에 집조차 짊어질 수 없는 민달팽이는 이러한 환경에서 얼마나 더 버텨 견디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고통으로 옷 입어 너덜너덜한 민달팽이로 살아가는 것이 때론 꿈과 꿈 사이에서 매일매일 나쁜 꿈을 꾸고 있노라고, 다른 사람들과 균등하지 못한 자신들의 비루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마저도 꿈을 꾸고 있노라고 믿는 것은 아닐는지. 벼랑 끝으로 밀려 아득히 떨어진 삶을 누가 건져줄 수 있으려나. 지하도 불빛이 명멸한다.
어느 틈에 기어 나왔는지 지하도 계단 앞에서 민달팽이 같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싸운다. 남자는 여자를 계단 위로 질질 끌어 잡아당기고, 여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엉덩이 쭉 빼고 발버둥 친다. 남녀 머리칼은 철사수세미같이 엉키고 뻗쳐 떡 되게 뭉쳤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카락을 한 주먹 움켜쥔 채 주먹으로 여자의 얼굴을 마구 후려갈겼다. 여자가 악을 쓰며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여자가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을 구르지만 지나쳐가는 사람들은 방관자로 미간을 찌푸릴 뿐이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계단 밖에 파란하늘을 정신없이 흔들고 있다. 하늘이 찢어질 것만 같다.
흔들어 놓은 하늘에서 녹슨 별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깨진 전쟁이다. 아직도 푸른빛 청청하게 남았지만 그 눈빛의 늙음을 본다. 꿈을 버린 젊음이 쇠잔하다. 어두운 눈으로 어둠을 더듬고 어두운 길에서 어둠을 길러서 먹었으니 민달팽이의 창자도 시커멓게 되었을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검다. 쇠 힘줄같이 질긴 목숨이 삶에 짓이겨짐을 본다. 어둠 속에 추락한 별들의 적멸이다.
저들 가족 중에는 생사를 알지 못해 날마다 애태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어머니는 마음 졸이며 뜬눈으로 밤 지새우다 혀끝에 마른 한숨으로 애끓는 기도를 바치다가 기어이 펄펄 끓는 눈물을 쏟아냈으리라. 밤마다 낡은 아들의 책상에 엎드려서 설핏 잠들다 악몽에 시달려 퀭한 눈 뜨고 진저리치던 날이 손으로 셀 수 없었으리. 애끓는 자식 사랑에 간 졸아드는 야윈 어머니는 불면 검불같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을 것인데. 간곡히 올리는 어머니의 기도가 저들의 귓전을 때렸으면 좋겠다. 눈에서 불이 번쩍거리도록. 어미의 뼈아픈 마음을 헤아려 볼 줄 알았으면 좋으련만.
삶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에 눈 떠야 그 삶을 함부로 굴리거나 버리지 않을 거다. 때론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와 목구멍 뜨겁게 북받쳐 오는 눈물에 밥 말아먹게 하여도 삶 자체가 희망이기에 더욱 고결하다. 삶의 가치란 자신이 살아있다는 단 하나만의 이유로도 충분히 삶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 자기 자신을 희망으로 안고 있을 때 희망은 슬며시 곁에 서서 따스한 옷을 입혀 주리라.
도시의 민달팽이로 살 수밖에 없었던 저들이 스스로 세상을 향해 촉수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지하도에 밝고 환한 보름달 뜨기를 빌어본다. 민달팽이들이 둥근 달 위로 무수히 기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고요히 잠든 사이 푸른 배추밭에 새벽이슬이 흠뻑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