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이별 그 후 / 이상은
고향 집에 다니러 왔습니다. 점심 먹고 모처럼 낮잠을 잤습니다. 개운하네요. 한 두어 시간 잤나 봅니다. 얼추 시간이 내가 사는 곳으로 출발해야 할 때가 되어갑니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아버지 혼자 계시네요. 점심 드시고 난 후로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네요. 아버지, 어머니 허리도 안 좋은데 어디 가서 무거운 거나 들지 않나 걱정하십니다. 제가 잠든 사이 아랫마을도 가보고 경로당도 가보았다고 하시네요. 가실만한 곳은 다 돌아보았는데 안 보이신답니다. 아무래도 동명장에 간 듯하시다네요.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보시더니 동네 어귀로 나가보자고 하십니다. 버스가 들어올 시간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도롯가에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아! 저기 버스가 들어오네요.
버스가 멈추자 어머니 보자기 하나를 들고 내리십니다.
근데 보자기에 암탉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저는 보자기를 얼른 받아서 듭니다.
어이쿠 이런 닭이 살아 있습니다. 눈도 깜박이고 고개도 까딱입니다.
아버지, 화가 나셨습니다.
”난데없이 무슨 닭이야. 어딜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고 가지.“
버럭 소리를 지르십니다.
어머니, 허리를 길게 한번 펴시고는 아버지 호통에 답합니다.
“암탉 죽고 혼자 된 장닭(수탉) 놈이 모이도 안 먹고 새벽이 돼도 울지도 않고 아무리 봐도 홀아비랍시고 투정 부리는 같아서 동명장 가서 암탉 한 마리 사 왔네요. 장닭 새장가 보내는 게 뭐가 그리 잘못이요.”
어머니가 뭐라 하시거나 말거나 아버지 뒷짐 지고 벌써 저만치 앞서가십니다.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큰 소리로 말씀을 이어 갑니다.
“키우는 짐승은 주인 닮는다는데 우리 집 장닭 놈 성질머리가 얼마나 고약한지.”
“지금 나 들으라고 그러는 거지.”
아버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는 더 큰소리로 호통을 칩니다.
움찔한 어머니 나지막하니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수컷들은 혼자 두면 제구실을 못 해. 밥도 할 줄 몰라. 빨래도 못 해. 건희도 얼른 장가보내.” 어쩌다 불똥이 맏손자에게까지 튀었습니다.
아버지도 못 들은 척 혼잣말을 하십니다.
“애국가도 4절이면 끝나는데, 저 할마시 잔소리는 도대체 몇 절이 끝이야. 시도 때도 없어.”
이제 집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 보자기 매듭을 풀어 암탉을 수탉 앞에 놓아줍니다.
암탉이 어리둥절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집도 앞에 선 수탉도 낯설겠지요.
“달구(닭) 새끼야 혼자 되면 장에 가서 한 마리 사서 짝 맞추면 되지만 할마이는 장에서 안 파는데…. 나 죽으면 이 영감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테레비만 보다 시름시름 앓을 텐데. 내가 고생스르브도 영감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아야 할 텐데.”
어머니가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버지 어머니 눈길을 피해 먼 산을 바라봅니다.
“쓸데없는 소리 고만해라. 괜히 나돌아다니다 다치면 편히 못가네 이 할마시야.”
쩌렁쩌렁하던 아버지 목소리가 어째 고분고분하니 풀이 죽었습니다.
장닭이 암탉 주변을 기웃기웃 서성입니다.
“아이고 저 놈 봐라. 좋단다.”
어머님 빙긋 웃으십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따라 웃으십니다.
닭 한 마리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왜 암탉을 한 마리 더 사셨냐고 어머니에게 여쭈어봅니다.
“저 놈 장닭 궁상떠는 꼬라지(꼬락서니) 보기 싫어서. 보고 있자니 눈물 나서. 내 먼저 죽고 나면 너 아부지 꼭 저 장닭 꼴일 거 같아서.”
어머니가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누가 먼저 갈지 어떻게 알아, 이 사람아. 가면 다 끝이지. 그런 걱정을 뭐할라꼬 하노. 아프지나 말어.”
아버지, 헛기침 한번 하시고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로 향합니다.
어머니, 툭툭 털고 일어나 아버지 뒤를 따르십니다.
마당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사람이 옆에 있고 나 또한 나보다 그가 더 걱정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천천히 함께 걸어갑니다.
이런 풍경 어떤가요? 조금 소란스럽지만, 아름답지 않은가요.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들만이 함께 그릴 수 있는 그림이겠지요.
오늘 사랑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 끝은 재회가 없는 영원한 이별이겠지요. 이별의 순간에 신이 여기에 잠깐 더 남을지 그 사람보다 조금 먼저 떠날지 하나를 선택하라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할 건가요?
제 어머니는 여기에 혼자 잠깐 더 남기를 택할 듯합니다.
혼자 남은 시간은 쓸쓸하고 지루하겠죠. 그리고 많이 그립겠죠.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은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대신해 당신 자신이 조금 더 아파하기 조금 더 외롭기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신이 우리에게 준 사랑의 시간은 얼마일까요? 그리고 얼마쯤 남았을까요?
서산에 해가 걸렸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오늘을 한 뼘쯤이라도 더 길어지게 해드리고 싶네요.
두 분의 이별이 조금이라도 늦게 다가오게요.
저는 이제 제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사랑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