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어? / 소유민 - 제3회 오뚜기 푸드 대상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매해 여름, 풀벌레가 찌르르 우는 무더운 날이면 그 시구가 먼저 떠오른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선생님의 얼굴도. 시를 낭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얼음이 가득 담긴 허브차를 저을 때 나는 달그락 소리와 닮아 있었다. 허브 특유의 달콤쌉쌉한 향기도 느껴지는 듯했다. 애들아, 그거 아니? 달이 떠서 전화했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야. 꼭 사랑한다는 말만이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야. 선생님의 목소리가 유리잔을 두드리듯 파르르 떨렸다.

다녀올게. 라는 말도 사랑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선생님은 덧붙였다. 다녀온다는 말이 정말 사랑한다는 뜻이라면, 어느 날 죽음이 갑작스레 닥쳐온다고 해도 조금은 안심 아닐까 생각했다.

너희한테도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할 말이 있니? 선생님은 애써 무언가 떨쳐내려는 사람처럼 시원하게 웃었다. 왜인지 그때 내가 떠올린 것은 푸릇한 채소로 가득 찬 냉장고 야채칸이었다. 까만 봉투에 담긴 샛노란 콩나물, 빨간 끈으로 돌돌 묶인 시금치와 풀죽은 나무껍질 같은 고사리. 냉장고를 열어 그것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짭짤한 젓갈과 벌거벗은 생닭을 보고 있으면, 윗배가 뜨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것들도 사랑한다는 말의 일종 아닐까.

냉장고 뱃속의 음식들이 건강해야 자식들도 건강하다는 것이 내 부모님의 철칙이어서, 나는 탄산음료 대신 맑게 끓인 보리차를 마시며 자랐다. 여름이 깊어지면 엄마는 고명으로 푸릇한 오이가 올린 하얀 콩국수를 만들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만두와 수제햄을 넣은 부대찌개를 끓여 먹었고, 벚꽃이 필 무렵엔 수정과를 담갔다. 비 오는 날마다 거실에 울려 퍼지던 지글지글 소리, 부추전 반죽을 젓는 아빠의 손에 땀방울처럼 맺힌 굳은살. 기름 앞에서 땀을 닦던 엄마의 얼굴. 그런 것들이 내 살을 찌우고 뼈를 이뤘다.

그렇게 잘 먹고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집밥보다 밖에서 먹는 것들을 더 좋아했다. 음식을 이루는 것들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일 뿐이지. 사랑이 어떻게 음식을 구성하겠느냐고 조소하기도 했다. 콩나물국 위를 둥둥 떠다니는 대파 조각을 씹으면서, 이런 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음식을 음식으로만 보게 된다는 뜻일까.

내 앞에 차려진 김치찌개를 김치찌개로만 보게 된다는 뜻일까. 하루를 꼬박 새워 김치를 담던 아빠와 재료를 썰고, 뜨거운 불 앞에서 찌개를 팔팔 끓이던 엄마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사실 그 정반대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묵묵히 내 그릇에 제 몫의 고기를 덜어주는 엄마의 모습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나는 고기 별로야,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 오래된 넝쿨 줄기처럼 얽힌 무상과 인내를 읽는 것. 계란말이를 내 쪽으로 밀어주는 엄마의 손길을 더 이상 감사하게만 바라볼 수 없고, 얼마쯤은 슬퍼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사랑한다는 ‘말’만이 사랑한다는 뜻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을 때, 깨끗이 닦인 간장 종지를 보며 나는 울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그 시구를 읽던 선생님의 목떨림이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제주도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하늘로 뻗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던 어느 겨울이었다. 엄마의 음식이 위 속에서 꾸역꾸역 쌓일수록 내 마음 한 편엔 지울 수 없는 부채감 같은 것이 켜켜이 쌓여갔다. 어른이 되어가는 나에게, 아빠가 퇴근길에 사온 빵과 떡 같은 것들은 세상에 그 어떤 협박보다도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언제고 나를 품어줄 듯 두 손 뻗던 냉장고와 묵묵히 우리 가족의 식사를 지켜보던 식탁을 뒤로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사채업자에 쫓겨 다른 나라로 밀항하는 이가 된 기분이었다.

한동안은 자유의 몸이 된 것 같았다. 비행운이 길게 늘어진 하늘은 도망자들을 품어주겠다는 듯 새파란 가슴을 내밀고 나를 내려다보았고, 대학가 특유의 북적이는 소리는 늘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술집에 갔던 날, 그 골목 가로등의 아스라한 불빛은 내게 막연한 해방감을 주었다. 형광 네온사인과 알록달록한 전구들로 장식된 술집들이 일렬로 들어선 거리. 모든 것이 살아있고, 과격했고, 화려했다. 나는 제주도에 두고 온 것들은 전부 잊은 채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섞여 들었다. 겨울이었지만,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사람들의 체온 때문인지 술집 안은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나는 감자면이 들어간 닭칼국수와 새우 완자 튀김 따위를 집어 먹었다. 몇 번쯤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 왔지만, 받지 않았다. 뒤이어 문자 하나가 알람음과 함께 화면에 떠올랐다.

밥 먹었어?

그게 무슨 느낌인지, 지금도 완벽히 설명해낼 수가 없다.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증명되는 기분. 엄마, 나 잘 먹고 다녀. 그렇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말고 차가운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목 마디마디가 쿡쿡 쑤셨다. 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엄마가 불판 앞에서 흘린 땀과 눈물들, 혹은 양파를 썰다 베였던 자국과 핏방울들, 아빠의 세월과 주름들이었나. 내 몸의 70퍼센트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모두, 그들이 내게 평생을 걸쳐 건넸던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대충 먹었어.

제주도 오면 소고기 구워 줄게. 아빠가 너 준다고 부추김치 담갔어. 식혜도 담을까? 너 다음 달에 올래?

나는 젓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모든 말이 사랑한다고만 읽혔다. 엄마는 매번, 나의 아침과 점심 저녁 시간에 맞춰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보내온 것이다. 멍한 얼굴로 튀김 조각을 깨작깨작 집어 먹고 있는데, 아빠에게도 전화가 걸려 왔다.

어, 여보세요?

뭐해. 밥은 먹었어?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밥 먹었냐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앞으로 밥 먹었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게 밥을 먹이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던 이들의 떠올릴 것이었다. 내 안을 채운 누군가의 시간, 피, 땀, 눈물의 자국들을 머금고 언젠가는 내가 먼저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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