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돌 / 황진숙 - 2023년 흑구문학상
댓돌에 든다. 볕살이 데워 놓아서일까. 비루한 시간이 머무르는데도 따스하다. 데데한 등줄기를 쓸어주기는커녕 흙먼지를 걸친 신들의 발길로 어지러울 텐데 정갈하기만 하다.
올라서서 내다본다. 제법 높은 마루 밑에 자리 잡은 터라 고택의 풍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허공을 향해 부풀어 오르는 매화 꽃망울, 허세 부릴 줄 모르는 아담한 굴뚝, 한길 너머에 자리 잡은 또 다른 고택까지 부려놓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내로라하는 절경이 이리 질박할까. 밀림 속 문명이 닿지 못하는 고졸한 멋에 절로 숨을 고른다. 바닥만 있는 게 아니라고 가장 남루한 밑바닥이 묵언으로 전한다.
사랑채에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는다. 주인장이 카페로 개방한 탓에 수시로 길손이 드나들었을 터이다. 대대손손 가(家)의 발자국을 새긴 것도 모자라 이방인의 발걸음까지 떠받드는 댓돌의 사연이 우둘투둘하게 감지된다.
처마 밑에 어둠이 고이면 곳곳을 누비던 신들이 모여든다.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 내려놓기 위해 달무리를 등대 삼아 댓돌에 정박한다. 지나는 바람의 추임새에 노곤함을 풀어헤치고 풀벌레 소리에 비곤함을 쓸어낸다. 돋아나는 별빛을 끌어다 덮고, 하루의 노역을 잠재운다.
뒤꿈치가 터져 간당거렸던 고무신은 저 댓돌 위에서 한숨 돌렸을 것이다. 하룻밤 묵기 위해 사랑채에 든 과객의 짚신은 한양으로 가는 천릿길을 세어보며 마음을 다잡았을 터이다. 고된 행상 길에 먼지를 뒤집어쓴 봇짐장수의 신은 짊어진 등짐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았을 테다.
기어이 해지고 흐트러질지언정 댓돌에서만큼은 가지런해진다. 오르려고 기를 써도 미끄러지는 세상이다. 허구렁에 빠지고 돌부리에 걸려 고꾸라지기 일쑤다. 비천하고 용렬한 세상 뒤집어엎고 싶은 분기로 숱하게 흔들리는 나날이다. 갈 수 없다고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더는 올라갈 수 없어 주저앉을 때, 댓돌은 밟고 서라며 등을 내준다.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기운으로 까뒤집히는 속내를 가라앉히고 숨을 골라준다. 종일 험한 길 내딛느라 부르터서 힘겨워하는 발이 저를 딛고 마루에 올라설 수 있도록 고이 받친다. 거친 숨소리 잦아들어 편안한 휴식에 이르게 한다.
기둥을 받치는 위엄 서린 주춧돌도, 몸피에 새겨진 글귀로 눈길을 사로잡는 빗돌도 아니다. 장독대에서 아침마다 여인네의 치성을 받는 무명의 돌보다도 못한 처지다. 고관대작의 눈에 들지 못한 막돌에 불과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외딴섬처럼 홀로 박혀 발품 팔아온 이들의 무게를 감당하는 댓돌이 우직하다.
저를 밟으라니. 어느 신하가 저리 충직할까. 바람결에 딸려온 낙엽을 떨구고 슬어놓은 거미줄을 뗀 정갈한 매무새로 대청 아래 한사코 엎드린 댓돌. 편전에서 왕을 알현하며 발아래를 굽어살피라 읍소하는 걸까. 뒤축이 접힌 채 끈이 풀린 신을 신고 출정하려는 신출내기 왕을 바로 앉혀, 제대로 추스르라 상소를 올리는 건가. 수백 년을 조아리느라 닳고 닳은 댓돌에서 환영이 스쳐 간다.
험난한 세상 견딜만한 것은 제 몸뚱이 온전히 바쳐 헌신하는 댓돌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리라. 정화수를 담은 막사발처럼 무탈하기를 비손하는 마음이다. 디디고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안식처다. 살얼음판 같은 바닥을 끌어온 신을, 더 낮은 바닥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굳은 심지다. 온갖 무게를 끌어안은 댓돌 위로 세상 언저리를 돌고 온 항로를 펼쳐 놓는다.
삶은 늘 오르지 못할 누마루처럼 막막했다. 그간 밤낮을 껴안고 하루를 구르느라 쉴 틈 없이 육신을 부렸다. 남편이나 나나 궁핍이 곳간을 채우는 집안의 맏이다. 포화상태인 경제난을 풀 해법을 찾아 내달렸다. 연로한 부모님과 공부가 한창인 아이들의 뒷바라지가 남았는데 갱년기에 접어든 몸이 점멸등을 켜며 가로막는다. 형편상 줄달음쳐도 모자랄 상황이건만 자꾸 까부라진다. 마음과 달리 갈지(之)자를 그리는 몸으로 맥없이 수렁으로 빠져드는 중이었다.
얼마 전엔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가오는 윤달에 이산 저산 흩어진 묘를 이장해야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오빠의 죽음 이후 부모님은 빈 동굴처럼 허허로워했다. 하루 좋아지면 사흘 위중하고 이틀 잠잠하면 나흘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던 자식을 홀로 떠나보냈으니 죄 많은 팔자라고 가슴을 쳤다. 낫질이 서투를 때부터 벌초에 따라나선 오빠였다. 그 빈자리가 휑했다. 어느 해는 멧돼지가 내려와 죄다 무덤을 파헤쳐 놨다. 다시 잔디를 입히느라 아버지가 여러 날 애를 먹었다. 날로 쇠해지는 아버지의 기력으로는 묘소를 관리하는 일이 무리다 싶었다. 윗대의 유택을 봉안당으로 옮기기로 하고 적당한 이장 업체를 물색했다. 엄두가 나지 않아 일을 맡기고도 걱정으로 밤새 뒤척였다.
어스름이 걷히자, 제를 지내는 것으로 파묘가 시작됐다. 할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한 후 증조할머니의 무덤으로 향하던 중 앞서가던 아버지가 멈칫했다. 당신 기억으로는 여기 어디쯤인데 묘가 없다면서 두리번거렸다. 수년간 지형 변화로 산세가 바뀌어 쉬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근처 큰 바윗돌 밑에 있을 거라는 아버지 말에 수풀을 헤치며 오르내렸다.
제 영역이라도 되는 양 무성하게 바리케이드를 친 나뭇가지들이 할퀴어댔다. 낯선 이의 침입을 저지하려는 듯 얽히고설킨 넝쿨은 발목을 움켜쥐며 놔주지 않았다. 행짜 부리는 것들이 시야를 가려 몇 번을 미끄러졌다. 헛디뎌서 삐끗한 발로 질질 끌다시피 한 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서야 겨우 증조모의 산소를 찾았다. 봉분인지 아닌지도 모를 만큼 낮아진 데다 잡목이 우거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어둑살이 내려앉을 무렵, 유해를 봉안당에 모시고 간신히 일을 마무리하였다. 아버지는 그제야 조상님 얼굴을 뵐 낯이 선다며 한숨을 놓았다. 그러구러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긴장이 풀려 몇 날 며칠을 앓아누웠다. 종종거리는 몸짓에 익숙해진 잰걸음이 버거워 널브러졌다.
채이고 밟히느라 깎이는 줄 모르고 끝없이 낮아지는 댓돌을 바라본다. 제 한 몸 사르며 고택을 지탱해 온 들무새가 마음 겹다. 세월 따라 뒷전으로 물러나 앉는 호사를 마다하고 여전히 걸음걸음 올려주는 마음이 지극하다. 잠시 잠깐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려던 상념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수선했던 자리에 여유 한 채 들앉힌다.
저만치서 인기척이 난다. 고달픈 여정에 방점을 찍으러 오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다.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검불이 댓돌 위에 앉아 있다. 가만히 손으로 쓸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