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중 / 김옥춘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다가 짧은 시 한 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읽고 또 읽었다. 시가 어려웠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말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도 같다." (전문)

한강의 이 시를 읽는 순간, 내 슬픔은 원석과도 같이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직장에 다닐 때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내가 없는 우리 집에 들렀는데 어머니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는 것이다. 첫 기차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 집을 향해 오르는 언덕은, 어머니가 계시는 곳, 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늘 염려하며 그리워하던 땅이었다. 가을걷이를 하던 이웃들이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했다. 어떤 종류의 슬픔도 짐작할 수 없는 여전히 평화스런 그곳은 곧 닥칠 슬픔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반가워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죽을 끓여드렸는데 조금밖에 못 드셨다. 늘 위장병을 앓던 어머니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3일 후 어머니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숨을 거두었다.

마당에는 가을걷이해 놓은 곡식 단이 쌓여있었다. 서둘러서 알곡을 털어 담으면서 틈틈이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는데도 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일하다 궁금하여 보러 오신 이웃집 할머니가 방에 들어가더니 “야야, 얼른 들어와 봐라.”하면서 다급하게 불렀다. “아이고 눈도 못 감았네.” 하신다.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어머니는 허공을 향해 눈을 뜨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할머니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를 달래듯 주문처럼 뭐라고 하면서 거친 손으로 눈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아무 걱정 말고 편히 가시라는 부탁 같았다. 그러자 어머니의 눈은 순순히 감겼다.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나는 죽는다는 것은 당연히 눈을 감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나와 열두 살짜리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어머니는 눈을 감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어머니가 살아있는 줄 알았던 나는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다. 난 울지 않았다. 아니다 울지 못했다. 얼이 빠졌는지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말도 나오지 않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모든 생물이 어머니와 함께 죽은 것처럼 고요했다. 음력 열나흘 달이 교교하게 비추는 텃밭에는 가을바람에 수숫대의 서걱거리는 소리만이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집안 어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동생의 손을 잡고 장지에서 돌아오는 길섶엔 들국화 한 송이가 피어있었다. 키 작은 꽃 한 송이는 외로워 보였다. 나의 외로움인지 철부지 남매를 두고 떠나는 엄마의 외로움인지, 온몸으로 아픔이 느껴져서 가슴이 먹먹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들국화엔 눈물 같은 이슬방울이 맺혀있었다. 엄마의 눈물인가?

어머니를 보낸 후 처절하게 살아냈다. 내 슬픔은 가슴 깊이 묻어두고 수없이 닥치는 터널을 통과하고 세상을 향해 바람과 비를 맞서서 나갔다. 춥고 괴롭기도 했지만 더러는 햇볕이 찾아와 주기도 했다. 따뜻했다. 보살핌의 손길을 느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대책 없이 떠나버린 어머니의 죽음이 배신이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힘든 시기가 지나가자 갑자기 그 죽음이 가여워지기 시작했다. 눈도 감지 못하고 가신 엄마가 가여워서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 쭈그리고 앉아서 속으로만 울었다. 가슴속에 고인 내 슬픔은 점점 더 돌같이 단단해졌다.

얼마 전 다니러 갔던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딸 집 정원 한쪽에 까마중 한 포기가 자라고 있었다. 계절은 12월 말이었다. 서울은 눈이 내리고 온통 얼어붙는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그곳은 따뜻했다. 어디서 날아온 씨앗인지 잔디를 피해 맨땅에 뿌리내린 까마중 한 포기, 딸이 가꾸지 않았다는데도 제법 굵은 줄기에 반지르르한 까만 열매가 조롱조롱 달려있었다. 감자밭에서 일하는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칭얼거리면 내 손바닥에 놓아주던 그 열매였다. 그것으로 고픈 배는 부르지 않았지만, 엄마의 사랑을 받아먹은 어린 영혼은 충분히 배가 불렀다. 그때 달달한 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혼자 정원을 거닐다가 까마중 열매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어보았다. 어려서 먹던 맛과 똑같이 달달한 그 맛이다. 그리고 틈만 나면 정원에서 까맣게 익어가는 까마중을 보면서 어머니가 보낸 선물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먼 나라에서 어머니를 생각만 했는데 죄송함과 그리움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딸을 키워 먼 나라에 오고 가며, 어머니는 상상도 못 했을 여러 가지를 누리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딸은 어머니에게 해 드린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주루룩 볼을 타고 흘렀다.

정원에 서 있는 몸집이 큰 나무에 기대어 울었다. 딸이 보면 오해할까 봐 조용히 울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신경림 시인의 '갈대'를 생각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단단했던 슬픔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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