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의 유전자 / 박무웅

 

말뚝에 묶인 소는 온순하다

그깟, 힘 한번 쓰면

말뚝쯤은 단번에 쑥 뽑히겠지만

소는 그런 힘쓰지 않는다

소는 말뚝에 묶였을 때

비로소 쉴 수 있다는 것 알고 있다

 

소에게는 여럿의 주인이 있다

여물을 주고, 등을 쓸어주고

엉덩이에 말라붙은 똥 딱지를 떼어주는 주인

그런 주인 말고도

코뚜레와 밧줄의 끝을 쥐는 손이라면

어린아이와 늙은이를 가리지 않지만

그중 가장 마음씨 좋은 주인은

말뚝이다

밭들이 뒤엎어지고

씨앗들의 파종기가 끝나면

소는 나른한 눈꺼풀을 즐기는 것이다

 

사실 소는 저의 머리에

이미 두 개의 말뚝을

꽝꽝 박아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소는 그런 힘

함부로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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