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지폐 / 이성환 - 제3회 우하 박문하 문학상

 

 

빳빳한 기개는 어디에도 없다. 남루하고 꾀죄죄한 행색만 남았다. 표면은 누렇게 땟국물이 절었다. 주름살투성이에다 악취까지 풍긴다. 몸피는 군데군데 해져 초췌한 몰골이지만, 그나마 오른쪽 초상화 얼굴 윤곽은 변함없다. 제 몫을 다하고 떠날 준비를 마친 자의 처연함이 노골적이다.

한 줌 재가 될 화폐들이 금고 구석에 차곡차곡 쌓였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지폐 다발을 풀어 훼손된 화폐를 분류하고 세고 묶었다. 무더기로 쌓인 지폐 앞에 전 직원이 달라붙었다. 재사용할 돈과 수명이 다 된 지전을 구분해야 하는 일. 책상 위는 물론 바닥에 종이도 아닌 것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돈을 셀 때마다 뽀얀 먼지가 날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빨리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 위해 돈다발을 양손에 들고 발로 차며 정리했다. 눈앞에 널려 있고 쌓여 있는 돈은 돈이 아니었다.

당시 일을 하다가 지폐 한 장에 눈길이 갔다. 유독 많이 구겨지고 중간이 반쯤 찢어진 지폐 초상화의 흐릿한 눈과 마주쳤다. 초상화의 옷자락은 몇 군데 더 찢기어 너덜너덜해져 종이 넝마처럼 보였다. 문득 학창 시절에 나를 노려보던 지폐가 생각났다.

돈을 원망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중학교 시절, 당시 달동네에 있던 우리 집은 하루 벌어 하루 연명했다. 친구 집에 갔다가 밤중에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길갓집의 대문 역할을 했던 미닫이문을 드르륵 여는데 빼꼼이 열린 방문 사이로 다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니는 내 공납금을 비롯해 아이들 밑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며 언성을 높였고, 아버지는 행상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한숨 섞인 대꾸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려다 말고 발소리를 죽이며 다시 나왔다. 미닫이문 앞 계단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끔 부는 바람에 미닫이문 유리창이 덜거덩거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유리창처럼 내 마음도 흔들렸다.

그날 밤, 주머니에 학용품 구입용으로 어머니에게서 받은 지폐 한 장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천 원짜리 정도가 되었을까. 손에 쥔 지폐를 폈다. 어둠 속에서 초상화의 인물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공장에 가야 할 처지. 나는 입술을 깨물고 지폐를 찢기 시작했다. 하늘의 별 숫자만큼 조각조각 분해하고 싶었다. 갈기갈기 찢어져 땅바닥에 낙하하는 지폐. 사춘기 반항의 조각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때 깨달았다. 돈이 없으면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일도 돈이 없으면 자칫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학교를 중퇴하면 주눅이 들어 끝내 자존심이 추락한다는 것을. 가난을 벗어나려면 내가 어찌해야 할지 떠오른 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가까스로 상고를 졸업하고 운 좋게 은행에 입사했다. 돈 보기를 돌처럼 여기는 놀라운 경험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학창 시절 그토록 아쉬워했던 돈이 널려 있었다. 손님의 뭉칫돈도 예금 통장에 한 줄 숫자로 찍혔다. 그리도 예민했던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 예금한 돈을 한꺼번에 찾아갈 때는 한 장의 수표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동전이나 지폐 뭉치가 고체 덩어리라면, 수표는 그것들을 녹여 액체로 만들고 다림질한 한 장짜리 결정체. 큰돈 역시 가로 16㎝ 세로 7㎝의 사각 종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 무렵부터 시나브로 돈을 가볍게 생각했다. 은행 돈이 내 것인 양 저도 모르게 교만했던 것이다.

은행에서 장기근속 후 퇴직했지만, 여전히 돈에서 자유롭지가 못했다. 자녀 교육비에다 부부 노후자금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아내의 동의 없이 얄팍한 실력으로 재테크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때 아내의 서늘한 등을 지켜보며 시렸던 가슴의 냉기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돈을 가볍게 보다가 된통 당한 셈이었다.

그때의 내 처지는 구겨지고 낡은 지폐 같은 신세였다. 부와 명예를 추구하다가 일선에서 물러나서도 번번이 헛물켜는 사람. 노화된 피부에다 신체 장기의 기능이 저하되는 나와, 화폐의 역할을 다하고 퇴역하는 지폐가 무슨 차이가 있으랴. 손상 화폐를 분류하면서 보았던 늙은 지폐는 내 삶 자체가 아닌가. 여태까지 애바른 인간을 위해 일하다가 결국 시들어 가는 화초처럼 삭아버린 존재. 이런 게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가난을 염려하고 병들어 괴로워하며 평생 전전긍긍하다 종착역에 도착하는 게 모든 것의 생生인 것을.

그런 일을 겪고 보니 예전에 은행에서 마주쳤던 헌 돈이 생각났다. 그 지폐는 수만 리를 떠돌며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시장이나 식당, 공장이나 일터로 활개 치듯 바삐 돌아다녔을 것이다. 주인을 따라 다니다 비에 젖고 악취와 오물을 뒤집어쓰기도 했을 지전. 어떤 때는 사람들과 술집에서 흥청망청, 어느 곳에선 뺏고 뺏기는 아귀다툼, 서로 치고받는 주먹다짐의 현장까지 목격했을 테다. 그러다 마멸되고 쓸모가 없어져 소각되어야 할 시간에 다다른 파란만장한 세월. 지폐라고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성싶다.

돈이 사람을 울리고, 돈이 사람을 속인다. 돈 때문에 상처받고 병들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어쩌면 돈이 자신의 의지대로 인간을 지배하고,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듯싶다. 왜 우리는 그 사람을 말하지 않고 그가 가진 돈으로 말해야 할까.

돈 때문에 깨닫고 배운 바가 많다. 어쩌다 꼬깃꼬깃한 종이돈을 보면, 내가 한때 어렵게 일하고 대가로 받았던 봉급을 생각한다. 그때의 돈은 내 몸속의 소금기를 내주고 바꾼 것이 아닌가. 그러니 구김지고 찢어졌다 하여 버려질 수는 없는 일. 재사용하도록 테이프로 붙이고 구겨진 것은 다림질로 폈던 가난한 어머니를 기억한다. 이제는 돈에 대해 균형 잡힌 감각을 지닌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다.

돌고 도는 돈이 사람을 교육하고 길들인다. 하지만 순환하는 게 돈만은 아니다. 뭇 생명도 인연도 돌고 도는 게 자연의 이치. 이생에서 돈이 나에게 흐르지 않는 것은 전생에 많이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다음 생애의 나에게 주려고 저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경거망동 않고 돈과 그저 친구처럼 어깨동무하고 싶은 심정이다.

내 지갑 속에는 잠시 나를 찾아온 지폐 몇 장이 들어 있다. 아직은 노쇠하지 않았으니 희망의 순례를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꺼내 든 지폐 속 초상화의 얼굴이 잔잔한 눈빛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