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는 골방에는 볍씨도 있고
고구마 들깨 고추 팥 콩 녹두 등이
방구석에 어지러이 쌓여 있다
어떤 것은 가마니에 독에 있는 것도 있고
조롱박에 넣어서 매달아놓은 것도 있다
저녁에 눈을 감고 누우면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말소리가 방안 가득 떠돌아다니고
그들이 꿈꾸는 꿈의 빛깔들도 어른거리고 있다
나는 그런 씨앗들의 거짓 없는 속삭임들이 좋아서
꿈의 빛깔들이 너무 좋아서
씨앗들이 있는 침침한 골방에서
같이 잠도 자고 같이 꿈도 꾸고 하면서
또 다른 만남의 기쁨을 기다리고 있지요.

―박운식(1946∼ )



11월의 첫 주에 따로 이름을 붙인다면 ‘씨앗’이라고 하고 싶다. 최선을 다한 식물들이 세상에 씨앗을 내놓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이때 절정을 이룬다. 농부는 덩달아 바쁘다. 잘 여물게 도와주고 싶다. 잘 거두어주고 싶다. 그래서 씨앗의 노래를 준비했다. 농사를 직접 지으시는 농부 시인의 살아 있는 씨앗 이야기다.

 

배경은 골방. 나의 아이들은 골방을 글로 배웠고 나는 골방을 몸으로 배웠다. 창문 없는 작고 좁고 어두운 골방에 들어가면 아늑함과 고독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런 곳에 시인이 누워 있다. 골방에 먼저 자리 잡은 씨앗들을 찾아온 것이다. 씨앗 곁에 누워 그들의 숨소리와 말소리를 듣는다. 그냥 곁에만 있어도 기쁘다. 예쁜 것들, 귀한 것들, 내 피땀이 맺힌 것들, 피어날 것들, 장한 것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여쁘게 바라만 보고 있다. 만지기도 아까워서.

농부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딱 맞다. 엄마가, 아빠가 딱 저렇게 아이를 사랑한다. 씨앗은 그 마음을 알려나 모르겠다. 몰라줘도 너무 좋은 것을 어째.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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