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 윤영순 - 2024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그늘에서 땀을 식힌다. 검은 제비나비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무뿌리 위에 내려앉는다. 이내 몸을 포개고 날갯짓한다. 카메라 줌을 당겨 한 발 내딛는 순간 푹신한 스펀지를 밟은 듯 발이 푹 꺼지고 나비는 나풀나풀 자리를 뜬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끼가 연둣빛 홑이불을 펼친듯 온통 푸르르다. 땅속에 자리 잡지 못한 나무뿌리가 자갈밭에서 얽히고설켜 군집을 이룬다. 그 사이사이엔 좁쌀만한 벌레가 고물거리고 개미 떼가 바쁘게 오간다. 이에 질세라 겨우 땅 내 맡은 단풍나무 싹들도 하늘거린다. 하찮고 연약해 보이는 이끼가 많은 생물을 품는다.

이끼는 내게 반갑잖은 손님이었다. 그래서일까. 생각만 해도 불편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이끼를 밟아 미끄러진 적이 있다. 그 뒤 후유증으로 한동안 애를 먹었다. 그래서 베란다의 하수구 주변, 비 온 뒤 경사진 인도를 걸을 땐 살얼음을 딛듯 걷는다.

한강 발원지 검룡소로 가는 길, 이끼는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 새파랗다. 힘차게 휘도는 물줄기와 짙은 녹음에서 빨아들인 습기로 색이 더욱 선명하고 깊다. 몸을 모로 눕히고 뒤척이는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가 청량감을 더한다. 푸른 숲의 기운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생각한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더불어 살아가는 이끼의 삶을.

생물은 수직을 지향한다. 남보다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 밖으로 가지를 뻗는다. 하늘을 향한 직립 의지를 곧추세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곧추선 것들은 자칫 쓰러지기 십상이다. 간밤 불어닥친 비바람에 굵은 참나무가 넘어가고 폭설이 내리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소나무 가지가 부러진다. 직립하는 숨탄 것들이 감당해야 할 시련이다.

 

젊어서 나만 뒤떨어진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하룻밤에도 집 몇 채를 짓고 부수다 보면 눈이 충혈되었다.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내가 불안했는지, 남편은 아이들 잘 키우는 게 금송아지를 들여오는 것보다 장한 일이라고 달랬다.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마침 홈패션이 유행을 탔다. 앞치마부터 식탁보, 도시락 주머니, 의자 덮개, 변기 덮개 등을 만들었다. 밋밋하던 무생물에 자잘한 꽃무늬 옷을 입혔다. 딱딱한 사물이 숨 쉬듯 살아나고 향기를 품었다.

 

이끼는 앉은 자리에 따라 모양도 색깔도 다르다. 정선 소금강 너덜겅 바위는 서로 물고 어깨를 기대며 집성촌을 이룬다. 오전엔 산그늘이 깊게 내려앉는다. 바위 하나에도 틈새에 낀 이끼는 아기 볼처럼 보들보들하다. 면이 넓은 쪽은 봄볕에 그을린 아낙의 볼처럼 거무죽죽하고 까슬까슬하다. 파란 이불을 덮은 대가족을 보는 것 같다.

 

이끼는 품이 넓은 수평적 삶이다. 바닥을 기면서도 높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안으로 품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물을 보듬고 고목에도 푸른 옷을 입힌다. 꿈도 꾸지 못하는 돌에 푸릇푸릇 혈맥을 더한다. 자신이 일군 터전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담당하는 남편과 결이 닮았다.

 

무리살이에 삶의 무늬가 어린다. 남편은 중간 간부로 일하면서 때때로 윗사람과 마찰을 빚었다. 아무리 상사라 해도 무리한 요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자꾸만 밉상을 받아서인지 승진이 어려웠다. 남편은 위로만 지향하는 숭진에 연연하기보다 주변을 먼저 살폈다. 높이 세워 버틸 것이 없으니, 거센 태풍에도 가지가 부러지거나 집안이 무너지지 않았다.

 

돌아보니 남편과 나는 수평적 삶을 살았다. 높은 빌딩을 짓지도 소유하지도 못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높은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다. 하지만 언제든 발 뻗고 누울 수 있었고 남보다 낮은 자리에 앉아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므로 남은 시간 동안 누군가의 발아래 푸르게 깔리는 삶을 살면 족하다.

 

이끼 위로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이끼에 손을 얹어보니 촉촉하면서도 보드레하다. 물 찬 제비 두 마리가 마른 이끼를 물고 날아오른다. 새끼들 아랫자리로 포근하게 깔아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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