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動 / 김희숙
당신 덕에 삽니다. 밥벌이하고 배웁니다. 땅을 갈고 씨앗 심어 거둡니다. 눈 쌓인 도로를 뚫고 바닥을 쓸고 닦습니다. 타인의 손을 맞잡고 연인은 팔을 껴안습니다. 아이는 걸음을 떼기도 전에 보행기를 몰아 집안을 휘젓고 유모차에서 바깥세상을 알아갑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동차를 운전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종일 같이 지냅니다. 당신 세계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인간 세상에 당신이 존재하는지 헛갈립니다만, 많은 순간을 함께하는 걸로 보아 따로인 듯 하나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편애에서 권력이 생겼습니다. 인간의 법은 당신이 다니기 쉽도록 길을 내고 넓힙니다. 흑단 카펫을 깔아 행여 흠집이라도 생길세라 애지중지 모십니다. 가는 곳마다 편히 쉬도록 주차장 확보부터 나섭니다. 고궁이나 절집에 가 보면 옛사람들은 신과 임금이 오가는 중앙 길을 구분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는 도로 가운데로 당신이 다닙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길가로 밀려났습니다. 세상이 걷는 인간보다 구르는 당신을 치켜세운 까닭입니다. 그나마도 좁은 골목에선 당신 없는 틈을 찾느라 사람의 몸가짐이 공손해집니다.
지닌 능력을 가늠하기 어렵네요. 거대한 비행기를 가뿐하게 띄우고 증기기관차는 물만으로도 달리게 했습니다. 말이 끄는 수레에 고분고분 딸려 다니다가 화석 연료를 들이키고부터 질주 본능을 드러냈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생을 끌기도 인간의 의지에 끌려가기도 합니다. 운전대를 달아 마음대로 굴리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과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는 경계 밖으로 튀려는 충동을 억누릅니다. 주어진 선을 지키고 붉은 신호 앞에서는 서라며 길들입니다. 브레이크 없는 인터넷 바퀴는 가속이 붙어 인간사를 쥐락펴락 주무릅니다. 자칫 충돌하거나 밀려나기 십상이니 정신 바짝 차려야 따라갑니다. 빈 수레의 요란함을 감당하는 것도 당신 몫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냅니다. 덮어쓴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몸체를 가졌습니다. 외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성품일 테죠. 사람들이 자동차회사에서 화려한 모터쇼를 열어 자동차를 추앙할 때도 아래에서 받쳐주는 당신까지 시선이 미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날은 잊고 지내다가 멈추거나 삐걱댈 때, 비로소 머리 숙여 살핀답니다. 때문에 그늘 속 삶은 바닥과 친밀합니다. 부대껴 닳아 너덜거려도 묵묵히 살갗을 내어줍니다. 그러나 인간은 밑바닥 가까이 가기를 꺼린답니다. 틈만 나면 끌어내리려 혀 날름거리는 괴물처럼 느껴지거든요. 우둘투둘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우묵 파인 구덩이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일어서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고 생채기가 나 쓰라리고 아프니까요.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듯이 인간에게는 삶의 무게를 대신 짊어져 줄 무언가가 필요했을 겁니다. 거친 바닥을 어르고 달래면서 발 내리는 시간을 줄이려 당신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릅니다.
고마운 당신이지만 마냥 기껍지만은 않습니다. 국경을 넘나들며 나르는 전염병이나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은 피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과해지면 세간에서 역마살이라 부르며 경계합니다. 동작이 어긋났을 때, 9층에 사는 그녀 다리 위로 당신의 온몸이 얹혔습니다. 그녀 나이가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이동식 들것에 실려 다녔고 깨어나니 한쪽 뒤꿈치가 없었습니다. 절단된 상처는 활동을 가두었고 이동을 멈추게 했습니다. 휠체어를 의지하고 목발에 기댄 행동은 부자연스럽고 더디었습니다. 긴 시간 서 있지 못했고 먼 곳을 오갈 수 없었습니다. 계단 하나에도 방해를 받으며 사회와 멀어졌고 절망했습니다. 만물의 이치는 궁즉통입니다. 기술자들이 다독이고 채근하였나 봅니다. 까다로운 식성을 가진 당신이 전기를 받아들이고서야 소외되었던 이들에게도 실력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환갑 넘긴 그녀가 전동스쿠터를 타던 날, 바큇살도 신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갔을 겁니다.
영광 고을에서는 가을마다 e모빌리티 엑스포를 엽니다. 작고 낮은 당신 가족들이 모여 축제를 벌입니다. 행사장에는 고가의 타이어가 보이지 않고 현란한 몸짓의 축도 없습니다. 그녀를 문밖으로 끌어내 준 것처럼 접이식 전동차는 힘없는 노인이 타기 쉽도록 날렵하고 전동운반차는 로봇처럼 적재함을 변신시켜 일꾼에게 힘을 보탭니다. 든든한 당신의 등이 있어 그들의 역할이 빛납니다. 농부 대신 농약 치는 드론은 당신을 머리에 이고 다닙니다. 땅바닥만 보며 구르다가 푸른 하늘도 마주하니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되기도 하는군요. 엑스포장에서 만난 당신은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본성보다 노약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인간을 욕망의 물살에 올라타도록 부추겼나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났다는데 연결 끊긴 사다리라도 기어오르라며 꾀었나요. 더!더!더! 세상은 당신을 믿고 빨리 넓게 멀리 가자며 동분서주합니다. 동그라미가 늘 고픈 통장을 채우려 누비고 나날이 발전된 신기술로 중무장한 물건들을 운반하고 뿌립니다. 고정되길 거부하고 이쪽에서 저곳으로 옮깁니다. 모았다 흩고 가져오고 보냅니다. 당신의 궤적을 따라가려니 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인간사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당신이 일으키는 조화이지 않을까 의심됩니다.
바뀌지 않고 그대로 머물기만 하는 것이 있는가 항변하는군요. 맞습니다. 어떤 물건도 모방하지 않고 만들어낸 발명품이 당신이니까, 있던 것을 없애고 없었는데 새로 생겨나게 하는 변화의 최전방에 서 있는 것은 얼핏 당연해 보입니다. 바뀐다고 해서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고 쓸모 있거나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르는 것이 당신의 소임이듯 자연의 리듬은 변해야 순리입니다. 변화는 당신의 본질이니까요. 돌고 도는 당신을 긍정하지만 가끔은 미동 없이 잠기고 싶습니다.
당신의 언어는 움직이다 멈추고 힘을 가하면 다시 굴러갑니다. 가로지르고 경쟁합니다. 운동과 정지의 운율 속에서 굼뜨거나 쉼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도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속도나 보폭을 가졌음을 알려주고 싶은 게죠. 또 신속하고 편리함으로 나아가는 시대에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 뒤처지고 고립된 이들도 돌아보라며 그녀의 전동스쿠터를 통해 귀띔도 해 주었습니다.
오늘도 덕분에 심장은 뛰고 피는 돕니다. 눈동자는 좌우 위아래로 굴리고 입은 말을 건네고 귀는 열어 듣습니다. 바퀴, 당신의 동動이 무엇을 하든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