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비스무리
박진희
참 모를 일이다.
아무리 기억을 짜내도 한 번도 꿈에서 내가 결혼한 여자로 나타난 적이 없다. 처음 몇 년간은 죄의식마저 들었는데 수십년이 지나니 그 근본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꿈을 모조리 기억하지 못하지만 귀밑머리가 하얘지는 내가 처녀 행세를 하고 있단 말인가. 무의식적으로 아직 미혼녀였으면 좋겠다는 앙큼한 마음을 가졌을까. 사실 좀 젊었을 때라면 모를까. 장성한 세 아들을 둔 중년이 훨씬 넘은 나이에 그런 생각이 든다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
꿈에서 그런 생각을 멈추라고 자신에게 질책하고 다그칠 수 없으니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그저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현실에선 분명히 오랫동안 한 남자의 아내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서 산 지 40년 째 접어드니 ‘리암 니슨’이 곁에 있다면 마음의 평정은 장담 못하지만 “당신 펜이에요”란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니 다행이지 않을까.
오래전에 그리스 조각상처럼 정말 외모가 완벽해 보이는 금발의 백인 남자를 병원에서 며칠동안 간호한 적이 있다. 그는 죄수였다. 손엔 수갑이 차 있고 그를 밤낮으로 지키는 제복을 입은 가드가 두 명씩 순번을 섰다. 그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바리톤의 목소리나 큼직한 이목구비로 봐서 영화배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언젠가 외모처럼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퇴원하는 그에게 “Have a beautiful life!”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그는 감옥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인생을 살라고?” 하며 어이없는 어조로 되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의 병실에서 밝게 비치던 한줄기 햇살과 함께.
우리에게 어쩌면 보이지 않는 감옥이 있지 않은가. 원한다면 언젠가 거기서 벗어나서 얼마든지 충분히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엄마나 아내이기에 앞서 난 한 여자로 살아간다. 많은 환자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나의 모습은 미스도 미세스도 아닌 ‘미스 비스무리’가 아닌가. 그래서 꿈에선 늘 자유롭지 않은가. 그게 어쩜 잠재의식 속의 소망이지 않을까 싶다.
여자로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Ms. 라는 단어가 생겨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Ms. 라는 호칭을 주로 쓰기도 해요. 결혼 여하에 관계없이 그저 한 여성으로서 소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어요.
자유로운 영혼은, 특히 우리 예술인으로서 반드시 지녀야할 덕목이 아닐까요.
앞으로 박진희 선생님이 더욱 자유로워지셔서, 좋은 글 많이 쓰실 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
수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인간은 항상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그 자유로움 이라는 날개는 꿈과 함께 나타나기도 하고요.
'우리에게 어쩌면 보이지 않는 감옥이 있지 않은가. 원한다면 언젠가 거기서 벗어나서 얼마든지 충분히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