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국자 / 고미선 - 제14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금상

 

곶감 된장국을 끓였다. 상주 시내 식당에서 먹었던 된장찌개 맛은 특산물인 감을 사용하여 잊지 못한다. 혀끝에서 느끼는 맛은 건조된 시래기를 넣자 도림사를 떠올리게 하였다.

장맛을 찾아 떠난 상주 도림사에서다. 삼거리에 커다란 된장 항아리 모형이 세워져 있다. 다른 사찰의 일주문이나 사천왕문 대신 항아리가 버티고 서 있다. 대웅보전을 찾아 삼 배 하고 나오자 스님이 반겨준다. 스님은 장맛을 찾아왔다는 소리에 뭐든지 주고 싶은 얼굴이다.

“보살님, 이것도 인연인데 1호 법당을 안내해 드리죠.”

음악 교사였던 회주 스님은 찬불가를 작곡하여 재일(齋日)마다 음성공양으로 위안 주는 분이었다.

도림사 관음전은 도곡 서당 가까이에 계곡을 끼고 자리했다. 그 옛날 유생은 절에서 기도하고 도곡 서당에서 공부하였다. 서당은 과거급제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현존하는 서당 중 가장 오래되어 한양 옛길 표지판이 세워졌다. 관음전은 양반들의 기도처였다. 절 마당에서 바라보면 산의 이음새에 천년 와(臥)불이 상주 시내를 감쌌다. 천여 년 된 고려기와는 폭이 넓고 특이하게 생긴 계자난간과 더불어 낯설다. 난간에 서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톱니 모양으로 올린 나무는 닭의 머리 모양새다.

“먼 곳에서 오셨는데 특별히 도림사 역사박물관을 보여 드리죠.”

폐허가 된 절터에 복원 불사기도 중에 유물이 나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역사박물관은 문을 연 지 오래지 않지만, 도난당할 뻔한 일로 자물쇠를 채울 수밖에 없다. 2009년에 터파기 공사 중에 청동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 31점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37호로 도림사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청동 유물은 12세기에서 13세기 불교 의식에 사용했던 도구로 고려 시대 불교 공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과거 급제한 유생들이 절에 필요한 불기를 보시(報施)하여 유물이 되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유물은 투명유리로 제작된 사각형 상자 위에 올려 있다. 청동 바라·향완·광명대·경쇠·접시·국자 등은 도림사에 영구 보존 중이다. 청동불비상은 휴대용처럼 접었다 펼 수 있고 정면에 부처님이 새겨졌다. 특히 바닥에 굽이 달려져 야단 법석(法席)에 수시로 나왔던 흔적이다.

옆의 청동 국자는 푸른 녹을 뒤집어썼다. 상자 위 받침대에 겨우 의지한 모습이 간당거린다. 오랜 세월 땅속에 숨어있던 탓에 덕지덕지 내려앉은 푸른 녹이 벗겨지지 않았다. 동지 때면 부처님 전에 팥죽 공양물을 올리느라 수천 명의 손길이 묻었을 터다. 국자는 천여 년 동안 사찰이 폐허가 되고 복원을 거듭해도 땅속에서 묵언하며 기다렸다. 국자는 한 번 뜨면 한 끼의 식사량으로 충분할 만큼 옴팡졌다. 국자 목 바로 위에는 양 머리처럼 빙빙 돌아간 동그라미 문양이 서너 개 새겨졌다. 삭아 부서지기 전에 동그라미의 세월만큼 견디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인연은 무엇일까.

국자는 흙속에서 산화되는 동안 오수와 핏물을 삼키며 두껍고 푸른 옷을 겹쳐 입었다. 밝은 빛을 보려고 왜란과 호란에도 굴하지 않고 국자 위에 앉아 세월의 더께를 말하고 있다. 청동 국자는 땅속에서 정정진(正精進) 하며 부서지지 않은 몸체를 간직했다.

푸른 옷은 천여 년 된 꽃으로 보였다. 오방색에서 자연 같은 푸른색은 나무를 닮았다. 나무는 물을 먹어야 부서지지 않고 물은 흙을 가두었다. 꽃은 청옥으로 피어나 처마 단청에서 빛을 낸다. 부처의 자비는 지극한 사랑으로 청옥 꽃을 피웠나 보다. 연화 좌대 위에 오른 입상불(立像佛)을 닮았다.

그 입상불은 몇 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떠오르게 하였다. 마흔다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일곱 남매를 키울 때, 고모할머니 절에서 공양간 일을 하였다. 어머니 손에 들렸던 국자가 되살아났다. 절 밥은 맛있어야 한다더니 신도들도 많이 불어났다. 그 덕분인지 어머니는 법문을 많이 들으며 일상생활에 임했다. 천여 년 만에 나온 국자도 친정어머니의 삶처럼 땅속에서 법문을 듣다 나왔을까.

국자 옆 투명상자 위에 등이 휘어진 수저가 꼬리에 장식 문양을 품고 앉았다. 국자가 없었다면 무엇으로 뜨거운 음식을 나누었을까. 국자로 골고루 저어 수저로 간을 보아야 깊은 맛을 내듯이 인생도 어울려야 모나지 않는다.

사찰 입구의 큰 가마솥 대여섯 개와 굴뚝은 사용한 지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 스님은 삶은 콩을 국자로 건져내어 간을 보며 메주를 만들었다. 비스듬히 세워진 연통과 차곡차곡 쌓인 땔감이 조화를 이루었다. 씨간장과 된장은 도림사에서 천여 년 동안 이어져 왔다. 간장과 된장에 하얗게 피어난 소금꽃도 국자 위에 얹어진 푸른 녹처럼 고진감래 끝에 나타났다. 선인들은 씨간장을 항아리째 옮기며 애지중지했다. 도림사에서는 곶감을 넣고 씨된장 일부와 섞여 숙성시켰다.

스님은 사찰음식을 강의할 때마다 국자를 수십 번이나 사용한다. 유생들이 보시했던 청동 국자는 사찰음식을 널리 알리라는 포교 일환으로 나투었다. 회주 스님은 찬불가를 작곡하며 포교하더니 청동 국자도 덤으로 얹어졌다.

국자로 떠낸 팽이버섯 올린 곶감 된장국이 눈에 아른거린다. 장맛 손맛도 좋았던 어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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