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빈집 / 심선경

 

해거름에 나선 뒷산 산자락에 쑥부쟁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숲 속 산책로의 가래나무 가지 사이, 낯선 거미집 하나가 달려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불안한 시선을 조심스레 그물망에 건다. 무심코 날다 걸려들었을 큰줄흰나비가 망을 벗어나려 파닥거린다. 그물망에 걸려든 생물의 몸부림이 강해질수록 포승줄은 먹이의 몸을 더욱 옭아맨다. 거미는 함께 흔들리며 조용히 자신의 때를 기다린다. 작고 하찮아 보이기까지 했던 거미의 삶이, 지금 이 적요한 숲을 통째로 내리 흔들고 있다.

날개가 부스러진 나비의 비명은 숲의 고요에 가 닿지 못한다. 기다림의 팽팽한 끝, 먹이가 지칠 때까지 거미는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이윽고 파르르 떨던 나비의 숨이 멎자 사냥꾼이 서서히 움직인다. 느긋하게 가을 하늘 끝을 거미줄로 친친 감는다. 숲 속 생태계의 준엄한 장례식을 끝까지 지켜보자니 식은 땀 흐르던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저 투명한 날개를 걷어 바람 속으로 되돌려 버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땐, 좁은 길을 가다가 얼굴에 온통 거미집을 뒤집어쓰면 끈적끈적한 그물망을 일부러 멀리 밀고 가서 공중에 흩어버리곤 했다. 거미줄에 걸려들어 버둥거리다 최후를 맞는 곤충들이 애처롭기도 했지만, 긴 다리를 바짝 세우고 거꾸로 매달려 음험한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걸려든 먹이를 포식하는 거미란 놈에게 대단한 적개심을 품었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스물이거나 서른이었다면 이런 생각들에서 그리 멀어지지 않았을 게다. 그러나 지금은 마흔의 막바지. 망에 걸려든 나비나 잠자리의 입장보다, 살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필사의 그물 짜기를 하였을 거미의 마음을 먼저 읽어 버렸다.

생명의 먹이사슬로 짜인 이 오묘한 자연의 섭리와 질서를 거창하게 설명할 정도로 나는 해박한 지식을 갖지 못했다. 또한, 목숨을 연명하고자 뭇 생명들을 유인하는 거미의 행동을 의로운 행위로 본다면 그에 반박할 이유를 내세울 만큼 내 머리는 논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미집을 보면 온몸이 굳어지고 움츠러드는 듯하다. 내 삶이 그곳에 투영되기라도 한 듯 거미가 얽어놓은 올가미에 꼼짝없이 걸려들어 단 한 발짝도 쉽사리 떼놓을 수가 없게 된다.

저녁노을이 서서히 어둠에 잠겨갈 때 거미는 작업을 시작한다. 어제 이맘때 지었던 집을 허물어 먹어치운 뒤 다시 새로운 집을 짓는다. 제 몸을 풀어 세상을 만드는 거미는 조물주의 창조 능력을 타고난 마법사 같다. 가늘고 부드러운 발톱으로 허공에 밑그림을 그려놓고 혹시 모를 빗방울의 크기와 바람의 각도조차 놓치지 않는다.

거미집은 또 다른 하나의 우주이다. 허공을 걷던 거미는 신중하게 가장자리로부터 빙글빙글 돌며 길을 엮는다. 앞발로 공간을 나누고 뒷발로 길 하나를 튕겨 붙인다. 전위 예술가를 뺨칠 듯한 거미의 기막힌 건축술은 기하학적무늬와 정교한 각을 지어 햇빛에 반짝이는 집을 지어놓고 눈 어두운 곤충들을 유혹한다.

비가 오면 물이 그대로 새는 집, 바람이 불어도 그냥 통과하는 집, 햇살이 뜨거워도 피할 수 없는 그물로 된 그 집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집이다. 공들여 만든 끈적한 점액질의 길은 벌레의 미세한 떨림마저 중심점으로 정확히 전달할 것이다. 하지만 조물주에게 날개 대신 다리 한쌍 더 욕심 부린 죄로 아주 좁은 길만 허락된 거미의 운명. 그 길마저 제 몸을 녹여 허공에 놓아야 하는 천형을 타고난 것일까.

올무를 쳐 놓은 뒤 몰래 숨어서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의 생존법이 좀 비겁해보이기는 해도, 살다보면 분명 그것이 정정당당한 것이 아닌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던가. 나이 들어 가정을 꾸려가면서 한 세상 산다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바라던 것들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나는 그 중심점에 거미처럼 고독하게 붙박여 있었다. 운명의 베틀로 촘촘히 짜놓은 의식의 망에 긴 한숨이 되어 매달린 삶은, 이따금 부는 바람에도 간당간당 흔들리기 일쑤였다.

흔들리는 거미줄 위에 그리스 신화 속 한 여인의 모습이 어룽거린다. 어찌 보면 수십 년 동안 가슴에 품어온 뜻을 세상에 펼치지 못해 속이 새까맣게 탄, 내 못난 자화상과 무척이나 닮았다. 거미가 되기 전 그녀의 이름은 아라크네였다. 베 짜는 기술과 자수 솜씨가 뛰어나 림프들까지 감탄했던 실력이었지만 지나친 자만심으로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었던 그녀. 신들을 모욕한 죄로 결국 거미의 모습으로 변해 영원히 실을 잦는 형벌을 받게 된 아라크네가 저기 거미줄 끝에 굳어버린 듯 웅크리고 있다.

거미가 해를 등지고 분주히 집을 지을 때, 내 마음 속 세상의 벽과 벽 사이에도 수없는 거미집이 지어지고 또 허물어졌다. 거미가 늘이는 생의 맞은편에서 그 가닥에 합류하기 위한 내 열망을 위태롭게 걸어보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가늠하며 불안한 인연의 실줄을 당겨도 보았다. 나 스스로 만들어 놓은 거미집의 영역에 애꿎은 사람들도 붙들어 앉히고 불규칙한 시간들을 가두기도 했다. 그러나 억지로 채워놓은 가구들처럼, 빈 집은 늘 황폐했고 햇살을 받아도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지난날들도, 위장망에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거미처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덮어버릴 수 있을까. 거미는 몸을 풀어 선을 만들고 흔적도 없이 선을 넘나들지만 단 한 번도 줄에 걸리는 법이 없는데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짜놓은 인연의 줄에 발이 걸려 번번이 넘어지고 붙들렸다. 스스로 만든 길이었지만 나는 그 길에 어두웠다.

거미가 거미줄을 쉼 없이 만드는 것은 오로지 먹이에 대한 탐욕 때문일까. 아니면 그물망 칸칸에 잘 나누어 담은 그리움 때문인가. 거미와 그 부류의 생물들이 가지는 아름다운 계략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살기 위해 날마다 제 몸을 풀어내는 고통까지 참아내는 거미를 어찌 비겁하고 음험한 포식자라고만 비난할 수 있으랴.

바람처럼 가벼운 목숨일지라도 스카이다이버같이 고공낙하하며 가장 풍요로운 뜰에 줄을 내리는 거미처럼, 나도 세상의 중심에 서서 어떤 고통과 슬픔도 당당하게 껴안을 수는 없을까. 내 삶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고 위선과 오만의 색色을 벗어던질 수 있다면, 그래서 마침내는 함초롬한 아침이슬 한 방울로 남겨져 지상에 툭 떨어져도 좋으련만.

명주실 풀어내듯 뱃속의 점액을 뽑아 저 허공, 바람의 길목에 매달려 있는 거미집, 때로는 나무의 숨소리가 걸리기도 하고, 밤하늘에 흐르는 별똥별 꼬리가 걸려들기도 하는데 나는 그저 내 안의 빈 집에 칩거 중인 거미를 물끄러미 지켜볼 뿐,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한다. 내가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는 결코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날마다 긴 빗자루로 걷어낸 마음 속 거미줄에 다시 걸려, 손도 발도 떼지 못하는 내가 오늘따라 몹시도 답답하고 아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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