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한 홍시 / 정끝별

 

 

집을 정리한 건 봄날이었다

짐이 되어버린 묵은 살림을 삼박사일 버리고 버리는데 물러터진 감들이 구석구석 도사리고 있었다 첫날은 식탁 밑에 다음날은 다용도실에 다다음날은 베란다에 마지막 날은 냉장고에

홍시를 만들려고 여기저기 쟁여두고 더러 잊기도 했던 것들이다

엉덩이뼈가 부서지고 기다리던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아버린 것들이다

세상 끝 울음처럼 악력을 잃고 저절로 새어 난 것들이다

그리 좋아했던 아삭 단감도 땡감 연시도 대봉감 홍시도 둥시감 곶감도

초겨울에서부터 늦봄까지

온몸에 가둬놓은 물을 여름에 반납하려는 듯 다 쏟아내고 물을 잡으려는 목마름으로

이제 끝났다, 물 한 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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