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색 / 장미숙

 

 

병원에 가는 걸 차일피일 미룬 건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긴 것도 이유이긴 했다. 하지만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절박감이 전화번호를 누르게 했다. 그리고 진료 당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온한 일상이 흔들릴 걸 생각하면 깊은 한숨도 나왔다. 병원은 복잡했다. 접수할 때도 줄을 섰고 검사 순서를 기다릴 때도 앞줄이 길었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건 더 힘들었다. 의사의 한마디가 가져올 파장을 상상하며 가슴을 졸였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죄인처럼 의사 앞에 앉았다. 눈의 구조를 세밀하게 찍은 영상이 앞에 펼쳐졌다. 의사가 물었다. “질환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히 암슬러 격자 테스트를 하다가요.”

그런데 의사의 표정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흔한 증상이고요. 심해지면 수술만이 치료입니다. 치료라기보다는 예방에 가깝지요. 다시 좋아지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수술을 받더라도 경과가 크게 좋지는 않아요. 백내장이 올 수도 있고요.” 그는 말을 계속했다. 다행인 건 망막 모양이 나쁘지 않단다. 그러니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당장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순간 숨이 한꺼번에 훅 터졌다. 가슴 밑바닥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두려움이 빠져나가자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병원에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걸, 두렵다고 도망만 다녔으니 말이다. 두려움이란 어쩌면 스스로가 만든 실체 없는 형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디 질병에 한해서일까. 두려움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어딘가에서 사고를 당하면 어쩌지. 나쁜 사람을 만난다면. 경제력이 사라져 일할 수 없게 되어버리면 등등. 두려움의 색은 진하고 번짐이 빨라 삽시간에 주위를 잿빛으로 만들어버린다. 특히 나처럼 겁쟁이에게는 입을 크게 벌리고 덤벼든다. 먹혀버리면 옴짝달싹할 수 없다. 그러니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뿐, 가까스로 고개 하나 겨우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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