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기도 / 김선녀 - 경기 수필 공모 당선작

 

 

나무는 빈 몸으로 하늘을 받들고 있다. 소나무는 추위와 맞서느라 더욱 푸르다. 밤새 비가 내렸고 지금은 멈췄다. 허공은 운무로 가득하다. 잡히지 않는 생각들이 촉을 피한다. 필사하던 손끝에도 운무가 껴서 앞이 뿌옇다. 창 바깥 풍경과 안쪽 책상 위 풍경이 닮았다. 고요가 정지된 듯 숨이 막힐 지경이다. 눈만 깜박이고 있을 때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로 날아와 심심하게 앉았다. 잠시 후 나뭇가지를 옮겨 앉는다.

나는 지금 기도 중이다. 작품 쓰기를 멈춘 지 벌써 서른 날이 흘러가고 있다. 멈춘 적 없는데 멈추었다. 밥 먹듯이 꼬박꼬박 챙겼고 물 마시듯 순간순간 간절했다. 눈이 맑으면 읽었고 홍채가 흔들리면 돋보기를 썼다. 기도를 응답받은 작품을 한 자 한 자 옮겼다. 정자로 꾹꾹 눌러 쓰고 한 호흡씩 정성껏 읽었다. 사전을 찾아 뜻을 헤아렸다. 감정에 언어를 새기며 매만졌다. 다가오지 않는 감각들을 끝까지 품으려 애썼다.

기도의 장소는 도서관이다. 2층 열람실 모서리 창 쪽에 있는 탁자다. 삶의 질서에 틈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달려온다. 도시 끝자락 위치한 도서관 주변은 정적이다. 여느 건물과 달리 깔끔하고 큰 규모가 안정적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걸음도 다스려야 할 정도로 조용하다. 서가 골목은 집으로 가는 주택가 골목만큼이나 익숙하다. 800번대 서가 앞에서 멈칫멈칫한다. 익숙한 제목들이 먼저 눈을 맞춘다. 항상 같은 자리다. 낯선 이름들이 삐죽삐죽하다. 하나를 간택해 자리에 앉기까지 그들의 향기를 만끽한다. 이곳에 오면 한결같은 질서가 있어 마음이 정연해진다. 기도 전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듯이 내 마음도 단정해지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하려면 신선한 재료가 필요하다.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해도 되는 완전식품이 많지만 나는 편리함보다 익숙함이 좋다. 어떤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없고 한결같은 맛에 물리기도 한다. 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맛이 좋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장을 보는 마음으로 신선한 재료들을 찾는다.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이 필요하다. 뭐가 있을까.

조선 시대 선비 이덕무는 글쓰기를 어린이가 장난치고 노는 것처럼 즐기라고 했다. 그렇게 한다면 세상에 글쓰기 소재는 널렸기 때문에 창작의 원전이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유년 시절부터 글쓰기를 즐겼으며 어른들에게 곧잘 칭찬을 받았다. 또래들이 고무줄놀이와 공기놀이를 즐길 때 혼자 집으로 돌아와 글을 짓곤 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누군가 칭찬을 해 주면 그다음은 글을 더 잘 쓰려고 애쓰곤 했다. 생각의 부피를 부풀리며 성전을 짓듯 써 가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어머니 홀로 꾸려야 하는 농촌 살림살이에 형제들 모두 학업을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눈치 빠른 나는 자진해서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글쓰기 놀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간간이 일기를 쓴다거나 지인들에게 편지 잘 쓰는 사람이긴 했지만, 창작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결혼한 다음에는 새로운 이름들을 얻어 그 역할에 바빴다. 맞벌이하며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내 안의 혼을 느끼지도 못했다. 나보다는 아무개의 아무개로 살았던 세월이 길었다.

한때 즐기던 놀이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몇 년 전이다. 아이들이 홀로서기가 되고 남편은 그야말로 남의 편처럼 살았다. 게다가 직장에서는 나이에 치여 곧 밀려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오랫동안 직장과 가정을 쳇바퀴처럼 돌았는데 이젠 직장도 가정도 내가 필요하지 않다.

실직하고 한동안 뒤뚱거렸다. 날개 죽지 꺾인 새처럼 종종 걸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다시 날아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불안과 초조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어렴풋이 떠올랐다. 글쓰기를 퍽 좋아했던 파편 같은 유년의 모습, 줄기차게 매달려 본 적은 없었지만, 삶이 무너져 내려 힘들 때마다 쓴 기도서가 많았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다. 처음엔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무조건 읽었다. 읽다 보면 흉내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속에 널브러진 낱말들을 꺼내 수다를 떨었다. 관계있는 문장끼리 줄줄이 엮으며 즐거웠다. 거미줄처럼 나온 언어들은 나였다. 오래도록 나를 쓰고 있었다. 한 판 수다가 끝나고 나면 제목을 붙였다. 제법 한 편의 글처럼 보였다. 2년 동안 이백 편을 썼다. 작품이라기보다는 수다였다. 체증처럼 쌓인 감정들이 글이 되어 나를 보고 있다.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 글을 쓰는가. 쓰적쓰적 마냥 즐거웠던 손이 움찔한다. 습관처럼 가던 길이 낯설다. 수다를 넘어선 이야기 한 편 쓰고자 마음먹으니 쉽지가 않다. 그래서 시작된 기도다. 장소를 정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하러 온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에게 애정을 갖고 깊이를 들여다본다. 그럴 때마다 그것들이 나를 들여다본다. 쳇바퀴처럼 나는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수다가 많은 나는 함정에서 몸부림치는 중이다.

빈 몸으로 하늘을 받들고 있는 나무는 봄을 기다리고 있겠지. 추위를 벗어나 잎새들 총총한 계절을 기다릴 것이다. 자기 부피만큼 그늘을 만들어 하늘도 머물게 하던 날을 기억할 것이다. 새들이 날아와 가지마다 수를 놓던 시절의 이야기를 품은 나무를 읽는다. 읽다가 운무가 껴서 잠시 쉼을 추구한다. 간절한 기도엔 응답이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믿고 있다. 백치처럼 빈 하늘 허공을 받들고 있는 나무의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기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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