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방 / 김경아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 집에는 부엌과 거실, 거실과 베란다 사이에 나무로 된 미닫이문들이 있었다. 금속 재질의 가벼운 창틀이 아니라서 여닫히도 쉽지 않았고 끼익 소리까지 났다. 고풍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미닫이문이 반가웠던 것은 다름 아닌 문지방 때문이었다. 나는 살면서 그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래, 이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안방 문지방에 올라서는 것을 좋아했다. 발바닥 한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인 장심(掌心)을 꾹 눌러주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거기에 올라서는 것을 좋아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문지방을 밟고 서면 왠지 제법 키가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봤자 겨우 1~2센티미터에 불과한데도 키가 커진 만큼 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문지방을 밟고 문설주에 기대어 안방과 마당을 내려다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기억 속의 나는 안방에 큰 대자로 누워서 코를 고는 아빠와 마당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엄마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문지방을 밟고 서있는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있었고 양쪽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소외감을 느꼈다. 반면 어느 쪽에도 매이지 않을 자유를 손에 쥔 것 같았다.

그러고 있는 나를 행해 엄마는 꼭 이렇게 소리치셨다.

“내려와라, 복 나간다!”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한 학년을 올라갈 때마다 진통을 겪었다. 1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서 금방 떨어져 나올 수 없었고, 새로 같은 반이 된 친구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 내게는 확연히 다른 두 그룹의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 잘 하고 말썽 피우지 않는 소위 ‘엄친딸’들도 있었고, 방과 후에 따로 모여 샴페인을 터뜨리고 담배 피우는 친구들 속에도 나는 속해 있었다. 대학에서는 사회 불의에 저항하며 데모를 하다가도 끝까지 그들 가운데 머무르지 못하고, 속히 기득권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웠다.

내가 원해서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도 직장에 다니면서 폼 나게 사는 그녀들의 세상이 늘 부러웠다. 권위주의적인 정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면서도 외국에서 사는 동안 그들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쉽사리 수용하지도 못했다.

나는 경계인(境界人)이었다. 나는 이쪽에도 있었고 저쪽에도 있었고, 이편도 됐다가 저편도 되었다. 나는 회색분자였다. 이도 저도 아니었고 소속되었지만 바깥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쪽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가 있지 않은 곳을 동경하고 그리워했다. 한쪽을 두둔하면 반대쪽이 마음에 걸렸고, 이런 입장을 취하면 다른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을 텐데 하며 괜히 마음이 쓰렸다.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나더러 보수주의자라고 비아냥댔고, 어떤 설문조사에서는 내가 ‘왼쪽’으로 기운 ‘빨간색’이라고도 했다. 대학 동아리를 함께 했던 선배는 그런 말을 했다.

“너는 누가 봐도 핵심 인물인데, 왜 스스로 아웃사이드처럼 구는 거니?”

나는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끼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문지방을 밟고 서서, 양쪽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애매한 태도로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이쪽과 저쪽 모두를 기억하는데, 나와 다른 쪽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할까? 나는 어쩌면 이쪽에도 없었고 저쪽에서도 사라져 버린,, 부재(不在)한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내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양쪽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양쪽을 오가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여긴 것은 중용의 묘미가 아니라, 내면의 불안과 자만의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만용이었고 내 건강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엄마가 문지방을 밟고 서면 복이 나간다고 혼내신 것은 바로 이런 결과를 염려해서 하신 말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한쪽에 완전히 뿌리박았으면 내 복을 꼭 쥘 수 있었을까?

지난 1년 동안 외국에서 살았다. 그곳 생활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동네 놀이터에서 바라본 노을이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이 되면 너른 들판과 하늘의 경계인 지평선에는 늘 노을이 불탔다. 땅과 하늘, 낮과 밤이라는 조화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세계는 노을을 만들어내며 모든 경계를 허물었다. 문지방을 밟고 있는 나, 경계인처럼 떠도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아름답고 자유로운 노을빛을 낼 수 있을까, 또다시 걱정과 기대의 문지방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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