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의 노래 / 허민

 

 

나를 스쳐간 독자여

지나온 생을 되돌아보는 밤이다

구멍 난 가슴 한쪽 스스로를 위한

작은 부고 기사 하나 실어보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끝을 맺는 밤이다

낡은 집 바닥에 젖은 채 누워

한껏 페인트나 풀을 뒤집어쓰거나

먹다 남은 짜장면 그릇 따위 덮고 있을 줄

몰랐던 쓸쓸한 밤이다

노숙인의 유품이 되어 그의 마지막 겨울을

나의 마지막으로 덮게 될 줄 몰랐지만

마지막까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그의 외로움을 가려주었으니

조금은 괜찮았던 밤이다

생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으니

내가 한 그루 푸르고 싱싱한 나무였을 적

한 여인이 내게 등을 기댄 채

텅 빈 하늘만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

괜찮다, 나쁘지만은 않았지 생각한 밤이다

그녀를 위한 한 권의 인생이 되기 위해

방울의 손톱들을 삼키고

여러 날의 미치도록 거센 바람과

눈송이의 쌓여가던 무게를 견뎠던 밤이다

스쳐간 이름들, 흔들리는 이파리로 살다가

결국 흰 눈 가득한 백지가 되어

그대들을 위한 간절한 소식 적었고

한 줄의 슬픈 사건이 되기도 했던 캄캄한 밤,

한 사람을 사랑한 여인이 부러 깨뜨린

유리잔 조각 하나하나 쓸어 담는

구멍 난 종이 뭉치, 나 기꺼이 되었던 밤이다

그러니 독자여, 바닥을 뒹구는 내 마지막 보거든

지난한 밤을 기억 말고 대신

끝내 되고자 했던, 살고자 했던

내 푸른 문장들을 상상해 주길

잠시라도 그대 가슴 안에서

솨솨솨_ 내 전생의 숲이 불어오는

길고도 짧은, 오늘의 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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