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진 귀신이면 족하지 / 김경순

 

마당에 나가 보면 저절로 쪼그리게 된다. 풀처럼 강인한 생명이 또 있을까. 땅은 바싹 말랐는데도 바랭이와 땅빈대 쇠비름은 언제 저리도 많은 식솔을 꾸렸는지 마당 곳곳이 푸릇푸릇하다. 쇠비름으로 손을 뻗는데 그때 개미 한 마리가 제 몸보다 더 큰 먹이를 물고 허둥대는 게 보였다. 녀석이 집을 어찌 찾아 가는지 눈으로 쫓았다. 돌 틈새를 지나 나무 쪼가리 위를 넘어 한참을 왔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하고 그렇게 3미터쯤 가니 과연 작은 돌 틈 흙속에서 개미들이 줄 지어 드나드는 게 보였다.

한참을 개미 구경으로 넋을 잃고 있는데 '흐흠, 흐흠~' 소리를 내며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옆을 힘없이 지나간다. 현관 데크 계단참에 앉아 처진 눈을 씀벅이며 이쪽을 쳐다본다. 아마도 15년은 족히 넘게 살았을 것이다. 애기 때 우리 집 마당에 나타난 녀석이라 '애기'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삼색 고양이인 '애기'는 언제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털에 얼굴도 참으로 예뻤다. 그러니 수고양이들에게 인기 묘로 등극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발정기가 되면 우리 집 주위는 밤낮으로 수고양이들의 결투장이 된다.

하지만 다산의 왕이었던 '애기'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눈 밑에는 거무죽죽한 눈물 자국에 눈곱까지 끼고, 입 아래 털에는 어제 저녁에 먹은 캔과 엊그제 먹은 간식 찌꺼기를 여태 달고 다닌다. 반질거리던 털은 푸석푸석하고 끄레발하다. 이도 빠졌는지 딱딱한 사료를 먹지 못해 캔을 주면 허겁지겁 먹어 치우지만 이내 토악질로 속이 찰 새가 없다.

숨소리도 위태롭다. 들숨과 날숨이 일정하지가 않다. 들숨일 때는 '흐', 날숨일 때는 '흠' 소리를 낸다. 그때마다 배가 등가죽으로 바짝 붙어 뼈가 드러날 지경이다. 저리 힘든데도 어디서 숨어서 지켜보는 모양인지 내 소리만 나면 마르고 쳐진 꼬리를 늘어뜨리고 시적시적 나타난다. 사람으로 치면 만수를 다한 나이인데도 여전히 삶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른다.

순리대로 살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닥치고 보면 그게 쉽지가 않다. 시부모님의 유전자를 빼쏜 남편은 어디가도 빠지지 않는 외모다. 그런데 외모만 빼쏘면 좋을 것을 좋지 않은 치아까지 빼쏠게 무어란 말인가. 시부모님은 나이 쉰도 못 돼 틀니를 끼우셨다. 환갑의 나이인 남편은 그나마 시부모님 보다야 낫지만 현대 의학의 혜택을 받는 지금을 기준으로 본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며칠 전 남편은 치과를 다녀오더니 아랫니를 뺐다고 했다. 뺀 이가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되었다. CT를 찍어보니 썩거나, 흔들리고 약한 이가 거의 다였다. 뼈가 약하니 임플란트도 어려워 틀니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가 빠진 남편은 갑자기 몇 년의 세월을 앞지른 사람 같았다. 말도 새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몇 번을 물어보게 된다. 그러니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되고 낯빛도 어두워졌다. 아랫니가 없으니 음식을 씹을 수도 없어 죽으로 매 끼니를 대신한다. 부모님을 닮아 자신도 이가 튼튼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였던 사람이었다. 헌데 막상 닥치고 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김창흡의 이야기가 혹여 약이 될까 싶어 꺼내 본다. 그의 나이 예순여섯 살이 되던 해 앞니 하나가 빠지자 딴사람이 된 것 같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육십이 넘도록 살았으니 한탄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이 수두룩한 마당에 자신처럼 이 빠진 귀신이 몇이나 되겠나 싶어 마음을 넉넉하게 먹기로 한다. 그리고 늙음을 받아들여 즐겁게 살겠다며 <낙치설>을 지었다.

세월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밖으로만 돌고 곁을 주지 않던 고양이 '애기'도 늙고 병이 드니 집 근처에 붙박여 맴도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은 정작 저 말 못하는 숨탄것들이 아닌가. 제 몸보다 몇 배는 크고 무거운 짐을 이고 가야하는 개미나 게걸스럽게 먹고 나면 고통스런 토악질이 기다릴지라도 삶이 다 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길 고양들이야 말로 진정한 운명론자는 아닐까. 고통을 죽여 뼈를 심고 살을 채워 세월까지 잡아 틀어 다시 회생하는 우리가 정녕 영장은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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