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뒤뜰에 나가 보았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차일피일 방관만 하고 있었다. 마침, 어제 내린 비로 땅이 아직 촉촉해 풀들이 쉽게 손으로도 뽑혔다. 그래도 억센 잡초는 연장의 힘을 빌어야 했다. 풀들이 뽑힌 자리에 홈이 파여 있기에, 흙으로 다시 덮기 전, 간직하고 있던 꽃씨를 찾아 골을 따라 뿌려 넣었다. 즉흥적인 발상이었다.
원예에 대해 거의 문외한 인지라, 그래도 되는 건지 잘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전에 막네 딸아이가 주었던 꽃씨 봉투를 보니, 'Wildflower'라고 적혀 있다. 여러 가지 야생화를 함께 섞어 넣은 것이다. 꽃씨를 넉넉히 뿌린 후, 흙으로 잘 덮어준 후, 물을 조심스럽게 부어 땅을 적셔주었다. 앞으로 잘 자라 알록달록 꽃을 피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기다려 보는 수밖에.
뒷마당 한 가운데, 내 키만 한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고, 그녀 양옆으로 커다란 국화 화분 두 개가 놓여 있다. 작년 가을에 노란 국화와 자줏빛 국화를 하나씩 성모님 전에 바친 것이다. 겨울 동안, 꽃이 지고 시들어진 것을 버리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을 계속 주었더니, 과연 다시 꽃이 피어났다. 반갑고 기특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성모님이 내게 베푸신 기적처럼 느껴진다.
레몬 나무에도 하얀 꽃이 향기롭게 피어오르고, 샛노란 레몬이 주렁주렁 열렸다. 이제껏 자라는 것이 신통찮던 히비스커스도 어느새 무성한 이파리와 함께 새빨간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조금 기다렸다 나팔꽃씨도 심을까 한다. 뒷담을 타고 오르며 피어나, 매일 아침 나를 깨워줄 보라색 꽃을 생각만 해도 설렌다.
역시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여 꽃피우며, 자연의 이치를 넌즈시 알리고 있다.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라던 푸시킨의 시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물처럼 흐르는 세월을 살아가며 이순을 넘은 이제 바라는 것은, 오직 자연의 이치에 온전히 순응하는 삶, 즉, '무아'가 되고픈 염원뿐.
이제 나도 성모 마리아처럼 두 손바닥을 하늘로 나란히 펴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가만히 기도드리며.....
이 글을 읽으며
제가 처음으로 집을 가졌을 때 생각이 납니다.
남편이 마당 전체를 잔디로 덥자는 말에도
귀퉁이 한자락을 밭을 만들고 싶어 푸성귀를 심었던 그때.
지금도 빈틈만 있으면 꽃이나 작은 열매 심기를 좋아하고 자라는 것을 보며 즐깁니다.
선생님도 많이 심고 자라는 것 보며 젊어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